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 꺾이는데 물가 올라"…동장군 물리치는 토마스의 집 '200원 밥상'[현장]

이명동 기자 2025. 2. 4.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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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역 6번 출구 앞…배식 전부터 인파 60여 명 대기
'자존심비' 내면 식사·간식·핫팩 제공…인플레에 운영 어려움
물가 올라도 반찬 유지…"다른 곳 가서 6000원 내도 못 먹어"
[서울=뉴시스]이명동 기자 =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6번 출구 앞 급식소인 토마스의 집에서 자원봉사자가 배석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특보가 이날 따뜻한 국물과 김이 피어오르는 쌀밥을 찾아온 쪽방촌 주민 등 60여 명은 토마스의 집 운영 전부터 줄지어 서서 급식소 개장을 기다렸다. 2025.02.04. ddingdong@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이명동 기자 = "30년 넘게 이곳을 운영하다 보니 저축해뒀던 걸 가져다 쓰는 상황인 걸로 알아요."

전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특보가 발표된 가운데 따뜻한 국물과 김이 피어오르는 쌀밥을 찾아 4일 오전 10시40분께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6번 출구 앞 토마스의 집에는 쪽방촌 주민 등 60여 명이 줄지어 서서 급식소 개장을 기다렸다.

김이 피어오르는 음식과 함께 온열 기구가 작동하는 토마스의 집은 인근 쪽방촌 주민으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오전 11시 문을 열기 20분 전부터 몰린 인파는 삼삼오오 모여 "가만히 있으면 춥다" "자꾸 움직여줘야 한다" "날이 워낙 차다" 같은 담소를 나누면서 한기를 견뎌냈다.

패딩 점퍼를 입고 마스크를 쓴 채 모자를 눌러쓴 이들은 추위에 떨면서도 한 끼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을 기다리는 따끈한 음식은 쌀밥, 소고기미역국, 제육볶음, 나물 반찬, 배추김치였다.

식사비는 200원이다. 주변에 쪽방촌에 거주하는 독거노인이 주된 이용자다. 이들은 '자존심비'로 불리는 200원을 내고는 10분께 만에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는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홀연히 자리를 떠난다.

턱없이 낮은 식대에 치솟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이 맞물려 운영상 어려움은 가중하고 있다.

[서울=뉴시스]이명동 기자 =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6번 출구 앞 급식소인 토마스의 집 이용을 원하는 방문자가 개장 전 옆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특보가 이날 따뜻한 국물과 김이 피어오르는 쌀밥을 찾아온 쪽방촌 주민 등 60여 명은 토마스의 집 운영 전부터 줄지어 서서 급식소 개장을 기다렸다. 2025.02.04. ddingdong@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토마스의 집 총무를 맡고 있는 박경옥(65·여)씨는 "후원 자체가 예년보다 많이 준 것은 사실"이라며 "저희뿐 아니라 어디나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인플레이션 때문에 워낙 가격이 올라서 그게 조금 힘들다. 이렇게 계속 가다 보면 손해가 엄청 크다"고 털어놨다.

박씨는 물가가 많이 올렸지만 반찬 수를 줄이지는 않았다며 "좋은 음식으로 잘하면 가격대가 너무 높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식사에 채소가 많아지는데 요새는 야채도 비싸서 막상 또 그렇지도 않다"며 "더 들어가고 덜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식판 한 개에 3000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식사를 마친 이들은 핫팩, 라면 한 봉지, 바나나 한 봉지를 받아 떠난다. 하루에 한 끼 식사 밖에 제공하지 않는 탓에 토마스의 집은 이 같은 물품을 제공한다.

이를 유지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이 박씨 설명이다. 그는 "그것은 저녁 대용으로 제공한다. 한 달이면 그 비용이 엄청나다"면서 "하루에 평균적으로 350~370개 정도 나가는 것 같다. 거기에 커피, 바나나 등을 모두 제공하려면 가격이 비싸다"고 전했다.

