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우체통에는 편지만 넣을 수 있다?
지갑·주민증 등 분실물 넣으면 주인 찾아줘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최근 우체통이 40여년 만에 '에코 우체통'으로 모습을 바꾸며 환경보호 창구 역할도 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우체통의 활용도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다.
이메일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세대는 우체통 자체를 접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체통의 이런 '변신'이 새로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체통은 단순히 편지를 넣는 용도 외에 어떤 역할까지 하고 있을까.
우체통, 분실물 임시 보관함 역할도
우선 우체통은 기존에도 분실물 '임시 보관함'으로 기능해 왔다. 즉, 길에서 주운 타인의 신분증이나 신용카드, 지갑 등을 우체통에 넣으면 우정사업본부가 이를 처리한다.
'우편업무 규정' 17조에 따르면 우체통에서 수거된 주민등록증은 주민등록증상 주소지의 시·군·구청으로, 공무원 신분증은 신분증을 발행한 기관으로 전달된다.
지갑의 경우 현금, 유가증권, 귀금속 등 금전적 가치가 있는 재산 물건이 있으면 가까운 경찰서로 무료 등기우편을 통해 발송된다. 지갑을 찾아주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우정사업본부가 지갑을 주인에게 되돌려줬는데, 주인이 돈이 없어졌다고 주장하며 우정사업본부 측에 이를 물어내라고 요구할 수가 있다.
우체통으로 접수된 분실 휴대전화는 '핸드폰 찾기 콜센터'로 보내진다.
금전적 가치가 없는 물건 가운데 주소를 알 수 있는 경우 우정사업본부가 직접 주인에게 보낸다.
2023년 한해 우체통으로 접수돼 처리된 현금은 4억5천여만원, 신용카드는 32만8천여장, 신분증 15만5천800여개, 지갑은 7만5천200여개에 이른다.
결론적으로 길에 떨어진 지갑 등을 발견하면 그냥 두기보다는 가까운 우체통에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적해진 우체통, 환경보호서 활로 찾아
우체통이 '환경 지킴이' 역할에 나서게 된 것은 2023년 1월 우정사업본부가 세종시에서 처음으로 우체통을 활용한 폐의약품 회수 서비스를 시작하면서부터다.
가정에서 배출되는 폐의약품은 그때나 지금이나 '골칫거리'다.
이 폐의약품은 '폐기물관리법'에서 '생활계 유해폐기물'로 지정돼 있어 정해진 수거처에 버려 소각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아 가정에서 복용하고 남은 약들은 대개 일반 쓰레기로 버려진다.
이로 인해 환경오염과 생태계 교란, 나아가 항생제 내성균의 발생 위험이 제기되고 있다.
당시 폐의약품 회수·처리체계에 따르면 가정에서 안 먹는 약들을 약국이나 보건소에 비치된 수거함에 배출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수집, 운반해 소각한다.
하지만 지자체가 수거하는 주기가 일정치 않거나 수거를 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21년엔 서울시약사회가 불성실한 수거 조치에 폐의약품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서울시에 전달하기도 했다.
우체통은 이런 상황에서 세종시에서 폐의약품 수거함 역할을 자처했다.
가정에서 폐의약품을 일반봉투에 밀봉해 '폐의약품'이라고 기재한 뒤 우체통에 넣으면 집배원이 이를 회수해 소각장소로 전달한다.
약국이나 보건소, 주민센터 등에 비치된 기존 수거함에 있는 폐의약품도 집배원이 수거한다. 단, 우체국 택배로 폐의약품을 나르되 이에 따른 비용은 지자체가 부담한다.
지자체 입장에선 폐의약품 수거에 따른 시설과 인력을 따로 운영할 필요가 없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우정사업본부 입장에선 새로운 수익원이 생긴 셈이다.
지난해 11월 현재 서울시와 세종시를 비롯한 지자체 49곳에서 폐의약품 회수 서비스가 운영되고 있다.
우체통은 커피 캡슐의 회수도 하고 있다.
동서식품과 협약을 맺고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커피 캡슐에 들어 있는 찌꺼기를 제거하고 남은 알루미늄 캡슐을 전용 회수 봉투에 담아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 집배원이 이를 회수해 재활용업체로 배달한다.
찌꺼기를 제거하는 기구(캡슐 리사이클러)와 회수 봉투는 시군구 단위에 있는 총괄우체국에 비치돼 있다. 동서식품 사이트에서도 구할 수 있다.
우체통, 20여년 새 인구 1만명당 8개→1.6개
우체통이 '에코 우체통'으로 변모한 것은 이런 자원 회수 역할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다.
우정사업본부가 지난해 12월 내놓은 보도자료에 따르면 새로 선보이는 에코 우체통은 한쪽은 우편물만을, 다른 한쪽은 폐의약품·폐 커피 캡슐 등 회수 물품만을 넣을 수 있는 투함구가 2개 설치됐다. 우편물이 회수 물품에 오염될 우려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또한 우편물을 넣는 투함구는 소포도 부칠 수 있게 우체국 2호 상자(27㎝*18㎝*15㎝)가 들어갈 정도로 크기가 확대됐다.
투함구가 2개인 우체통이 과거에도 있었으나 당시엔 해당 지역 우편과 타지역 우편을 구분하기 위해서였지 지금과 같이 다른 물품을 넣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우체통의 이러한 변신은 우편물 배달이라는 '본업'이 쇠락한 탓도 없지 않다.
1997년 한메일(현 카카오메일) 등장으로 이메일이 활성화되면서 종이 우편물의 사용이 크게 줄었다.
우정사업본부가 연간 처리한 일반 우편물 물량은 2000년 42억5천785만통에서 2023년 20억8천347만통으로 반토막이 났다.
이중 우체통으로 접수된 일반 우편물만 따지면 2023년 기준 791만통에 불과하다. 그해 일반 우편물의 0.38%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관공서 고지서, 홍보 우편물, 지로 등으로 우체통을 거치지 않고 우체국으로 직접 들어온 물량이었다.
우체통의 쓰임새가 주니 우체통 자체가 사라지는 추세이기도 하다.
우체통은 2000년 3만9천462개에서 2023년 8천63개로 5분의 1토막이 났다. 2000년엔 인구 1만명당 우체통이 8개 있었다면 2023년엔 1.6개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 현재 우체통은 7천987개로 줄었다.
결국 우체통이 우리의 일상에서 존재감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우편물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역할을 시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표] 일반 우편물 취급량과 우체통 수 추이
(단위: 천통, 개)
※ 국가통계포털 자료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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