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 아이들에게 닭은 희망”

서정민 2025. 2. 1.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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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일 용산구 이태원에 있는 캔 파운데이션에서 딱 하루만 관람할 수 있는 작은 사진전이 열린다. 사단법인 한국자원봉사문화지부 ‘어깨동무’와 김보성 사진가가 함께 준비한 사진전 ‘꿈, 릴레이 인 탄자니아(RELAY in Tanzania)’다. 지난해 여름 어깨동무 직원과 청년 봉사자 13명 그리고 김보성 사진가가 12박 13일 동안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지낸 여정을 소개하는 자리다.

탄자니아 도도마 남학교에서 촬영한 사진들. 이곳 아이들은 학업 외에도 새벽부터 일어나 텃밭을 가꾸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지만 표정은 한결같이 건강하고 해맑다. 미래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김보성]
자원봉사와 재능 기부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인 청소년 멘토 봉사단체, 어깨동무는 2008년 설립 이래 다문화 가족과 서울시 은평구 ‘꿈나무마을’ 요·보호 아동을 대상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2011년부터 카메라를 매개체로 한 멘토링 프로그램 ‘꿈, 프레이밍 아우어 드림즈(Framing our Dreams·이하 꿈카)’를 진행하고 있다. 어깨동무 자원봉사자로 초기부터 꿈카를 진행해온 윤랑씨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것에서 나아가 보호시설이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살았던 아이들이 카메라를 통해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이야기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을 만나 사진수업을 진행하면서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김보성 사진가는 “하루 수업만 땜빵 해주면 된다는 친한 선배의 말에 속아 시작한 게 벌써 10년이 됐다”며 웃었다. 플레이 스튜디오(PLAY STUDIO) 대표이자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 부교수인 김보성 사진가는 중앙대에서 순수사진을 전공하고, 뉴욕대에서 비디오 아트 석사를 마쳤다. 2005년부터 보그, 바자, GQ 등 패션 잡지와 일하며 패션사진, 패션필름, TV CF 작업을 하고 있다.

탄자니아 도도마 남학교에서 촬영한 사진들. 이곳 아이들은 학업 외에도 새벽부터 일어나 텃밭을 가꾸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지만 표정은 한결같이 건강하고 해맑다. 미래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김보성]
김 사진가는 “언제부턴가 꿈카 프로젝트에서 보내는 시간이 내게는 힐링하는 시간이 됐다”고 했다. “잡지 화보나 광고 사진을 찍을 때면 늘 예민하게 날이 서 있는데, 꿈카에선 제가 좀 착한 사람으로 변하거든요.(웃음) 제 기준에 버럭 화를 낼 만한 사진도 아이들이 찍어 오면 무조건 칭찬해주거든요. 노력해서 만든 결과물에 대해 칭찬 받으면 진짜 힘이 나잖아요. 사진은 연습하면 늘어요. 진짜 중요한 것은 늘 주눅 들어 있는 시설 아이들이 사진을 통해 자신을 표현할 용기를 얻고, ‘사진뿐 아니라 다른 것도 잘 할 수 있다’ 스스로를 믿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늘 아이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개떡 같은 꿈도 찰떡같다 해몽해줍니다.(웃음)”

한 번은 ‘꿈나무마을’ 체육관을 임시 스튜디오로 꾸민 적도 있다. 조명 등 촬영 장비 일체를 옮겨서 잡지 화보를 찍을 때처럼 모든 환경을 세팅했다. 누구라도 카메라 셔터만 누르면 멋진 초상사진이 나올 수 있도록. 김 사진가는 “아이들이 자신들을 돌봐주는 수녀님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기술적 준비를 미리 해놓은 것”이라며 “서원식 때 외에는 이렇다 할 초상사진이 없는 수녀님들은 이후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네가 찍어준 사진이 너무 좋다’ 칭찬했고, 아이들도 스스로를 너무 자랑스러워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날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쓴 수녀님도 있다니, 아이들에게는 정말 특별한 기억이다.

지금까지 꿈카를 통해 사진을 접한 아이들은 약 150명 정도. 이중 사진과에 진학한 아이들도 있다. 이렇게 자립한 아이들이 2022년 어깨동무와 함께 캄보디아 하비에르 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사진 촬영을 가르쳐주면서 해외 봉사 프로그램 ‘꿈, 릴레이’가 시작됐다.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면서 선한 영향력을 연결해간다는 의미다.

탄자니아 도도마 남학교에서 촬영한 사진들. 이곳 아이들은 학업 외에도 새벽부터 일어나 텃밭을 가꾸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하지만 표정은 한결같이 건강하고 해맑다. 미래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김보성]
탄자니아는 캄보디아에 이은 ‘꿈, 릴레이’ 두 번째 프로젝트 장소. 이번에는 김 사진가도 동행했다. 그는 이번에도 “프로그램 짜주고 장비만 챙겨주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비행기를 타고 있더라”며 웃었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여학교와 여기서 9시간 떨어진 도도마 남학교에 각각 방문한 일행은 셀카 촬영, 폴라로이드 촬영, 한복 촬영, 글쓰기 등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이들과 소통했다. 윤랑씨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에서 즉석 사진이 인화돼 나오는 순간 아이들이 내지르는 환호 소리와 반짝이는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두 학교는 마리아 수녀회가 무료 교육과 기숙사를 제공하는 곳이다. 전국에서 꼽힌 수재들이 모이는 곳으로 탄자니아의 미래를 책임질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교육 시설과 재정 상황은 열악하다. 특히 설립된 지 1년 밖에 안 된 남학교는 상황이 더 안 좋다. 하지만 아이들은 희망에 가득 차 있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팀별로 주어진 텃밭을 가꾼 후에야 수업이 시작되지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사진들은 김보성 사진가가 두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을 기록한 것이다.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한 낭만 혹은 슬픔과는 거리가 먼 대신, 아이들의 희망이 몽글몽글 피어 오른다. “어안렌즈를 써서 극도로 프레임을 왜곡하는 작업은 패션 작업 때도 많이 쓰는 방법이에요. 판타지를 자극하기 위함인데, 낙후된 아프리카의 환경을 다큐사진처럼 디테일하게 보여주는 대신 아이들의 밝고 건강한 이미지와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극대화해서 보여주고 싶었죠.”

이번 사진전에선 사진을 판매하지 않는다. 대신 도도마 남학교의 400명 학생들이 각 한 마리씩 키울 수 있도록 닭 400마리를 선물하고, 축사를 건립할 수 있도록 후원금을 모은다. 윤랑씨는 “여기 아이들에게 닭은 희망”이라고 했다. 기숙학교 학생들에게 닭고기와 달걀은 단백질 공급원이자 지속가능한 수익 구조의 기반이다. 닭 한 마리와 1년 치 사료 비용은 약 7만 원 정도. 대관료가 없어 캔 파운데이션의 전시가 없는 이틀을 빌려 하루는 작품 설치, 하루는 전시를 한다. 그래서 관람은 딱 하루만 가능하다. 물론 후원은 언제나 가능하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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