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55> 경북 문경 ‘광부 음식, 족살찌개’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2025. 2. 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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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의 탄가루 씻어준다던 이 음식…고된 탄광노동 설움도 씻어줬네

- 혹독한 광부일과 신산한 생활
- 든든한 단백질로 채워준 요리

- 얼큰하게 끓인 문경 족살찌개
- 폐광과 함께 소비도 점차 줄어
- ‘문경약돌 돼지’ 브랜드화로
- 고추장양념석쇠구이와 함께
- 옛 광부들의 족살찌개도 재현

- 칼칼한 국물에 고소한 고기
- 전형적인 ‘서민·노동의 맛’

한때 우리나라 근현대 에너지 생산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던 석탄산업. 깊은 갱도 속 사람이 직접 지층을 뚫고 탄을 캐야 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보니, 수많은 광부가 필요했고 또 종사해 왔었다. 한창 석탄산업이 호황이었을 때는 탄광 주위로 큰 도시가 하나씩 들어설 정도로 지역 경기 또한 크게 번창했었고, 광부들 역시 심신은 비록 고되더라도 벌이가 좋은 호시절을 누리기도 했다.

삼겹살을 고추장 양념에 발라 연탄불 위에 석쇠로 구은 고추장양념석쇠구이.


그러다 보니 탄광 지역을 중심으로 광부들이 즐겨 먹던 음식과 음식문화 또한 발달하기도 했는데, 그중 광부들에게 가장 유용하게 소용되던 식재료 중 하나가 돼지고기였다. 특히 석탄 광부들은 직업상 밀폐된 땅속에서 탄가루를 지속해서 흡입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어서 진폐증 같은 폐질환에 쉬 노출되는 고위험 직종이었다.

이 때문에 지난한 하루의 채탄 일과를 마친 후에는 삼삼오오 모여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다. 광부들은 돼지고기가 기관지와 폐 속에 끼어있는 미세한 탄가루들을 씻어낸다고 믿고 있었거니와 혹독한 노동으로 지친 몸에 이 돼지고기의 영양분을 넉넉하게 제공받기도 했을 터이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이용한 음식들이 널리 발달했는데, 강원도의 태백 삼척 영월과 경북의 문경, 전남의 화순 지역이 그곳이다. 한때 탄광업의 중심지였기에 광부들이 다양한 돼지고기 음식을 즐겨 먹던 곳이기도 하다.

▮텁텁한 탄가루 씻어준 돼지고기

경북 문경 광부들이 탄광에서 일하고 난 뒤 즐겨 먹던 족살찌개. 돼지 다리 고기를 사용해 얼큰하게 끓여 짭쪼름하면서 달큼한 맛이 일품이다.


그 대표적인 음식이 태백의 ‘돌구이’, 화순의 ‘돼지비계 말이’, 문경의 ‘족살찌개’ 등이다. 기실 광부들의 잦은 돼지고기 섭식은 나름 과학적 근거가 있어 보인다. 돼지고기는 인체의 노폐물이나 중금속 배출을 도와주고 혈관, 기관지 계통에 유효한 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당시 광부들은 비교적 싼 부위나 열량이 높은 부위의 돼지고기를 주로 먹었는데, 당시 싼 부위로 취급받던 ‘삼겹살(세겹살)’을 비롯해서 ‘돼지비계’나 ‘돼지 다리 살’ ‘돼지 내장’ 등을 굽거나 삶거나 끓여서 먹었다는 것이다.

‘세겹살’은 뜨거운 돌판에 구워 먹었는데 강원도 태백의 돌구이가 그것이다. 지금의 ‘삼겹살 구이’ 원조라고 보면 되겠다. 전남 화순의 돼지비계말이는 넓적한 돼지비계를 끓는 물에 삶아 살짝 식힌 후에 돌돌 말아서 썰어 먹는 음식이다. 꼬들꼬들한 맛이 일품이라 화순 광부들이 즐겨 먹었다고 한다. 문경의 족살찌개도 문경 지역 광부들이 흔히 먹었던 ‘광부 음식’ 중 하나다.

