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의 인생홈런]‘스프린터’ 장재근 “선수촌장 2년이 인생 최고 행복”

이헌재 스포츠부장 2025. 2. 3.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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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근 진천선수촌장(62)은 1980년대 한국 최고의 스프린터였다.

이후 국가대표 코치, 육상연맹 트랙기술위원장, 실업팀 감독 등을 거친 그는 2023년 3월 꿈에 그리던 진천선수촌장을 맡았다.

장 촌장은 "밖에서 보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하겠지만 선수촌에서 지낸 지난 2년이 내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며 "'운동쟁이'인 나는 평생 운동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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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근 진천선수촌장이 선수촌 조형물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헌재 스포츠부장
장재근 진천선수촌장(62)은 1980년대 한국 최고의 스프린터였다. 1982년 뉴델리,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남자 200m에서 두 대회 연속 금메달을 땄다. 한국 신기록을 4번, 아시아 신기록을 2번이나 갈아 치우며 ‘아시아 단거리 황제’로 군림했다.

1990년 은퇴한 그는 트랙을 벗어나 한동안 ‘외도’를 했다.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에 물 흐르는 듯한 언변을 앞세워 방송계로 진출한 것이다. 에어로빅 강사로 인기를 모았고, 예능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홈쇼핑 호스트로도 얼굴을 내밀었다.

짧은 기간에 운동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속은 편하지 않았다. 장 촌장은 “가장이다 보니 돈을 더 벌 수 있는 방송 쪽 일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트랙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간절해졌다”고 했다. 어느 날 그는 아내에게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는 “아내는 막고 싶은데 ‘내가 육상을 얘기할 때 얼굴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하지 말라고 못 하겠더라’고 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나갈 때는 쉬웠지만 돌아오는 건 쉽지 않았다. “돈 보고 떠난 놈이 배고픈 동네에 뭐 먹을 게 있다고 돌아오느냐”는 게 육상계의 분위기였다. 감독, 코치 등 지도자가 아닌 심판으로 다시 육상의 문을 두드렸다. 육상 대회 심판을 보고 일당 5만 원을 받았다. 주변 육상인들과 몸을 부대끼며 그렇게 2, 3년을 지낸 후에야 다시 육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마흔이 되기 전이었다. 누구에게 고개를 숙여도 부끄럽지 않을 때였기에 복귀가 가능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후 국가대표 코치, 육상연맹 트랙기술위원장, 실업팀 감독 등을 거친 그는 2023년 3월 꿈에 그리던 진천선수촌장을 맡았다. 이달을 끝으로 2년 임기를 마감하는 그는 지난 2년간 엘리트 스포츠 부흥을 위해 앞만 보고 뛰었다. 지난해 파리 올림픽에 한국 선수단은 1976년 몬트리올 대회(50명) 이후 가장 적은 144명의 선수가 출전했는데 역대 최다 타이인 13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 등 전체 메달은 32개를 기록했다. 그는 “선수촌은 한국 엘리트 체육의 마지막 보루이자 성지다.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내준 우리 선수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했다.

선수촌장에 처음 임명됐을 때부터 그는 김성집 전 촌장(1919∼2016년)을 닮고자 했다. 1948년 런던,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역도 동메달리스트인 김 전 촌장은 ‘영원한 선수촌장’으로 기억된다. 1976년부터 9대, 11대와 12대 태릉선수촌장으로 모두 13년 7개월 동안 국가대표의 훈련을 총괄했다. 장 촌장은 “김 촌장님은 언제나 선수촌을 흔들리지 않게 지켜주신 분이었다. 덕분에 나도 마음껏 운동하며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며 “미숙한 점도 있었겠지만 나도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운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김 전 촌장처럼 장 촌장도 최대한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려 했다. 오전 6시 새벽 산책 때부터 선수들과 함께했다. 선수들의 훈련이 모든 끝난 오후 9시 이후엔 혼자 트랙을 뛰거나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며 건강을 다졌다. 장 촌장은 “밖에서 보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하겠지만 선수촌에서 지낸 지난 2년이 내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했던 순간이었다”며 “‘운동쟁이’인 나는 평생 운동과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재 스포츠부장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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