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공개 비판했다가 좌파 진영 ‘변절자’ 됐던 박선원
北, 미북대화 하려던 오바마 정권 초기 미사일 도발
브루킹스 와 있던 朴, ‘김정일 오판’ 보고서 게재
”잘못된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강하게 비판
“미국 가더니 변했다” 비난 받다가 천안함 폭침 부정
[조선일보 외교부·민주당 출입 기자·한나라당 취재반장·외교안보팀장·워싱턴-도쿄 특파원·국제부장·논설위원과 TV조선 정치부장으로 정치·외교·안보 분야를 26년간 취재해왔습니다. 주요 사안의 막전막후에서 벌어진 일을 전해드립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8년만의 재취임을 계기로 미북 정상회담이 다시 열릴지 여부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4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난달 20일 북한을 ‘핵 보유국(nuclear power)’으로 부르며 미·북 정상회담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시사했습니다. “나는 그를 좋아했고 매우 잘 지냈다. 그도 나의 귀환을 반길 것”이라고 한 겁니다.
이에 대해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즉각 호응하는 대신 26일 전략순항미사일을 동해가 아닌 서해 쪽으로 시험 발사하고, 29일 핵 물질 생산기지 관련 사진들을 공개하는 식으로 ‘도발’하며 몸값을 높이고 있습니다.

러시아를 돕기 위해 1만 여명의 군대를 파병, 북·러 혈맹 관계를 구축한 김정은이 당분간 상황을 관망하며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제고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합니다. 김정은이 지난 29일 “(올해는) 핵 무력 노선을 관철해나가는 과정에서 중대 분수령이 되는 관건적인 해”라고 한 대목은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며 미국과의 군축협상을 하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김정은은 트럼프 취임 후, 미사일을 동해가 아닌 서해로 발사하며 도발 강도를 조절하고 있는데, 몸값을 올리기 위해 너무 강하게 도발하면 2009년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때처럼 ‘전략적 무시’ 당할 것을 계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친노 전략가 박선원, 브루킹스 연구원으로
이런 상황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대의 초기 미북관계와 민주당 박선원 의원에 얽힌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합니다.박 의원은 386운동권 중에서는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 정치인입니다. 1985년 서울 미문화원 점거사건 당시 배후인물로 구속된 ‘반미 운동 1세대’ 출신입니다. 연세대 삼민투 위원장을 지낸 그는 영국의 워릭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외교안보전략 비서관을 지낸 그는 친노(親盧) 386세대의 외교·안보 전략가로 북핵 6자회담에도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박 전 비서관은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고 돈세탁 혐의를 받았던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대한 금융제재를 해제시키기 위해 미국 측과 여러 차례 부딪쳤습니다. 이 때문에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 인사들로부터는 ‘기피인물’로 낙인찍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력의 박 의원은 제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하던 2008년 워싱턴 DC의 브루킹스 연구소에 초빙연구원으로 와 있었습니다. 그가 와 있던 브루킹스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싱크탱크인데, 특히 오바마 행정부 출범 전후에 더욱 주목받았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안보 핵심이었던 수전 라이스 주유엔대표부 대사, 백악관의 제프리 베이더 아시아 담당 보좌관이 모두 이곳 출신이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동향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곳이기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외교안보 전문가들로 북적거렸습니다. 당시 저는 이곳을 드나들며 박 의원을 만나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의 미북관계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저와 그는 성향은 달랐지만,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과의 고위급 또는 최고위급 대화에 적극적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그 이유는 오바마 행정부가 보여준 전례없는 우호적인 대북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 오바마 캠프, “취임 100일내 대북 특사 보내자”
2008년 11월 4월 오바마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3일만에 오바마의 외교안보팀과 북한 정부 대표단의 회동이 열릴 정도로 미북 대화는 기정사실화 되고 있었습니다.
2008년 11월 7일 북한 외무성 리근 미국국장은 북핵 검증 문제 논의를 위해 뉴욕을 방문 중이었는데, 오바마 진영의 프랭크 자누지 한반도 정책팀장과 함께 전미외교정책협의회(NCAFP) 주최 한반도 전문가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이날 회의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스테이플턴 로이 전 주중대사, 윈스턴 로드 전 동아태 차관보,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대사, 성 김 미 국무부 북핵특사 등이 참석했습니다. 약 4시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서 사실상 미북 회담이 이뤄졌다는 점이 중요했습니다. 이때 리근 국장이 키신저의 방북을 요청한 사실이 나중에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의 정책 산실인 싱크탱크미국진보센터(CAP·Center for American Progress)가 정책 제안서에서 신속한 대북(對北) 특사의 평양 파견을 제안하고 나왔습니다. 이 제안서를 만든 이는 오바마 캠프에서 외교안보분야의 핵심적인 역할은 하던 이는 백악관 고문에 지명된 그레고리 크레이그였습니다.
