‘주먹밥 봉사’로 시작해 38년… “나눔의 홀씨 곳곳에 퍼뜨렸죠”[나눔 실천하는 초록빛 능력자들]

김현아 기자 2025. 2.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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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눔 실천하는 초록빛 능력자들 - 신희숙 대구민들레봉사단장
주부들 모여 노숙자 밥 챙기다
회원 300명 봉사단체로 성장
밑반찬 조리·급식지원 등 활동
이주배경 여성·청소년에 관심
나무·꽃 함께 가꾸며 적응도와
“같이하는 봉사로 소속감 생겨”
신희숙(왼쪽 두 번째) 대구민들레봉사단장이 지난해 5월 이주배경 여성들과 김치 나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초록우산 제공

민들레 홀씨는 단 한 줌의 흙만 있어도 뿌리를 내린다. 1㎝도 되지 않는 작은 크기지만 바람만 잘 만나면 100㎞ 거리까지 날아가 꽃을 피우기도 한다. 신희숙(62) 대구민들레봉사단장이 추구하는 ‘자원봉사’ 의미는 이 같은 민들레와 맞닿아 있다. 신 단장은 “민들레 홀씨가 온 동네에 씨앗을 싹틔우듯, 우리도 지역 곳곳에 나눔의 씨앗을 심기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희숙 단장의 첫 민들레 홀씨는 주먹밥이었다. 1988년 주부 6명이 모여 노숙인들에게 끼니라도 챙기라며 주먹밥을 만들어 나눠준 것이 단초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나눔이 38년째다. 해를 거듭할수록 어린이·청소년·대학생 봉사팀부터 이·미용팀, 목욕 봉사팀, 급식지원팀까지 봉사 종류와 인원이 더 다양해지고 많아졌다. 현재 25개 팀에서 회원 300명이 활동 중이다. 이렇게 규모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단연 “신 단장의 추진력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초록우산과의 인연도 이 같은 적극성에서 비롯됐다. 1991년 대구 동구 반야월 일대에서 연탄불을 갈아주는 봉사를 하던 신 단장은 초록우산 대구종합사회복지관 건물이 공사 중인 것을 보고 “여기 무엇을 짓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 이후 자발적으로 ‘1호 봉사자’가 되겠다 손을 들었다. 밑반찬 조리 봉사, 생필품 지원, 어르신들 생신 잔치를 치르는 것 등 지금까지도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신 단장은 특히 “이주배경 가정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1989년 K2 주한미군 부대 인근에서 미혼모가정 혼혈아동 돌봄을 지원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결혼을 위해 한국으로 이주한 여성들과 새터민들의 한국 생활 적응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단순히 이들 얘기를 듣고 돌보는 일뿐 아니라 지역 관계기관과 연계해 취업을 돕고, 정서적·의료적 지원과 결혼·출산·법률 상담에 이르기까지 권익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한 봉사자가 아픈 이주배경 가족을 위해 선뜻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는 일도 생겼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며 “가족에게도 쉽지 않은 결정인데, 모두에게 감동을 준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2023년 대구종합사회복지관의 벽화사업에 참여한 대구민들레봉사단이 벽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 초록우산 제공

신 단장 역시 사후 장기·시신기증을 희망하고 있다. 1991년 신 단장과 그의 아들이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에 서약했고, 신 단장의 남편도 1996년 동참하면서 일가족이 기증을 약속한 상태다. 신 단장은 “내 몸을 기증하는 것이 가장 쉬운 사랑의 실천이라 생각한다”며 “아들이 희소병으로 병원 신세를 오래 졌는데, 이때부터 삶과 죽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일가족 나눔’ 정신은 신 단장 아버지로부터 이어 내려온 유산과도 같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 ‘나눔과 섬김’을 가장 큰 가치로 삼았다고 한다. 신 단장은 “어린 시절 소달구지에 양파, 고구마, 배추 등 먹을 것을 잔뜩 싣고 보육원과 군부대로 향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생생하다”고 떠올렸다.

신 단장은 요즘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 내 청소년 우범지대가 될 수 있는 곳에 벽화를 그리고, 쓰레기로 뒤덮인 땅을 꽃밭으로 만드는 등 실질적인 환경 변화를 끌어내는 중이다. 다른 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한국으로 이주한 중도입국 청소년들과 ‘정원 봉사’도 한다. 중도입국 청소년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한국의 나무와 꽃, 곤충들을 함께 관찰하며 ‘한국’이라는 나라에 자연스레 적응하게 하는 시간이다. 신 단장은 “아이들의 행복은 어른들의 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며 “요즘 아이들 생각을 들어주는 어른이 별로 없는데, 무조건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생각을 주입하고 지시하는 것보다 ‘경청’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나눔을 꺼리는 현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을 실천하는 힘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신 단장은 “혼자 하기 힘들면 함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김장김치 담그는 봉사를 하거나, 마을축제 행사에 참여하면 지역사회에 대한 소속감도 생기고 나눔의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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