이어 "여기가 30년 넘게 운영되다 보니 지금 쓰고 있는 것은 예전에 저축한 것을 가져다 쓰는 상황일 것"이라며 "독거노인이 주로 방문한다. 날씨가 춥거나 하면 잘 나오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는 명절 때 600명 넘게 방문했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 언급했다.

빽빽하게 마련된 26자리는 만원 상태가 이어졌고 바깥에는 설치된 간이 두 식탁과 네 의자도 비는 때가 없었다. 높은 회전율을 보이는 만큼 미리 음식이 담긴 식판 서너 개가 늘 방문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를 기다리던 신대복(68)씨는 "이곳에 다닌 지는 10년 가까이 됐다. (인근) 영등포광야교회에서도 밥을 주고 여기서도 준다. 처음에는 교회를 다니다가 여기로 옮겼다"면서 "대부분 오는 사람이 온다.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 손에는 커피를 쥔 권영옥(64)씨는 "여기에 온 지 20년 됐다. 밥을 (거의) 무료로 준다고 해서 오게 됐다. 200원을 내긴 하지만 그것은 받아야 하는 돈"이라며 "여기는 간식도 주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사람이 많다. 주변이 비슷한 시설이 네 군데 있는데 여기가 사람이 많다"고 귀띔했다.

권씨 뒤로도 한 손에 커피를 쥔 채 걸어 나오는 식사자 행렬이 이어졌다. 80대 여성 김씨는 식사에 만족했다며 "200원을 내서 기분이 좋다. 다른 곳에 가면 5000~6000원을 줘도 못 먹는 음식"이라고 설명을 보탰다.

[서울=뉴시스]이명동 기자 = 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6번 출구 앞 급식소인 토마스의 집을 이용한 방문자가 식사 뒤 받은 간식을 주머니에서 꺼내 보이고 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특보가 이날 따뜻한 국물과 김이 피어오르는 쌀밥을 찾아온 쪽방촌 주민 등 60여 명은 토마스의 집 운영 전부터 줄지어 서서 급식소 개장을 기다렸다. 2025.02.04. ddingdong@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주머니에 든 라면과 바나나들 꺼내 보인 김태용(71)씨는 "아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지난해 여름부터 새로운 사람 많이 오기 시작했다. 남구로 역전에 가면 인력사무소에서 노동일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이들 중에 일이 없어서 오는 사람이 많다. 젊은 사람도 늘었다"라면서 "오늘같이 추운 날씨에는 천안까지 지하철을 타고 왔다 갔다 한다. 나는 지하철이 무료"라고 했다.

추위에 떠는 김씨 모습을 본 한 주민은 만원짜리 지폐를 한 장 건넸다. 몇 번의 사양 끝에 만원짜리를 받아 든 김씨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웃어 보였다.

그는 오전에도 5000원짜리 지폐를 건넨 사람이 있었지만 받지 않았다며 "그 사람도 어려운 사람일 텐데 받을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토마스의 집은 목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운영한다. 다만 방문자가 많을 때는 한시적으로 연장 운영하기도 한다.

지난달 토마스의 집이 문을 연 22일 동안 하루 평균 362명이 방문해 한 끼의 온정을 느꼈다. 그중 18일(82%)은 351명 이상이 급식소를 찾았다.

1993년 2월 문을 연 토마스의 집은 당시 김종국 신부가 쪽방촌 주민 등에게 무료로 급식을 제공하고자 설립한 장소다. 고정 지원이나 후원회 없이 관심 있는 기관, 단체, 개인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부 종교단체나 기업도 힘을 보태고 있다.

24절기 중 첫 번째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立春)인 전날은 서울 동북권에 올해 첫 한파경보가 발효됐고 이튿날인 이날은 전국 대부분 지역에 한파특보가 내려졌다.

기상청은 아침 기온이 전날보다 5~10도가량 큰 폭으로 떨어져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영하 10도 이하로 매우 낮아 강추위가 당분간 이어지겠다고 예보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ddingdo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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