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유혈진압' 사과 없이 재기 노리는 방글라 前총리
(뉴델리=연합뉴스) 유창엽 특파원 = 지난해 대학생 시위를 유혈 진압하다가 권좌에서 밀려나 인도로 달아난 셰이크 하시나 전 방글라데시 총리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인도 도피 생활 5개월이 지나면서 하시나 전 총리는 노벨평화상 수상자 무함마드 유누스가 이끄는 본국 과도정부에 더욱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그의 이런 움직임을 놓고 과도정부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실시할 총선에 자신이 이끄는 정당 아와미연맹(AL)을 앞세워 정치적 재기를 노리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시나는 '독립유공자 후손 공직할당제'에 반대하는 대학생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지난해 7월부터 약 3주간 무자비한 폭력으로 억눌렀지만, 일반 시민들이 시위에 가세했고 급기야 군경마저 돌아섰다.
이에 같은 해 8월 5일 군용헬기를 타고 자신을 지원해온 인도로 황급히 달아났다.
과도정부는 시위과정에서 숨진 사망자가 학생과 노동자, 시민 등 1천500여명, 부상자는 1만9천여명으로 추산했다.
하시나는 1996∼2001년에 이어 2009년 다시 '총리 권좌'에 올라 15년간 집권하면서 제1야당 방글라데시민족주의당(BNP) 등 야권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그 기간에 야권 인사 500여명이 납치돼 고문이나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하시나는 지금까지 유혈진압 등에 대해 일절 사과하지 않고 있다.
대신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가 있었고 신의 도움으로 인도로 무사히 탈출하게 됐다고만 주장한다. 음모를 꾸민 주체가 누군지도 명확히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과도정부가 사법부를 무기화하고 AL에 대한 '정치적 마녀사냥'을 일삼고 있다며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있다.
하시나는 최근엔 소셜미디어를 통해 2월 중 AL 지지자들이 과도정부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엄포'까지 놓았다.
이에 과도정부 측은 불법 시위를 엄단하겠다고 맞받았다.
과도정부는 유혈진압 등과 관련해 고발된 하시나에 대해 지난해 12월 인도 정부에 송환을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인도는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인도도 속내가 복잡하게 됐다. 인도 정부는 과거부터 하시나 정부를 전적으로 지원해왔다.
그런데 하시나가 갑작스럽게 퇴진한 것이다. 이후 방글라데시 내 소수인 힌두교도가 공격당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힌두교도 다수국인 인도는 과도정부에 힌두교도 보호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과도정부는 힌두교도 등 소수를 보호한다고 밝히고 있지만 인도 당국은 '흡족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게 됐다.
방글라데시도 인도의 행태에 불편함을 숨기지 않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인도와 '앙숙'인 파키스탄과 관계 개선에 나섰고, 나아가 인도의 '견제 대상' 중국과도 관계 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하시나와 인도 당국이 서로 이용하는 관계가 형성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시나로서는 자신의 정치적 재기를 위해 인도를 이용하고, 인도는 방글라데시 내 힌두교도 보호 요구 등을 위한 지렛대로 '하시나 송환 문제'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인도를 등에 업은 하시나가 차기 총선에 AL을 등판시켜 재기하게 될지는 방글라데시 국민 손에 달려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과도정부도 여론을 좇아 AL의 총선 참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유혈진압 등에 대한 진솔한 사과 없이는 정치적 재기를 논의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란 지적도 나온다.
과도정부 개혁작업에 참여하는 알리 리아즈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교수는 최근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하시나의 정치적 재기 논의를 위한 요건들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그에 따르면 하시나는 우선 집권 기간 및 지난해 시위 진압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들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사과해야 한다.
이어 가족 일원이 더 이상 AL을 이끌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하고 자신이 저지른 각종 반인륜적 범죄 관련 재판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아즈 교수의 주장에 공감하는 방글라데시인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하시나의 재기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yct9423@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해남 갯벌에 굴 따러 간 60대 부부 차례로 숨진 채 발견 | 연합뉴스
- 남편이 아내 살해 후 투신…골절상 입고 경찰에 검거 | 연합뉴스
- 오스카 무대서 강제 키스 22년만에…'보복 키스'로 갚아준 그녀 | 연합뉴스
- "아저씨랑 아줌마가 싸워요"…112신고에 마약 투약 '들통' | 연합뉴스
- '집에 혼자 있다 화재' 초등생, 닷새 만에 숨져…장기 기증(종합) | 연합뉴스
- 기적의 핏방울…평생 헌혈로 240만명 살린 희귀혈액 남성 별세 | 연합뉴스
- "오스카 최대이변 여우주연상"…데미 무어 제친 25세 마이키 매디슨 | 연합뉴스
- 서천서 '실종신고' 접수 여성 숨진 채 발견…용의자 긴급체포 | 연합뉴스
- 타이거 우즈 딸, 플로리다주 여고 축구대회 우승 | 연합뉴스
- 박근혜 "尹 수감 마음 무거워…국가 미래 위해 與 단합했으면"(종합)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