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 가가 그래미 수상소감 중 ‘퀴어 지지’ 빼버린 한국 통역

국내 방송채널 ‘엠넷’이 미국의 대중음악 시상식 ‘그래미 어워즈’를 생중계하면서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수상 소감에서 성소수자 지지 표현을 한국어로 통역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레이디 가가는 지난 2일(미국 현지시간) 그래미 시상식에서 다른 팝스타 브루노 마스와 함께 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상을 수상했다. 레이디 가가는 소감에서 “오늘 밤 이 말을 하고 싶다. 트랜스젠더들은 투명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며 “퀴어 커뮤니티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음악은 사랑이다”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남성과 여성 두 성별만을 인정하겠다고 한 데 대한 비판으로 해석됐다. 레이디 가가의 발언에 동료 가수들을 비롯해 객석의 관중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이 시상식을 국내에 독점 생중계한 엠넷은 이 발언을 온전히 통역하지 않았다. 동시통역자는 방송에서 “다양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포용하고 음악의 가치를 말한 것 같습니다”라고만 전달했다.
시청자들은 성소수자를 다루지 않는 국내 대중매체의 문제가 반복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해설이 왜 이러냐. 국내 방송국들은 아직도 많은 발전이 필요하다”라거나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띄엄띄엄 통역하는 중계가 답답하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동시통역이 미흡했다면 이후 해설에서도 레이디 가가 발언 취지를 전할 수 있었을텐데 엠넷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성소수자를 가시화하지 않으려는 한국 미디어의 고질적 폐습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호림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는 “예전부터 해외 시상식에서 시상자나 수상자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뭉뚱그려 통역하던 일의 연장선상”이라며 “이번 발언은 트럼프가 두 개 성별만 인정한다고 하는 등 반동적 시도가 있는 상황에서 나온 목소리”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만큼 (해설진이) 공적 목소리를 정확하게 통역하고 이러한 지지 발언이 어떤 의미인지 풍부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도 국내 방송드라마·무대 등에서 이른바 ‘성소수자 지우기’가 반복됐다. SBS는 2021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방영하며 동성 간 키스 장면을 편집했다. SBS는 “15세 이상 시청가를 고려해 편집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프레디 머큐리의 성소수자로서의 존재성을 지웠다는 비판을 받았다.
서울시는 2021년 연말 보신각 온라인 타종식 무대 방송을 송출하며 성소수자를 언급한 가사를 삭제해 지적받았다. 당시 댄스팀 라치카는 성소수자와 연대하는 메시지를 담은 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 웨이’에 맞춰 춤을 췄다. 이때 ‘동성애자, 이성애자, 양성애자든 상관없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의 삶도 난 맞는 길로 가고 있어’ 등의 가사가 삭제됐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102142041015
https://www.khan.co.kr/article/202201032115025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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