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스터도 폴란드에선 예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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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급 군인 보체크에게 희망은 없다.
경기 양평 이함캠퍼스에서 열리고 있는 '침묵, 그 고요한 외침'은 폴란드 포스터의 정수를 모아 놓은 전시회다.
폴란드 포스터는 이와 달리 줄거리를 암시하는 상징적 이미지를 그린다.
전시를 기획한 김신 디자인칼럼니스트는 "당시 폴란드 영화사가 국영이어서 디자이너가 상업적 흥행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포스터를 그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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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그 고요한 외침'
폴란드, 50~60년대 '포스터 왕국'
톱스타 얼굴 대신 상징적 이미지
공산주의에 반발한 예술가들
저항의식을 은유와 유머로 승화
상업성 신경 안쓰고 개성 드러내

하급 군인 보체크에게 희망은 없다. 동거녀 마리는 그의 상급자와 부정한 관계다. 상급자는 불륜 사실을 대놓고 자랑하는 등 보체크를 조롱한다. 결국 보체크는 마리를 살해한다. 가난한 군인의 비극적 삶을 다룬 오페라 ‘보체크’(1922)의 줄거리다.
보체크 오페라만큼 중요한 작품이 1964년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포스터다. 붉게 칠한 화면에 입만 남은 얼굴이 고통으로 절규하는 듯하다. 권력에 굴복해 살아가는 힘 없는 민중을 암시한 ‘알반 베르크 보체크’다. 폴란드 그래픽 작가 얀 레니차가 디자인한 이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포스터 중 하나로 꼽힌다.
경기 양평 이함캠퍼스에서 열리고 있는 ‘침묵, 그 고요한 외침’은 폴란드 포스터의 정수를 모아 놓은 전시회다. 오황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 수집한 폴란드 포스터 8000여 점 가운데 200점을 6부에 걸쳐 보인다. 이함캠퍼스는 두양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복합예술공간으로, 새로운 예술을 국내에 소개하는 배움터란 의미에서 캠퍼스란 이름이 붙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디자인 가구 컬렉터인 오 이사장이 포스터를 모으기 시작한 건 10여 년 전 폴란드 바르샤바를 찾았을 때다.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현지 컬렉터가 우연히 보여준 포스터를 마주하자 숨이 턱 막혔다”며 “내친김에 작품 수백 장이 들어 있는 철제 서랍을 통째로 구입했다”고 말했다.
“수년간 작가의 유족을 찾아다니며 귀하다는 에스키스(원본 스케치)까지 사들였어요. 이제는 폴란드에서도 자기네 포스터를 구하려면 저를 찾아야 한다고 말할 정도예요. 하하.”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지만 폴란드는 ‘포스터의 왕국’으로 불린다. 1950~1960년대 활동한 이를 따로 모아 ‘폴란드 포스터 학파’로 분류할 정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들어선 공산주의 정권에 대한 저항 의식을 기반으로 한다. 선전·선동에 활용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회의를 느낀 예술가들이 고도의 은유와 유머를 섞은 포스터를 만든 것이 시작이다.
전시품의 70%가량은 영화 포스터다. 영화 포스터는 흥행을 위해 주연을 맡은 톱스타의 얼굴을 부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폴란드 포스터는 이와 달리 줄거리를 암시하는 상징적 이미지를 그린다. 전시를 기획한 김신 디자인칼럼니스트는 “당시 폴란드 영화사가 국영이어서 디자이너가 상업적 흥행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포스터를 그릴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로마의 휴일’ 포스터가 단적인 예다. 폴란드 작가 예지 플리삭이 그린 버전은 로마를 상징하는 개선문과 매혹적인 공주, 그를 찾으려고 애쓰는 수행원들을 유머러스하게 묘사한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핵심 이미지인 할리우드 오리지널 포스터와 대조된다.
암울한 당대 사회 분위기를 꼬집은 작품도 여럿 나왔다. 타데우스 트렙코프스키의 ‘안 돼!(NIE!)’는 간단명료한 폭탄의 실루엣으로 반전(反戰) 메시지를 전한다. 제1차 세계대전과 소비에트 전쟁, 제2차 세계대전, 바르샤바 봉기 등 격랑의 세월을 겪은 폴란드인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하다.
‘길거리 예술’이라는 특징은 포스터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 대중의 이목을 끌고 정보를 전달하는 포스터의 성격상 광장이나 골목 벽에 주로 붙었기 때문이다. 전시장 벽을 바르샤바 길거리처럼 꾸민 마지막 6부 전시관을 눈여겨볼 만하다. 김 칼럼니스트는 “눈과 비에 젖고 찢어지는 것도 포스터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6월 22일까지.
양평=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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