저는 그레고리 크레이그를 2008년 8월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지명되던 덴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수장으로 있던 ‘국제 지도자 포럼(ILF)’이 열렸는데, 나중에 유엔주재 미국 대사로 활동하는 수전 라이스를 비롯, 이 자리에 나중에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안보 브레인들이 모두 참가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크레이그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 짧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크레이그가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면 북한 문제에 대해서 개입 정책을 펼 것이라고 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하버드대-예일대 법학박사 출신으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시절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을 지낸 그는 제안서에서 오바마 당선자 취임 후, 100일 내에 대통령 특사를 파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북한에 대통령 특사를 보내,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 문제의 교착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부시 행정부의 노력과 직접적인 미북 양자회담이 여전히 궤도 위에 있다는 단일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새 정부는 (특사를 보내) 미북 관계의 더 큰 발전 및 향상이 새 정부의 의제 중 높은 위치에 있으며, 핵심적인 목표가 핵 문제에서 더 큰 진전을 이루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대통령 특사는 반드시 평양을 방문하기 전후에 사전 협의와 브리핑을 위해서 서울을 방문해야 한다”고 못박았습니다.
오바마 캠프의 핵심으로 일했던 크레이그의 제안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 당시 워싱턴 특파원으로 함께 일했던 최우석 선배와 함께 기사를 써 보냈습니다. 김창기 편집국장(현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이사장)은 이 기사를 1면 톱 기사로 게재했습니다. 대북 특사로 2000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난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과,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조정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 대표는 2009년 4월 초 “언제라도 북한을 방문할 준비가 돼 있다”며 대화 의사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방북하게 되면 비핵화뿐만 아니라 미북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건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히며 북한이 대화에 응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북한에 압박만 가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니며 유인책을 결합해야 한다”며 미사일 회담 재개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 김정일, 몸 값 높이려 북한 미사일 도발
그런데 당시 북한이 상황을 오판, 판을 깨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북한이 4월 5일 대포동 2호로 불리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습니다. 1단계 추진체는 일본 아키타(秋田)현 서쪽 280㎞ 동해상에 떨어졌으며, 2단계 추진체는 일본 동쪽 1270㎞ 지점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북한은 ‘은하 2호’ 위성을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시켰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명백한 유엔 안보리 제재 위반이었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2006년 10월 북한의 핵 실험을 계기로 제재 결의 1718호를 발동, ‘탄도미사일과 관련한 모든 프로그램’을 불법으로 규정한 바 있습니다. 대기권 밖으로 쏘아올리는 장거리 로켓 기술은 위성으로 부르더라도 원리가 동일합니다. 유엔과 미국은 2006년에 핵실험을 한 북한이 운반수단으로 이용가능한 장거리로켓 기술까지 확보하는 것을 용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북한의 대포동 2호 발사 사태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처음으로 직면하는 중요한 외교·안보 문제였습니다. 더욱이 오바마는 당시 유럽연합(EU) 정상들과의 회의를 위해 체코를 방문중이었는데, 프라하에서 현지시각 새벽 4시30분에 북한의 로켓 발사를 보고 받느라 잠을 깼습니다. 그는 1시간 만에 “도발적 행위”라는 내용의 대북(對北) 비판 성명을 발표하며 유엔 안보리의 소집을 요구했습니다.
오바마는 프라하에서 “자제를 촉구하는 분명한 (국제사회의) 요청을 거부하고 국가들과의 공동체에서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켰다”고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또 “지금이야말로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습니다.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저는 이후 백악관 계자들로부터 당시 오바마가 얼마나 화가 많이 났는 지에 대해 들을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오바마는 대북 특사도 고려하고, 상황 변화에 따라 자신이 방북할 생각도 갖고 있었는데 북한때문에 체면을 구긴 데 대해 화가 많이 났습니다.

