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에 부적합한 AI 교과서, 세금으로 무상보급 웬 말인가 [왜냐면]

한겨레 2025. 2. 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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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 검증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현우 | 전 인하대 총장직무대행

최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의 지위를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하향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에 재의를 요구한 교육부가 디지털교과서의 도입을 주장하는 근거로 내세운 것은 크게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디지털교과서는 지역 또는 학교 간 교육 격차 없이 균등한 교육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둘째, 디지털교과서는 교실 수업의 변화를 끌어내면서 학생이 주도하는 맞춤형 교육이 가능하다.

이러한 교육부의 주장은 학술·실증적으로 검증됐는가? 이 두 주장을 설득력 있게 옹호한 종단 연구 결과는 없다. 인터넷이 전 세계로 보급됐을 때도, 스마트폰이 등장했을 때도, 가상·증강현실 기술에 사람들이 매료됐을 때도 이들 기기·기술이 교육·정보의 격차를 줄여줄 것이라고 과대 포장해 떠드는 교육계 인사나 기술관료들이 있었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였다. 1990년대에는 다소 생소하게 들리던 교육 양극화라는 말이 2010년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사회 현상을 가리키는 당연한 말이 되지 않았는가?

새로운 발명품이나 기술의 등장이 분명 사람의 삶을 이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지만 이러한 등장이 기존 교육·정보의 격차를 더 벌릴 수도 있다. 학습 우수 집단과 학습 개선 집단의 수준이 각각 80과 60이라면, 새로운 기기의 사용으로 전자의 집단이 90 수준으로 향상할 때 후자의 집단은 65 수준으로 향상해 격차가 벌어지는 식이다. 디지털교과서가 분명히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겠지만, 교육부가 생각하는 바와 같이 단순한 학교 현장 도입은 이전의 새로운 발명품이나 기술이 그랬듯이 지역·학교·학생 간 교육 격차를 줄이기는커녕 더욱 확대할 것이다.

영어과 교육과정·교과서를 30년간 연구했고 지난해 11월 검정을 통과한 초·중·고 영어 디지털교과서를 직접 실행해본 필자에게 디지털교과서가 학생 주도형 맞춤형 교육을 견인한다는 교육부의 주장은 책상머리나 지키는 행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보인다. 교실 수업은 학생, 교사, 교과서의 세 축이 중심이 되어 이뤄진다. 디지털교과서는 서책형 교과서의 모든 학습자료를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 학습을 ‘어느 정도껏’ 가능하게 해주는 추가 자료도 포함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추가 자료는 교실 수업 현장에서 거의 사용할 수 없는 개인별 학습자료라는 점이다. 서책형 교과서의 내용을 수업 시간에 온전히 다루기도 시간에 쫓겨 벅찬데, 이보다 훨씬 더 방대한 학습자료를 가진 디지털교과서로 일관성 있게 수업한다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물론, 몇몇 추가 자료를 수업 시간에 활용할 수 있겠으나, 이는 극히 제한적이다.

학생, 교사, 교과서 세 축으로 이뤄지는 교실 수업에서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2022 교육과정에서 강조했듯이, 학습은 결과 못지않게 그 과정이 중요하다. 배우고 익히는 학습 과정에서 교사가 담당하는 역할을 디지털교과서가 할 수는 없다. 무엇인가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교사는 다양한 교수·학습법으로 학생이 그 무엇인가를 이해하도록 유도하면서 개별, 짝별, 조별 등 반 활동의 다양한 활동과 과업으로 학생이 이해한 내용을 체화하고 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서책형 교과서와 중복되지 않는, 디지털교과서의 학습자료는 과정보다는 결과 지향적이기 때문에 교사의 손길이 별로 미치지 않는 영역이다.

교실 수업에 한한다면, 서책형 교과서 대신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선진국 교육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디지털교과서는 수업 중 게임이나 불필요한 검색으로 인한 학생의 학습 집중력 저하, 네트워크 문제로 인한 수업 흐름의 지연과 중단, 개인 정보 보안의 문제 등을 안고 있는데 이를 단시간에 해결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디지털교과서는 개별 진단, 학습 이력 저장, 다양한 멀티미디어 자료 제시, 어느 정도의 맞춤형 문제 풀이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방과 후 개별 학습 매체로써는 2015 교육과정의 디지털교과서보다 훨씬 더 효과적일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이상의 논의로부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다음 질문에 교육부는 답해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학습을 보장하는 공교육의 목적에 서책형 교과서가 디지털교과서보다 더 적합함에도 디지털교과서를 세금으로 구매하여 모든 학생에게 이용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디지털교과서가 교실 밖 개별 학습 교재로써 효용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세금으로 무상 보급하고 서책형 교과서는 수익자 부담으로 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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