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년 농부다] ‘나홀로 밭에’ 시골서 배운 평화로움의 가치

이설화 2025. 2. 5. 00: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20년 25살 홀로 영월읍 이주·귀농
국제교환 프로그램 스위스서 농촌 생활
“텃밭 가꾸며 먹고 살만큼만 벌자” 목표
농업경영체 등록 등 어려움 겪기도
올해 전년 10배 2만여㎡ 땅콩 농사
“농사일 나를 성찰하는 시간 많아져”

3. 경소정 힐잇 대표

‘몇 년 동안 맨땅에 헤딩하면서 저에게는 농사에 재능도 능력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농사는 승부욕을 불타오르게 해요. 수확의 기쁨은 일 년 동안 저를 괴롭혔던 잡초, 벌레, 날씨 등 잦은 사건들이 잊힐 만큼 크거든요. 1년 동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했던 여러가지 시행착오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뿌듯함을 느끼는 거예요.’(경소정 브런치스토리)

서울에 살던 경소정(31) 씨는 지난 2020년 영월에 나홀로 이주했다. 창업에 매달리며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때였다. 귀농 생활은 그에게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줬다. 자연스레 복용하고 있던 약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가 만든 가공식품은 ‘힐잇’이라는 이름의 법인명으로 판매된다. ‘치료하다’는 뜻을 담아 소정 씨가 지었다. 영월살이 6년차에 접어든 소정 씨를 지난달 20일 영월 그의 집에서 만났다.

지난해 1983㎡ 땅콩 농사 짓기에 성공한 경소정 대표.

■나홀로 이주한 청년창업가

소정 씨는 창업가를 꿈꾸는 청년이었다. 대학에서 한방재료공학을 전공한 그는 벌나무와 백년초 가루를 활용해 소주 음용첨가제를 개발했다. 소주에 타먹는 음용첨가제가 인기를 끌던 때였다. 숙취해소에도 좋은 발포정 형태의 첨가제는 여러 대회에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술자리가 줄어들면서 판로 확보에도 애를 먹었다.

영월 귀농 생활에 눈을 돌린 것은 그때다. 서울에서 살던 소정 씨는 사실 영월이라는 지역을 알지 못했다. 그는 “첨가제에 들어가는 원료가 재배시기, 위치에 따라 맛이 바뀌었다”며 “원료를 안정적으로 수급하는 방법을 고민했는데, 원료 중 하나인 벌나무가 영월군 특화작목이었다”고 했다. 25살이었던 2020년 영월읍에 집을 구해 홀로 이주했다. 가족은 소정씨가 금방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

건강식품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소정 씨에게 스타트업은 ‘불이 꺼지지 않는 기업’이었다. 하지만 시골은 “해가 떨어지면 집에 가야 하는 곳”이었다. 소정 씨는 “시간을 쪼개 적응하느라 발버둥을 쳤다”며 “낮에는 농사를 짓고 지역 사람들과 관계를 맺느라, 저녁에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느라 여유가 전혀 없었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시골 생활의 ‘여유’를 알게 된 건 해야할 일을 모두 접고 떠난 스위스에서였다. 4-H 국제교환 프로그램(IFYE)을 통해 지난 2023년 여름 두 달을 스위스 농촌 마을에 머물렀다. 젖소를 기르는 60대 부부의 집에서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하루가 흐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스위스인 가족을 따라 깊은 산속 500년 된 숙소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시골에서 살면 한적하게 욕심부리지 않고 사는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돈을 벌어야겠다는 목표는 ‘텃밭을 가꾸며 먹고 살 정도면 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돌아온 영월에서는 적응이 한결 쉬웠다. 스위스에서 느낀 ‘평화로움’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는 “이전에는 대학원에 가고, 이직을 한 친구들을 보며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생각했어요. 지금은 달라요. 각자의 삶이 있고, 나에게 맞는 길을 가면 된다는 생각이에요. 비교를 잘 하지 않게 됐어요”라고 했다.

▲ 경 대표는 지난 2023년 6월부터 2개월 간 4-H국제교환훈련(IFYE)으로 스위스를 방문, 선진농업을 경험했다.

