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죽을지 몰라서 쓴 당신과 나의 이야기
구급차를 타게 되면서 얻은 건 불안이었다. 눈에 보이는 많은 것이 위험하게만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아이가 씹어 삼킨 사과 조각이 기도를 막기도 했고, 평상시 잘 타고 다니던 마을버스가 뒤집히기도 했다. 신호를 잘 지킨 차를 10t짜리 화물차가 덮치는 일도 있었다. 사고뿐 아니라 지병으로 급작스레 숨진 사람들, 전혀 생각지 못한 물건 때문에 세상을 등진 이들도 너무 많았다. 2017년부터 소방관 생활을 하며 백경(필명) 작가는 너무 많은 죽음을 마주했다. “마주하는 모든 죽음에 눈을 빼앗기면 마음이 남아나질 못”하기에 “내 가족 아니고 내 친구 아니다”라고 주문처럼 반복하며 죽음과 자신의 연관성을 지우기 위해 애썼다.
새벽마다 쓴 유서와 일기
2025년 1월21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 사옥을 찾은 9년차 현직 소방관은 꼬박 24시간가량을 근무한 뒤였다. 전날 아침 8시40분부터 이날 아침 9시까지 근무하면서 열두 번 출동했다. 출동부터 귀소까지 평균 1시간30분 걸린다고 했을 때 구급차 안과 현장에서 18시간을 보낸 셈이다. 인터뷰 기사에 쓸 사진을 찍기 위해 의자에 앉은 모습을 주문하자 그는 “앉아 있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고 말했다.
구급차를 탄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짧은 일기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남기는 유서였다. “가족, 친지, 친구 같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언젠가부터 하게 됐다”고 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진심을 전하지 못하면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 유서를 썼다.
더 두려운 일은 각종 사건‧사고 현장에서 접한 죽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불행이 닥치는 것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보고 듣고 겪은 일을 글로 정리하면 불안을 덜 수 있었다. 그는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으니 단순히 끔찍하고 괴로운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맥락이 있구나’ 하고 마음이 좀 편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근 출간한 ‘당신이 더 귀하다’(다산북스 펴냄)는 그렇게 쓴 글이 모인 책이다.
작가는 서른두 살에 ‘늦깎이’ 소방관이 됐다. 대학에선 영상을 전공했다. 영화 찍을 돈을 벌기 위해 입시학원 강사도 했다. 다른 일을 하다 만난 아내와 결혼했고 첫아이가 태어났다. 체력엔 자신이 있었고, 마침 소방공무원을 늘리던 시기였다. “빨리 시험에 합격하면 밥벌이할 수 있겠다” 싶었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
방화복을 입고 불을 끄는 소방관은 크게 욕을 들을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막상 소방관이 돼보니 그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 화재진압대원, 구조대원, 구급대원이 하는 일은 각각 달랐다. 119를 부른 일부 사람은 구급대원에게 욕하고 침을 뱉기도 했다. 주취자가 편의점에서 물건을 계산해달라고 부르기도 했고, 대변을 흘리는 노숙인을 쉼터로 이송하는 것도 구급대원의 몫이었다. 사람을 살릴 때도 있었지만 살리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고, 차가운 주검이 된 망자도 숱하게 봤다. 소방관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가난과 죽음을 가까이서 보는 직업이었다. 기대와 다른 업무, 고됨을 견디다 못해 동료들이 소방서를 떠나기도 했다.
구급차를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이가 많았다. 약자는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도 많기에 마냥 선하지만은 않았다. 당장 병원 이송이 필요한 응급환자가 2할에 불과했고 대다수는 비응급 환자였다. ‘왜 이런 일로 119를 부를까’ ‘무슨 저런 사람이 다 있을까’. 인간을 향한 불신과 경멸이 한껏 커졌던 시기가 있었다. 그는 소방관 생활 초기의 자신이 “정말 형편없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새벽마다 글쓰기를 이어가면서 점차 생각이 바뀌었다.
