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변형부터 AI까지…‘아실로마 회의’ 50돌의 성찰 [오철우의 과학풍경]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의 한적한 휴양지 아실로마는 과학기술의 위험 문제와 관련해 주요한 회의들이 열렸던 명소이기도 하다. ‘알파고 쇼크’ 이듬해인 2017년 이곳에서 ‘아실로마 인공지능(AI) 원칙’이 선언됐고, 2010년에는 지구공학 기술의 위험을 평가하는 회의가 열려 정책 권고문이 발표됐다.
아실로마가 과학기술 정책 토론의 상징 장소가 된 것은 1975년 생물학자들이 연 역사적인 회의 이후였다. 1970년대는 유전공학이 태동하던 시기였고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는 여러 기술이 잇따라 등장했다. 그러던 중에 미국 생화학자 폴 버그(1926~2023)는 실험실에서 바이러스에 대장균 유전자를 집어넣는 게 실제로 가능함을 처음 확인했다. 그는 그렇게 만들어진 유전자 변형체가 유출되거나 악용될 때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걱정했고, 과학자들이 유전자 변형 기술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두고 공개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료 과학자들은 실험 중단을 선언한 채 더 많은 과학자가 참여하는 회의를 준비했다. 1975년 2월24~27일 아실로마에서 과학자뿐 아니라 변호사, 의사 등 140여명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격론 끝에 유전자 재조합 연구의 실험실 안전 지침이 이때 처음 만들어졌다. 2008년 폴 버그는 회고의 글에서 “이 회의는 과학 정책의 공공 토론이라는 전례 없는 시대의 시작”이라고 썼다. 아실로마 회의는 과학기술 윤리와 책임을 다루는 교재에서 과학자가 스스로 과학기술의 잠재적 위험을 알리고 공론장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 했던 모범 사례로 자주 다뤄진다.
아실로마 50주년을 맞아 과학저널 ‘사이언스’가 최근호에서 아실로마 회의를 다룬 사설과 글 두편을 나란히 실었다. 흥미로운 점은 세편의 글이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아실로마 회의를 다른 시선에서 재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구촌 남반구에서 아실로마를 바라보다’라는 제목의 사설은 아실로마 회의가 지구적인 기술 위험을 다루는 방식으로 충분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실로마 회의는 서구 과학자 중심으로 무엇이 위험인지를 규정하고 그 프레임에 맞춘 해법을 찾는 데 만족하면서, 기술과 연결된 정치, 경제, 문화, 건강, 환경 같은 더 넓은 문제는 다루지 못했다. 과학 전문 지식을 갖춘 사람만이 신기술의 위험 문제를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은 아실로마의 굳건한 유산이 되었고, 그것이 유전자 변형 작물(GMO)과 관련한 지구적인 논란의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함께 실린 다른 글의 필자는 진정한 합의는 과학적 합의만으로 부족하며, 불일치를 긍정하고 상호이해와 겸손을 품는 세계주의적인 숙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달에 50주년 기념 회의가 ‘아실로마의 정신과 생명공학의 미래’를 주제로 열린다고 한다. 회의를 준비하는 관계자는 다른 글에서 아실로마의 정신을 확장해 인공지능, 합성생물학 같은 의제도 공공 이익, 사회적 관계,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번영에 관한 문제와 함께 다룰 예정이라고 말한다. 신뢰는 개방적이며 확장하는 아실로마의 정신에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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