■농업경영체 등록까지 8개월

귀농 생활이 처음부터 평화로웠던 건 아니다. 농업 종사자임을 증명하는 농업경영체 등록까지는 8개월이 걸렸다. ‘말로만 듣던 텃세인가’ 생각했다. 농업경영체 등록을 위해선 이장이나 이웃 주민 2명의 서명이 들어간 경작 사실 확인서가 있어야 한다. 소정씨는 “이장님을 찾아갔는데, 농사 지을 것처럼 안 보였던 것 같다”며 실패담을 이야기했다. 농업에 오래 종사한 지인에게 고충을 토로했다. ‘책임은 이장 몫인데 쉽게 서명을 해주겠느냐’는 답이 돌아왔다. 결국 지인에 지인을 통해 ‘네 다리 걸쳐’ 설득한 끝에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소정 씨는 문화차이라는 결론을 냈다. 그는 “민원처리 하듯 일이 진행되지 않는 곳이 지역사회였더라고요. 사람 간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걸 배웠어요”라고 했다. 내부에서 본 영월은 마을별로도 지역색이 다르다.

농사지을 부지를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동네에 땅 없느냐’고 물으며 이장들을 쫓아다녀야 괜찮은 땅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사실을 알리 없던 귀농 첫 해, 그는 집에서 차로 40분 떨어진 산솔면에 992㎡(300평) 규모의 땅을 얻었다. 농사를 지으려면 밭을 갈아야 했지만, 시중에서는 로터리 작업에 60~80만원을 불렀다. 맨몸으로 땅 갈기에 나섰다. 300평 부지는 순식간에 ‘텃밭’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그는 “먹기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가지, 호박, 수박을 심었다”고 했다.

스위스 체류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땅콩 재배’로 농사에 재도전했다. 계획에는 없던, 오롯이 영월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주변에서는 황무지에서도 잘 자라는 게 땅콩, 지력을 키우기 위해 심는 게 땅콩이라고 했다. 지난해엔 1983㎡(600평) 규모 땅콩농사 짓기에 성공했다. 지역 식품가공센터를 오가며 땅콩버터, 토마토잼, 다래잼도 만들었다. 잼을 팔러 나간 경기 안양, 과천, 수원, 부산 등지에서 시민들은 ‘아가씨가 진짜 하는 것이냐’ 물었다. 농사 짓는 사진을 보여주면 “젊은 친구가 대단하다”며 손님들은 지갑을 열었다.

▲ 다래잼, 토마토잼, 땅콩버터 등을 만들어 농산물 직거래장터에서 팔고 있는 경 대표.

■콩 순을 칠 때도 시기가 있다

지난 몇 해는 소정 씨에게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그는 “콩 순을 칠 때도 시기가 있었다. 때를 놓치면 1년 농사가 날아갔다”라며 “처음엔 포기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잡초에 잡아먹힌 밭이었다”고 말했다.

농사일은 일을 하는 시간만큼은 혼자다. 이를 두고 소정 씨는 “나를 성찰하는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농사를 하며 든 생각은 글로 풀어냈다. 글을 쓰면 농사일을 하며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정리가 됐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찾아가는 데도 도움이 됐다. 어느새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스토리’에 글 30여개가 쌓였다. 수십 개 글에는 스위스 체류 경험과 영월 귀농생활이 담겨있다. 그는 “글이라는 결과물이 남는 게 좋아” 매주 일요일 피곤해도 책상 앞에 앉는다.

6년 차 귀농생활은 ‘평화로움’을 경험하는 시간이다. “하루하루 소소하게 즐기며 사는 게 행복인데, 이를 놓치고 있는 게 많다고 생각해요. 건강이 안 좋아져도 쳇바퀴 돌듯 계속 일을 하기도 하잖아요.” 소정 씨는 무엇보다 자신의 이야기가 청년들에게 닿길 바란다. “시골을 몰라서 서울이라는 환경에 맞춰서 경쟁하면서 살았던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는 올해 지난해 10배인 2만여㎡(6000평) 부지에 땅콩 농사를 짓는다. 땅은 농지은행의 도움을 받았다. 지난해 결혼한 배우자, 그리고 시부모가 함께 뛰어드는 온가족 농사다. 올해는 오롯이 땅콩 재배에만 집중할 계획이다. 농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첫 해다.

이설화 lofi@kado.net

 

#스위스 #경소정 #결과물 #벌나무 #음용첨가제

Copyright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