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투쟁 4년···“한국처럼 시민이 계엄 해제하는 나라 만들겠다”

김송이 기자 2025. 2. 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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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시민사회단체모임 회원들이 3일 서울 성동구 주한미얀마대사관 무관부 앞에서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선 봄의 혁명 4주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미얀마 군부 정권이 2021년 2월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지 4년이 지났다. 미얀마 안팎에서 독재에 맞서 싸워온 미얀마인들은 지난 연말 한국 시민들이 12·3 비상계엄 사태를 이겨내는 모습을 보며 다시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미얀마군 대위였던 린텟아웅(33)은 2021년 13년 동안 몸담은 군을 나와 태국으로 도망쳤다.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미얀마 군부의 명령을 도저히 따를 순 없었다고 했다. “군부가 군인을 이용해 시민들을 죽이는 걸 참을 수 없어서 시민불복종 운동을 시작했어요.” 2년간 군부를 피해 숨어살던 그는 한국으로 왔다. ‘민주주의 모범국가’로 불리는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을 이어갈 생각이었다.

한국에 온 지 1년 반 만에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났다. 4년 전 미얀마 상황을 떠올리게 됐다. 미얀마 군부가 ‘2020년 총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킨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도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군을 투입했다. 쿠데타 직후 미얀마인들은 저항의 의미로 ‘세 손가락 경례’를 시작했고, 한국 시민들은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두 나라의 차이는 고국을 떠난 미얀마인들에게 뼈아프게 다가왔다. 한국 계엄군은 한밤중 뛰쳐나온 시민들에게 막혔지만, 미얀마에서 군은 시민을 때리고 체포했으며, 이들을 향해 발포했다. 여의도와 광화문을 가득 메운 응원봉 물결도 미얀마의 현실과 달랐다. 린텟아웅은 “미얀마 사람들도 평화집회를 하고 싶어하지만 군부가 때려죽이기 때문에 모일 수가 없다”며 “자국 시민을 죽이는 군부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여야만 한다”고 했다.

린텟아웅(왼쪽에서 네번째)이 3일 서울 성동구 주한미얀마대사관 무관부 앞에서 열린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선 봄의 혁명 4주년’ 기자회견에 참석해있다. 성동훈 기자

미얀마 군부는 지난달 국가비상사태를 또 6개월 연장했다. 올해 상반기 총선이 제대로 치러질 가능성은 사라졌다. 그러나 린텟아웅은 비상계엄이 5시간여 만에 해제된 한국을 보며 희망을 느꼈다고 했다. “시민들의 힘이 모이면 민주주의를 향한 공격도 별수 없다고 느꼈어요. 미얀마도 또다시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게, 설령 일어나더라도 6시간 만에 끝낼 수 있도록 준비하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린텟아웅은 미얀마 시민불복종 운동 4년을 맞은 3일 “그 어느 때보다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한국의 민주주의가 연결돼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연대를 보며 서로 힘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106개 한국시민사회단체모임은 이날 서울 성동구 주한미얀마 대사관 무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얀마와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했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최대 원조국인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대외 원조 자금 지원을 일시 중단하면서 지난달 31일부터 미얀마 난민들이 많아 찾는 미얀마 인접국 내 진료소가 대거 폐쇄됐다. 린텟아웅은 어려운 상황에서 투쟁을 이어가는 이들을 기억해달라고 했다. 그는 입춘인 이날 “봄은 반드시 온다”며 “미얀마가 한국에 이어 새로운 민주주의 모범국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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