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여론조사 중독, 끊어낼 수 있을까 [미디어전망대]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현대식 여론조사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시작됐다.
특히 언론이 '전형적인' 미국인들의 성생활부터 소비 성향까지 수치화한 조사를 공격적으로 보도하며 여론조사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대규모로 채집되어 균질화된 민심도 좋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시민들의 구체적인 생각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은 없을까? 벤자민 토프 미네소타대 교수는 단순한 즉답이 아닌 부동층의 복잡함에 천착한 여론조사의 성공 사례에 주목한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대식 여론조사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시작됐다. 통계 기법의 발달과 사회과학의 분화, 산업화와 매스미디어의 발전은 ‘평균적인 미국인’이 어떤 이들이며, 이들이 사는 사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이어졌다. 특히 언론이 ‘전형적인’ 미국인들의 성생활부터 소비 성향까지 수치화한 조사를 공격적으로 보도하며 여론조사는 거대 산업으로 성장했다. 시드니 버바 하버드대 교수는 “잘 설계된 여론조사는 수줍어하는 시민에게도 질문을 던짐으로써 소수자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한다”며 민주 사회에서의 여론조사의 순기능을 옹호했다.
여론조사 무용론도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1948년 미국 대선을 앞둔 여론조사는 공화당의 토마스 듀이가 민주당의 해리 트루먼을 누르고 압승할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정확히 68년 뒤인 2016년 여론조사 기관들은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를 누르고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대형 실책을 범하며 여론조사 무용론에 불을 붙였다. 한국에서도 근래 총선 출구조사의 정확도와 여론조사 조작 문제 등이 불거진 바 있다.
회의론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의 정확도 자체는 크게 내려가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수입, 종교, 지역, 학력 등 가급적 많은 변수를 보정하며 정확도를 높이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다만 다변화하고 양극화한 사회에서 더 많은 변수는 더 많은 표본집단수를 요구하기에 비용이 계속 오르는 것이 문제다. 특히 응답자들이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등 조작에 임했을 때 이를 알아채고 보정하는 것은 여론조사 기관들의 영원한 숙제다. 한국은 미국보다 전화 여론조사 비중이 높은데, 전화가 아닌 이메일 등의 조사 비중을 늘릴 경우 ‘잘 모르겠다’ 내지 ‘3-3-3-3’ 식으로 대충 찍는 답변자들을 걸러내는 것도 어렵다. 컬럼비아대 로버트 샤피로 교수는 양질의 여론조사 데이터를 얻는 것이 매우 어렵다며 “‘지난밤 성관계를 했냐’는 질문에도 ‘잘 모르겠다’는 무성의한 답 비율이 일정하게 나온다”고 꼬집었다.
사실 여론조사는 태생부터 여론을 조사하려는 목적 못지않게 홍보하려는 의도가 내재해 있다. 소비재 관련 여론조사는 광고 마케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선거 관련 여론조사도 여론조사 기관 그리고 이들과 연결된 정치 컨설팅 업체와 정치 주체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언론이다. 학자들은 여론조사가 현실을 축소 포착한 극사실주의 사진이 아니라 해당 시점의 인상을 점묘법으로 표현한 그림에 가깝다고 본다. 이 그림을 두세걸음 뒤로 물러서 봤을 때 여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이를 현실에 바로 대입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승패와 숫자에 몰입하는 경마식 보도에 중독되어 있다. 여론조사 결과의 맥락과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민심의 변화 등을 헤아리지 않은 보도가 남발되고, 이는 선거 조작설 같은 음모론에도 양분을 제공한다.
정치의 계절, 언론과 정당 모두 여론조사에 엄청난 돈을 뿌린다. 대규모로 채집되어 균질화된 민심도 좋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시민들의 구체적인 생각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는 방법은 없을까? 벤자민 토프 미네소타대 교수는 단순한 즉답이 아닌 부동층의 복잡함에 천착한 여론조사의 성공 사례에 주목한다. 그는 ‘열린 질문’을 통한 질적 인터뷰 등을 통해 민심을 경청하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관성적인 여론조사 그리고 과도한 언론 보도는 민주주의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서수민 |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홍장원 “윤석열 ‘싹 다 잡아들여’ 전화 지시…토씨까지 기억”
- 오요안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민낯은 ‘비정규 백화점’ 방송사
- “선관위 군 투입 지시” 시인한 윤석열…“아무 일 안 일어나” 궤변
- 기자 아닌 20대 자영업자…서부지법 난동 주도 ‘녹색 점퍼남’ 구속
- [영상] ‘체포 명단 폭로’ 홍장원 인사에 윤석열 고개 ‘홱’…증언엔 ‘피식’
- [단독] 김진태, 명태균에게 “나경원 해임 기사, 용산 사모님께 보내니…”
- 전직 HID 부대장 “노상원, 대북요원 ‘귀환 전 폭사’ 지시”
- “구준엽 통곡에 가슴 찢어져”…눈감은 아내에게 마지막 인사
- 윤석열 변호인단, 한겨레 단전·단수 “지시한 적 없다”
- 15억 인조잔디 5분 만에 쑥대밭 만든 드리프트…돈은 준비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