“유서라는 게 어떻게 보면 나를 들여다보는 이야기잖아요. 보통 사람들은 희미하고, 불안하고, 좀 연약하잖아요. 저도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고요. 그런데 글을 쓰면서 저를 돌아보니까 저한테도 어떤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제가 살아온 삶이기에 저한테밖에 없는 이야기,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고 귀한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그걸 깨닫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던 것 같아요. ‘저 사람들한테도 나름의 이야기가 있겠구나’라고 달리 보이는 거죠. 마냥 불쌍하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안에도 보물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는 생각을 지금도 종종 합니다.”
당신과 나의 평균 체온 36.5℃
자연스럽게 글에 등장하는 사람도, 글이 담는 세상도 넓어졌다. 2022년엔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세상에 글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글에 나오는 사람들은 성별, 나이대 등 각색을 거쳐 누군지 알 수 없게 했다. “사람들이 웃음거리가 안 됐으면 좋겠다”는 확고한 글쓰기 원칙이 있었다. 그는 “이야기로서 소모되지 않게,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사건을 끔찍하게 묘사하는 건 철저하게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좋은 얘기로 쓸 만하겠는데?’ 이렇게 글감으로 소비해버리면 그건 그분들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는 구급대원 일을 하면서 “인내, 용기, 연민, 사랑 어느 한 단어로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그 감정이 뭔지 물었다. 말을 고르던 작가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가 당신을, 당신의 눈높이에서 보고 있다’는 것”이라며 “그건 연민도, 그렇다고 사랑도 아니다. 그런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는 단어가 없어서 애매하게 돌려 얘기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신도 나도 똑같은 평균 체온 36.5℃의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짜증을 내는 대신 구급차를 부를 수밖에 없던 사정을 당사자 입장에서 헤아리려고 한다. 사람을 구한다는 일에 값싼 우월감을 느낀 건 아닌지 자신을 매섭게 몰아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소방관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속에서 치미는 감정이 있다. 마음과 현실이 어긋날 때 짜증도 나고 괴롭지만 글을 쓰며 다잡는다. 그는 “글쓰기는 ‘이렇게 행동하는 게 옳은 일이고, 네가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이런 세상’이라고 다짐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사람의 피값을 너무 값싸게 여기기 때문에”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세상이다. 세상은 가난을 줄이는 법, 타인을 돕는 방법보단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지에 몰두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마냥 “절망적이기만 한 세상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고 했다. 경험상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날이 풀리면 자살을 시도하는 이가 늘어난다. 곧 그런 신고를 받게 될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둔 듯 저자는 “구급차를 타는 분들, 의료 현장을 지키는 분들, 새벽에 일어나서 묵묵히 청소하는 분들, 아침마다 편의점 매대에 식품을 진열하는 분들 하나하나가 괜찮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단지 소방관을 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이토록 많은 걸 감내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구급 업무를 하며 듣는 욕설과 비난, 살리지 못한 생명에 대한 죄책감, 좌절, 우울과 불안 등 더 쓰려면 더 쓸 수 있는 것들이었다.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그냥 참는다”는 것이었다. “저희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왜냐하면 참는 건 잘하니까. 소방학교에서부터 배우는 게 뜨거운 데 들어가서 참는 거고 다 그런 거니까요.”
동료 소방관들의 이야기는 일부러 담지 않았다. 소방관들은 낯을 가린다. 그는 “현장에는 하루 스무 번도 더 출동을 나가며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동료들이 수두룩하다”며 “그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필요한 일
소방관에게 흔히 붙는 수식어로는 ‘고귀한’이 있다. 저자는 스스로 하는 일을 좀 다르게 평가한다. 필요한 일을 하는, 별 볼 일 없는 사람. “누구를 돕고 누군가에게 연민을 가지는 일이 그렇게 독특하고 고귀하고 영웅적인 일로 치부돼선 안 된다는 느낌” 때문이다. 가난하거나 혼자 죽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사람이 사람을 돕는 일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방관들이 고귀한 일을 한다고 단정지어버리면, 그때부터 타인을 돕는 일은 ‘고귀한 영역’ 안에 머무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다 같이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잖아요. 사람을 돕는 게 당연하지, 고귀한 일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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