◇ 박선원, 북 도발 하루만에 김정일 비판
이때 미국이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려던 기류를 잘 알고 있던 박 의원이 급히 나섰습니다.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 성공’으로 치하한 대포동 2호가 일본 열도 상공을 날아간 다음 날인 4월 6일 영문 보고서를 썼습니다. 브루킹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여전히 게재돼 있는 그의 보고서 제목은 ‘평양 또 실패하다, 북한의 세 번째 미사일 발사와 김정일의 오판(Pyongyang Fails Again: North Korea’s Third Missile Launch and Kim Jong-il’s Miscalculation)’입니다. 북한의 도발에 매우 좌절한 듯 그는 이 보고서에서 김정일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 주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2009년 4월 5일,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와 설득 시도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불량 국가의 길을 선택하고 장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북한의 계산과 달리 이번 사건은 북한의 힘이나 자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술과 전략 모두에서 북한이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인식해야 합니다.(중략)
미국의 새 행정부는 전임 행정부와 달리 이미 북한 지도자와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위해 북한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은 미국의 제스처를 냉담하게 거부했고, 이제 미국을 다시 우호적인 논의에 참여시키기 전에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외교적으로 김 위원장은 한국과 일본이 북한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과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만 도움을 주었습니다. 북한의 행동과 다양한 압박 시도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에 더욱 유리한 조건으로 회담 재개를 끊임없이 요구해 왔기 때문에 북한은 강경한 입장이 항상 성공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연된 계승 계획의 정치적 복잡성과 김 위원장의 건강 악화, 외교적 어려움, 경제적 어려움, 식량 공급 문제 등 현재 북한의 문제를 고려할 때, 특히 6자회담 참가국들 간의 국제사회의 공동 행동은 북한에게 대결과 기회주의적 이득 확대를 동일시하는 어리석음을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이제 국제사회는 지난 60일 동안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해 질책해야 합니다.”
박 의원이 김정일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거명하면서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데서 그가 얼마나 크게 좌절했는 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 반미 학생운동 지도부 출신 정치인들 사이에서 북한 비판은 물론 김정일에 대해 부정적인 언급을 하는 것은 일종의 금기에 속했습니다. 저는 박 의원의 용감한 김정일 비판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 이를 칼럼을 통해서 알렸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을 차용했는데,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박선원 전 비서관이 당신(김정일)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비판했다는 점에서 큰 실망감을 느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몸담은 386 인사들이 당신에 대한 공개 비판을 금기(禁忌)로 삼아온 관행을 깨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신의 이런 (도발적인) 행동이 오바마 행정부의 ‘반짝 관심’을 자극할지는 모르나 과거처럼 많은 양보를 얻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
◇좌파 진영내에서 박 의원 비판
박 의원이 김정일의 실명을 거론해가며 비판한 사실이 조선일보를 통해 알려진 후, 좌파 진영 내에 파장이 일었다고 합니다. 좌파 진영에서 장관을 했거나 ‘선생님’ 소리를 듣는 이들이 그를 ‘변절자’로 칭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제국주의의 심장’인 워싱턴에 오래 머문 것을 거론하며 “사람이 변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만났습니다.
박 의원의 김정일 실명 비판 파문이 가시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1년 후인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이 난 이후로 기억합니다. 박 의원은 당시 방송 인터뷰 등을 통해 “버블제트로는 천안함이 두 동강 날 수가 없다”며 “스크루 상태 등을 감안하면 좌초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을 부인하는 쪽에 섰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 1차장을 역임한 박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의 12-3 자폭(自爆) 계엄 이후의 탄핵 및 내란죄 기소 정국에서 핵심 인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P.S.
1.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2009년 오바마가 적극적으로 미북대화를 고려하고 있을 때 김정일이 몸값을 적당히 높이고 도발을 자제했다면, 북한의 미래와 김정일의 운명은 달라졌을 지도 모릅니다.
미국과 북한은 2000년 클린턴 미 행정부 당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상호 교차 방문하며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제 취재에 따르면, 클린턴 정부의 입장을 계승하는 오바마는 평양 방문도 고려할 정도로 미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박선원 의원의 지적대로 “전임 행정부와 달리 이미 북한 지도자와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위해 북한에 손을 내민” 오바마를 냉담하게 거부했습니다. 이후 미북간에 의미있는 접촉이 일어나지 않은 가운데 김정일은 2011년 12월 17일 사망했습니다.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은 이런 역사를 잘 알고 있을텐데, 어떤 선택을 할 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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