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세수확보→법인세 면제, 트럼프가 '꿈꾸는 세상' 실현될까

한정연 기자 2025. 2. 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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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관세 경제 본격화
캐나다·멕시코에 관세 압박
30일 유예했지만 끝이 아니야
관세로 소득·법인세 대체하려면
석유가격 낮추고 해외기업 유치
해외비중 높은 韓 대기업 눈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경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관세로 소득세와 법인세를 대체하고, 세계 주요 수출 제조기업의 생산거점을 미국으로 옮기겠다는 트럼프의 꿈은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을까. 세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트럼프가 꿈꾸는 세상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31일 집무실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세계 경제가 다시 트럼프발發 무역전쟁에 말려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법을 근거로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중국에 추가로 10%의 보편적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히고는 3일 이를 30일 간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무역협정(USMCA)에 따라 대부분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아왔다.

이미 예견된 행동이었지만 세계 시장은 여지없이 풍랑을 겪었다. 캐나다 환율은 3일 달러당 1.47 캐나다 달러로 2% 이상 급등했고, 최근 1개월간 최고치를 기록했다. 멕시코 환율도 3일 달러당 21.19페소로 2% 이상 급등했다. 원·달러 환율도 3일 장중 달러당 1470원을 넘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를 한 달 유예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되진 않는다. 트럼프 1기에서 멕시코 관세 부과를 철회했던 것과 이번은 다를 수 있다. 트럼프 2기 경제의 핵심은 관세이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풍랑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 해상에서 부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조류의 흐름 자체를 바꿔버릴 수도 있다. 환율의 변화가 그 바로미터다.

트럼프의 '관세 경제'가 정말 무역에 국한된 일이라면, 미국이 앞으로 손해를 보라고 지정한 나라들, 예컨대 중국이나 캐나다 위주로 환율 변동이 관측돼야 한다. 관세와 보복관세로 미국의 수입품 가격이 상승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미국 금리는 단기간 상승하고, 그 영향으로 다른 나라 통화가치가 하락할 수 있어서다.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이 피해를 봐도 미국 달러화는 안전자산으로서의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이 원하는 게 자국 기업의 유턴뿐만 아니라 수출 경쟁력이 있는 전세계 우량 대기업들의 생산기지를 모두 미국으로 이전시키는 것이라면 환율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준으로 상승할 수 있다.

무역 의존도가 큰 나라일수록 차례로 사실상 달러 경제권에 편입돼 세계 무역은 위축될 것이며, 이는 더 큰 달러 가치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다. 미국을 제외한 나라 대부분이 수출 경쟁력을 잃는다고 표현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사진 | 뉴시스]

트럼프가 관세 부과를 서두른 건 관세가 그의 경제정책에 첫 단추를 끼우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미국에 물건을 팔아 이익을 낸 국가의 기업들에 더 많은 관세를 부과해 세수를 확보하고, 이를 미국 내 소득세와 법인세 면제의 재원으로 삼겠다고 공언해 왔다.

관세로 세금을 대체한다는 아이디어는 현시점에서는 실현하는 게 불가능하다. 트럼프의 관세 부과와 보복관세가 맞물리면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경제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하지만 관세 부과와 보복관세 등으로 발생하는 미국의 수입품 가격 상승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트럼프의 '관세 부과→세수 확보→소득세‧법인세 면제의 재원'이라는 구상이 현실화할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세가지다. 미국이 이들의 법인세를 0에 근접하게 감세해 주고, 미국인 근로자들의 인건비를 최저 수준의 석유·전기·원자재 가격으로 상쇄시켜주며, 세계 유력 수출 대기업들이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면 가능하다.

먼저 법인세를 '제로'로 만든다는 계산부터 보자. 트럼프가 취임 직후 글로벌 최저한세를 무시하기로 한 것이 그 첫 단계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2021년 G20이 거대 다국적기업들의 최저 실효 법인세율을 15%로 규정하기로 정한 것으로 미국·한국 등 130개국이 시행하기로 결정한 협정이다.

트럼프는 지난 1월 22일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글로벌 세금 협정'이란 각서에서 "글로벌 최저한세 제도는 미국의 소득세 부과 권한을 해외로 넘기는 것"이라며 "협정에서 미국은 빠지겠다"고 밝혔다.

둘째 조건인 미국 에너지 가격 하락도 오래된 안건이다. 미국은 2018년 이후 6년 연속 세계 최대 산유국을 유지하고 있는데, 조만간 최대 석유 수출국 지위도 거머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2023년 석유 생산량은 1일 평균 1290만 배럴로 과거 최대 산유국이었던 사우디‧러시아보다도 30% 이상 많았다.

트럼프는 2023년 9월 7일 발표한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저렴한 에너지와 전기를 가져야 한다'는 공약에서 "미국이 에너지와 전기 비용을 세계 최저로 만들면,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석유 매장량이 900억 배럴에 달하는 그린란드의 편입을 취임 이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셋째, 해외 우량 수출기업들이 미국으로 생산거점을 이동시키면 트럼프의 관세 경제가 완성된다. 그런데 이는 단지 한국·독일 등이 자국 우량 수출 대기업들을 미국에 빼앗긴 것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의 비非미국 수출이 급증한다는 뜻이고, 달러 경제권이 사실상 세계로 확장한다는 뜻이다.

미국은 2018년 이후 6년 연속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 자리를 지키고 있다. 텍사스주 미드랜드의 석유 생산시설 모습. [사진 | 뉴시스]

다만,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아니다.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2기에 남은 시간은 4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이미 생산거점을 상당 부분 이전했고, 앞으로도 이전할 계획이 많은 한국 기업들이 트럼프에게는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제조업 총산출(한해 동안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총액)의 절반 정도는 해외에서 소비되거나 해외 생산에 중간재로 쓰이고 있다(직·간접수출). 한국은행은 지난해 9월 발표한 '글로벌 공급망으로 본 우리 경제 구조변화와 정책 대응'이라는 보고서에서 "전 세계 제조업 생산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조차 해외 비중을 뜻하는 직·간접수출 비중이 19%에 불과하다"며 우리나라의 높은 해외 비중을 우려했다.

우리 대기업들이 그간 미국은 물론이고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상장 등을 통해서 자본을 유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과거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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