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 메우자고 3조원 쏟아부어도”…1년째 이어지는 의정갈등, 해법 있나
이달 정원 최종 확정 앞두고
14일 인력추계기구 공청회
양측 대화 물꼬 트일지 주목
의료계 “정부, 정책실패 인정
의대교육 내실화 해법내놔야”
수련을 포기한 전공의들과 강의실을 등진 의대생들은 올해 상반기에도 돌아올 기미가 없고, 어떻게든 사태를 봉합해야 할 정부와 대한의사협회는 한 치의 양보 없이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 상급종합병원들은 수천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이들의 비상진료 체제 유지에 3조원이 넘는 세금이 투입됐다.
새 학기 개강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데다 전공의 공백이 지속될수록 재정이 낭비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제라도 의정 간 대타협을 이끌어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금 가장 큰 관건은 2026학년도 의대 정원이다. 이대로라면 내년도 정원은 5058명으로 자동 확정되지만 이달 내에 의정 합의로 그 숫자가 조정된다면 답보 상태인 의료대란이 급변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국회와 의협 간 첫 공식 만남인 오는 14일 ‘의료인력 수급 추계기구 법제화를 위한 공청회’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날 마감한 올해 상반기 인턴 모집은 지난달 레지던트 채용(지원율 2.2%)과 마찬가지로 파행됐다. 앞서 전국 221개 수련병원은 지난해 사직한 인턴 임용 포기자 2967명을 대상으로 이틀간 모집 절차를 진행했지만 실제 지원율은 한 자릿수대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의대 교육 상황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지난달 서울대 의대생 중 일부가 수업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군 위탁생 등을 제외하면 그 수가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이 의료계 설명이다. 한 수도권 의대 관계자는 “이번 증원은 비수도권에 집중됐기 때문에 기존에도 수도권의 일부 의대생은 ‘우리가 언제까지 희생해야 하냐’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강경파 학생들이 투쟁을 포기하고 돌아갔다면 복귀 움직임이 도미노처럼 번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수업이 재개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장기화된 의정 갈등으로 재정도 타격을 입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의료공백을 메우는 데 약 3조3134억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세부적으로는 수련병원의 경영난 해소에 1조4844억원이 선지급됐고 응급환자 전원과 응급실 진찰료, 명절 연휴 비상진료 지원 등에 1조3490억원이 사용됐다. 상급종합병원의 신규 의료 인력 인건비와 당직 수당, 군의관·공중보건의 파견 수당 지원에도 예비비 2040억원이 쓰였다. 의료 정상화가 요원해질수록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의 재정 투입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의료계 안팎에선 의정 갈등 봉합의 분수령으로 이달 14일 열리는 의료인력 추계 공청회를 주목하고 있다. 공청회 특성상 특정 결론이 도출될 순 없지만 의협이 당정과의 공식 만남에 처음으로 응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꽉 막혔던 대화 물꼬가 트이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나온다.
한 의협 집행부 관계자는 “국회를 무대로 (정부를 포함한) 전체가 모이는 모양새가 될 것 같다”며 “교육부에서 고등교육법 규정을 근거로 2월 말까지 내년도 정원을 확정해야 한다고 하는데, 시간상 정부가 양보하고 의료계가 제안하는 식의 결정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이번 갈등 해소의 전제조건으로 교육부의 마스터플랜 제시를 꼽았다. 지난해에 휴학한 학생들과 올해 입학한 신입생이 3월에 몰릴 경우 1학년만 7000여 명에 달하기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교육이 가능한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교육부는 이달 중 2025학년도 교육 내실화 방안을 발표하기 위해 전국 39개 의대와 대책을 구상하고 있다.
서울의 한 수련병원 외과 교수는 “지금의 혼란은 정부의 졸속 행정이 빚어낸 것으로 의료계가 책임질 부분이 아니다”며 “합의서는 가해자가 작성해서 가져오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교육부가 플랜을 보여주면 의료계가 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신뢰 회복을 위해 정부가 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유감이나 위로와 같은 애매한 표현이 아닌 정확히 누구에게, 왜, 무엇이 미안하다는 건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과 3년 차 사직 전공의 A씨는 “몇 번의 ‘코스프레’만 있었을 뿐, 정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다”며 “의료개혁 자체가 의대 증원에 묻히면서 엉뚱한 길로 가고 있는데 사과는커녕 언제까지 앵무새처럼 ‘잘하고 있다’고만 말할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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