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도 잡음도 ‘이슈메이커’… 中 반상(盤上) ‘반항아’ 커제 9단은 누구
한·중 바둑계 갈등 고조… 양국 교류 냉각 촉발
바둑 애호가 부모 밑에서 5세에 반상 입문
메이저 우승컵 8개 보유... 중국 바둑 ‘황제’
도발적 언행에 따른 각종 ‘구설’로 유명
반상 이외의 다양한 개인 사생활 추구
[반상톡톡(5)]

‘이슈메이커’임엔 분명했다. 탁월한 기량과 유달리 큰 경기에서 더 두드러진 승부 근성까지 겸비했던 터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로 굳어진 직설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은 또 다른 볼거리다. 중국 바둑계 아이콘인 커제(28) 9단의 역동적인 반상(盤上) 스토리다.
커제 9단이 연초부터 또다시 세계 바둑계를 달구고 있다. 을사년 첫 세계 메이저 기전인 ‘제29회 LG배 조선일보 기왕전’(우승상금 3억 원) 결승전(3번기·3판2선승제)에서 상대방의 따낸 돌(사석) 관리 규정 위반과 관련, 사상 초유의 판정 불복에 따른 반칙패로 사실상 우승컵을 헌납하면서다.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해온 중국 측은 당초 예정됐던 한국 내 세계 기전 불참 통보 등으로 강경 모드에 돌입한 상태다. 한국기원은 ‘이번 논란이 지속될 경우, 한·중 양국 바둑계 모두 이로울 게 없다’는 암묵적인 공감대 속에 지난 3일 운영위원회를 열고 문제의 ‘사석 관리 규정 위반’과 관련된 반칙패 폐지까지 결정했다. 다만 이번 ‘LG배 기왕전’ 도중 불거졌던 커제발(發) 역대급 ‘반상반한(盤上反韓)’ 한파 여파는 세계 바둑계 역사의 한 페이지로 장식될 전망이다. 최전성기에선 내려왔지만 여전히 세계 바둑계 ‘뜨거운 감자’인 커제 9단의 반상 행마를 복기해봤다.
바둑에 진심이었던 집안서 출생… 2015~20년 매년 1, 2개 세계 메이저 기전 우승

중국 저장성 리수이시 출신인 커제 9단은 지난 1997년 바둑 애호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수리(水理) 엔지니어였던 부친은 평소 바둑으로 대부분 여가 시간을 보냈던 아마 3단 수준의 바둑광이었고, 모친도 지역 내 바둑대회에 참여할 만큼 반상엔 진심이었다. 특히 모친은 커제를 임신한 상태에서도 인근 기원에 나가 대국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커제는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바둑을 접했던 셈이다. 바둑과 가까웠던 부모의 영향으로, 5세 때 반상을 접한 커제 9단은 11세에 입단(2008년)했다. 하지만 입단 초기엔 또래였던 판팅위 9단이나 미위팅 9단, 양딩신 9단 등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그랬던 커제 9단이 수면 위로 부각된 시점은 2015년. 당시 백번(백돌)으로 34연승 신기록까지 세웠던 그는 그해 ‘제2회 백령배 세계선수권대회’(우승상금 1억7,000만 원)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매년 1, 2개의 세계 메이저 기전에서 우승했다. 이 기간 커제 9단이 축적한 세계 메이저 기전 우승컵은 모두 8개(세계 최연소)인데, 이는 중국 바둑계의 또 다른 전설인 구리(42) 9단과 함께 이 부문 공동 4위에 해당된다. 커제 9단이 올해 ‘제29회 LG배 기왕전’ 타이틀 획득과 더불어 중국 내 세계 메이저 기전 최다 우승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공공연히 내비쳤던 속내도 여기에 있다. 세계 메이저 기전 우승 횟수는 당대 글로벌 반상 권력의 바로미터로 통한다.

커제 9단의 중국 내 존재감도 무시무시했다. 지난 2018년 11월부터 51개월 연속 랭킹 1위였던 그는 중국 및 국제대회에서 따낸 우승트로피가 총 23개다. 무엇보다 커제의 진가는 이번 ‘제29회 LG배 기왕전’ 직전까지 3판2선승제(3번기) 이상의 세계 메이저 기전 타이틀 결정전에서 기록한 80% 승률(8승2패)에 있다. ‘커제 9단이 결승에 진출한 대회에서 그를 꺾긴 쉽지 않다’는 게 바둑계의 전망이었다. 국내 최대 프로 기전인 ‘2024~25 KB국민은행 바둑리그’(우승상금 2억5,000만 원)에 참가 중인 한 기사는 “메이저 기전에서의 높은 승률은 커제 9단에게 ‘큰 경기에 강한' 스타 이미지를 확실히 각인시켜 줬다”며 “중국에서 커제 9단의 광범위한 팬덤이 형성된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고 귀띔했다.
거친 입담 및 비매너 등도 구설… 반상 이외 자국 내 각종 오프라인 이벤트 활동 또한 활발

화려한 전적만큼 커제 9단의 반항적 기질 또한 유명했다. 대국 도중 자신의 뺨을 강하게 때리는 일이 잦았고, 기본적인 예의에서 벗어난 비매너 행위도 디반사였다. 지난 2019년 중국 주최의 ‘CCTV 하세배 한·중·일 바둑쟁탈전’(우승상금 1억3,000만 원) 생방송에서 터져 나왔던 참사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박정환(32) 9단과의 대국에서 커제 9단은 대국 종반 나온 치명적인 실수에 자신의 뺨을 강하게 때린데 이어 자신의 돌통에서 쥐었던 한 움큼의 바둑돌들을 대국장 바닥에 신경질적으로 던지기도 했다. 커제 9단이 대국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반성의 메시지를 게재했지만 세계 바둑계의 흑역사로 새겨진 이 사태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커제 9단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2016년 당시 구글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와 인간계 대표로 나섰던 이세돌(42·은퇴) 9단의 대국 때 예상을 뒤엎고 이 9단이 1국에 이어 2국까지 패하자 “오늘처럼 바둑을 둔다면 인류를 대표할 자격이 없다”며 “이 9단에게서 절망을 느꼈다”란 취지의 커제 9단 악평 논쟁은 진실공방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호기를 부렸던 커제 9단도 정작 이듬해 알파고에게 3전 전패로 완패하고 눈물까지 흘렸다.

커제 9단은 중국에 대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중국 바둑팀 대표로 참가했던 커제 9단은 선수촌 식당 음식에 대해 “진짜 맛 없어서 토할 거 같다. 이 양고기는 입덧할 것 같다”고 자신의 SNS를 통해 직격했다. 이후 알 수 없는 이유로 해당 내용이 삭제됐지만 누리꾼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엔 충분했다.
반상을 벗어난 커제 9단의 사생활도 주목받는다. 중국 내 각종 오프라인 이벤트 행사에 단골 초대 손님처럼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최근 들어선 개인 인터넷 방송도 운영하면서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하루 일과의 가장 많은 시간을 반상 연구에 '올인'하는 다른 프로 바둑 기사들과 확연하게 다른 모양새다.
한국의 한 중견 프로 바둑 기사는 “이번 ‘LG배 기왕전’ 판정 불복 논란에서 보여줬던 커제 9단의 감정적인 행태에 대해선 동의하긴 어렵다”며 “실력과 팬덤까지 갖춘 커제 9단이 향후 자신의 영향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재경 선임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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