경북 문경은 1930년대부터 광산이 발달한 탄광 지역으로, 문경의 광부들 또한 비계가 들어간 돼지고기를 많이 소비했다. 특히 삼겹살을 비롯해 돼지껍질, 비계가 넉넉히 붙은 돼지 다리 살(족살) 등으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주로 삼겹살은 고추장 양념을 발라 연탄불 위에 석쇠로 구운 ‘고추장양념석쇠구이’로 먹었고, 돼지 다리 살은 얼큰한 족살찌개로 끓여 먹었다. 족살찌개는 말 그대로 돼지 다리 고기를 사용해 조리해 먹었던 돼지고기찌개를 말한다.

이 음식들은 오래도록 문경의 음식으로 널리 사랑받다가 탄광 폐광과 함께 그 소비가 점차 줄어들게 된다. 그러다 문경 가은읍에서 인체에 유익하다는 거정석(巨晶石, 페이그마이트)이 대량 채굴되면서 이 광부 음식들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맥반석보다 게르마늄 함유율이 100여 배 높은 이 돌을 문경에서는 ‘약돌’이라 부르는데, 이 약돌을 먹여 돼지 사육을 시도한 것이다. 이 약돌을 사료에 섞어 먹인 돼지, 일명 ‘문경약돌돼지’를 브랜드화하면서 돼지고기의 고급화에 성공했고, 이 약돌돼지고기로 고추장양념석쇠구이와 족살찌개를 새로이 재현해 낸 것이다.

그래서인지 문경 관광지를 중심으로 어디에서나 ‘약돌 돼지고기’를 이용한 고추장양념석쇠구이의 매캐한 연기가 진동하고, 입맛 진하게 다시게 하는 얼큰한 족살찌개를 쉬 맛볼 수가 있게 되었다.

▮얼큰하고 들큼한 맛의 노동 음식

문경새재 초입의 식당에서 족살찌개를 시킨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족살찌개가 밥상에 오른다. 찌개 특유의 맵싸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코끝을 진동한다. 찌개 속으로 ‘족살’이 넉넉하게 들어앉았다. 느타리 목이 팽이 등 버섯류와 양파 대파 양배추 청양고추 등 속도 푸짐하다.

국물 한술 뜬다. 예상대로 칼칼하다. 국물 한 술에 입안이 바짝 긴장할 정도로 자극적이다. 그러면서도 돼지고기가 어우러져 진하고도 고소하다. 얼큰하면서도 들큼한 것이 ‘몸은 깨우면서, 마음은 풀어주는’ 전형적인 노동 음식, 서민 음식이라 하겠다.

찌개 속 족살을 한 점 맛본다. 살코기와 비계 부위가 조화롭다. 고기의 쫀득한 식감 뒤로 비계의 고소함이 뒤따르며 입안이 흥미로워진다. 밥 한술에 족살 한 점 얹어 먹으니 씹으면 씹을수록 그 고소한 맛이 배가된다. 짭조름한 국물이 잘 밴 버섯이나 대파, 두부 등을 족살과 함께 곁들여 먹어도 좋다.

남은 찌개 국물에 밥 몇 덩어리 넣고 쓱쓱 비빈다. 크게 한 숟갈 입에 넣고 먹으니 집약된 족살찌개의 맛깔이 그대로 느껴진다. 매콤짭짤, 들큼고소, 그리고 진하면서 감칠맛 좋은, 족살찌개의 대미를 풍성하게 맛보게 되는 것이다.

한때 우리나라 최대의 에너지 자원을 제공했던 석탄산업. 1990년대 전후로 산업 구조와 에너지원의 변화, 환경 문제 등으로 연탄 수요가 감소하면서 각지의 탄광들은 폐광의 길을 걷게 됐다. 현재,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따라 전국의 대표 탄광들은 대부분 폐광한 상황이다.

‘막장 인생’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신산한 환경 속에서, ‘마지막 직업’ 삼아 갱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을 이 땅의 광부들. 이제 이들도 역사의 뒤안길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광부들의 몸과 마음을 다독여 주고 위로해 주던 광부의 음식문화 또한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이즈음이다. 그나마 삼겹살 구이가 광부 음식으로 시작해 국민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고, 족살찌개가 문경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향토음식으로의 부활을 꿈꾸고 있기에 나름 다행이라 여겨지는 이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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