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서툴러도 실패해도 아름다운 이유
어려움을 겪어도 비교적 정신 건강과 행복에 큰 데미지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수십년 간의 행복 연구에 의하면 우선 안정적이고 기질적인 '성격 특성'이 사람들의 행복과 정신 건강을 상당 부분 설명한다. 오랜 연구 끝에 인간의 성격 특성을 가장 널리 잘 설명하는 것으로 알려진 5가지 성격 요인 중 높은 외향성과 성실성, 그리고 낮은 신경증(부정적 정서성)이 행복과 정신 건강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향성은 높은 사회성과 높은 에너지 수준, 또 긍정적 정서를 쉽게 느끼는 것을 통해, 높은 성실성은 꾸준히 노력해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을 통해, 또 낮은 신경증은 쉽게 기분이 나빠지거나 우울해지지 않는 것을 통해 행복의 50%를 설명한다.
또 성격 특성 외에 사람들의 정체성 형성과 행복,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서술적 정체성(narrative identity)이다.
서술적 정체성이란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 있어 주인공인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어떠한 방식으로 서술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흔한 영웅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처음에는 다양한 고난으로 시련을 겪었으나 어떻게든 이를 이겨내고 끝내 해피엔딩을 맞이했다는 서사를 자기 자신에게 부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는 울적한 서사를 부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실제 시련의 경중에 따라 서로 다른 서사를 부여하는 효과가 존재하지만 예를 들어 완벽주의자들처럼 작은 일 하나가 틀어져도 자신이라는 사람이 통째로 망가진 것처럼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부정적인 서사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슷한 일을 겪어도 사람에 따라 그 일의 주인공인 자신의 모습을 해석해내는 데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국제학술지 '심리 과학'에 실린 마즈 린드 등의 연구에 의하면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인 자기 자신의 역할을 묘사하는 방식과 설정 등에 따라 행복과 우울증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
린드 연구팀은 157명의 중년 어른을 대상으로 9년간 행복과 우울증, 한 해 동안 있었던 가장 큰 시련에 대해 설명하게 했다. 그 결과 자신의 고난와 시련을 서술하는 데 있어서 힘들었지만 자신이 원해서 직접 무언가를 했다고 하는 주체성과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증진, 소속감 등이 나타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행복도는 높아지는 반면 우울증상은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성격 특성, 또 고난의 끝이 해피엔딩이었는지 아니었는지와 상관 없이 유효했다. 즉 한 해 동안 일이 잘 풀리지 않았어도 어려움 속에서 나름 무언가를 해냈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행복해지고 우울증상이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영화나 책 중에서 주인공이 어려움을 거치며 어떤 것들을 배우고 생각하고 느꼈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하는 따뜻한 시선이 담긴 작품들을 보면 간혹 어떤 결말을 맞이해도 슬프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주인공은 여전히 자기 삶에서 주인공일 것이고 여전히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서툴고 실패하는 모습들마저 아름다운 서사가 된다. 특히 청춘영화들을 보면 서툴러서 아름다운 것이 청춘이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
인간이 기타 동물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면 자기 자신의 서사를 스스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제 3자의 눈을 빌려 3인칭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기억을 회상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평가하고 정의하는 동물이다.
물론 이러한 모니터링 기능의 주된 역할은 자신의 언행을 검열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지난 한 해 동안 수고한 자신을 따듯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지난 한 해도 서툴렀지만 서툴러서 나름 아름다웠다고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행복도가 높아지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어쩌면 이 또한 자신에 대한 부정적 시각, 지나치게 높은 기대 등을 버림으로써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서툰 자신과 함께 하느라 고생이 많은 나를 격려해보도록 하자.
Lind, M., Ture, S., McAdams, D. P., & Cowan, H. R. (2024). Narrative Identity, Traits, and Trajectories of Depression and Well-Being: A 9-Year Longitudinal Study. Psychological Science, 35(12), 1325-1339. https://doi.org/10.1177/09567976241296512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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