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136명 묻힌 해저탄광…일본 정부 “진상규명, 대응범위 넘어”

홍석재 기자 2025. 1. 3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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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가 대거 희생된 일본 조세이 해저탄광 수몰사고의 진상 규명 및 유골 발굴 요구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대응 가능한 범위를 초과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후쿠오카 다카마로 일본 후생노동상은 31일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서 조세이탄광 조선인 희생자 유골 발굴 등에 대한 대처를 묻는 질문에 "1942년 조세이 탄광에서 발생한 수몰사고에 대해서는 매우 가슴 아픈 사고였다는 걸 인식하고 있으며 돌아가신 분들을 진심으로 애도한다"면서도 정부 차원의 별도 대응은 사실상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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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유골을 찾기 위해 전문 잠수부가 갱도 입구를 통해 해저갱도로 들어가고 있다. 조세이 탄광의 물비상(水非常·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 제공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가 대거 희생된 일본 조세이 해저탄광 수몰사고의 진상 규명 및 유골 발굴 요구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대응 가능한 범위를 초과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입장을 내놨다.

후쿠오카 다카마로 일본 후생노동상은 31일 중의원(하원) 예산위원회에서 조세이탄광 조선인 희생자 유골 발굴 등에 대한 대처를 묻는 질문에 “1942년 조세이 탄광에서 발생한 수몰사고에 대해서는 매우 가슴 아픈 사고였다는 걸 인식하고 있으며 돌아가신 분들을 진심으로 애도한다”면서도 정부 차원의 별도 대응은 사실상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날 예산위원회에서 일제강점기 조세이탄광에서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 문제를 꺼낸 것은 일본 제 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겐마 켄타로 의원이었다. 그는 “야마구치현 조세이탄광에서 1942년 수몰사고가 발생해 136명의 조선반도 출신자들과 47명의 일본인이 그대로 숨졌고, 유골은 아직 수습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들의 유골 수습을 한·일 (정부의) 공동 작업으로 하면 어떻냐는 제안이 있다”며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대답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시바 총리 대신 답변에 나선 후쿠오카 후생상은 “해저 탄광에 매몰된 것으로 보이는 유골의 매몰 위치와 진로 등이 분명치 않다”며 “게다가 80여년전 낙반 사고가 발생한 만큼 잠수를 통해 해저탄광에서 (유골 위치 등을) 조사하는 것은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현지 조사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대응 가능한 범위를 초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 탄광 입구에서 열린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추도식에 한일 시민들과 유가족 등이 모여 있다. 우베(야마구치현)/홍석재 특파원

조세이 탄광은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주요 석탄 공급처 가운데 하나로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도코나미 앞바다 밑으로 1㎞ 해저 터널을 뚫어 만든 탄광이다. 1942년 2월 3일 탄광 상부에서 바닷물이 새어 들어오는 대형 수몰사고로 조선인 136명과 일본인 47명 등 183명이 숨졌다. 애초 일본 정부는 이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야마구치현의 뜻있는 시민들로 이뤄진 ‘조세이 탄광의 물비상(水非常·수몰사고)을 역사에 새기는 모임’(새기는 모임)이 수몰사고 역사를 알리면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새기는 모임’은 시민들이 크라우드 펀딩 등으로 마련해준 비용으로 지난해 9월19일 첫 유해 발굴 작업에 직접 나섰다. 작업 개시 일주일만인 9월25일 사고 82여년만에 갱도 입구가 처음 확인했다. 한달여 뒤에는 전문 잠수부를 투입해 갱도 내부 200여미터까지 진입해 첫 유해발굴 시도와 갱도 내부 상황을 점검한 바 있다. 다만 해저탄광 내부의 열악한 환경 탓에 첫 시도에서는 유골 발굴과 관련해서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날 일본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에 대해 겐마 의원은 “‘새기는 모임’ 쪽에서 투입한 잠수부가 유골을 한 점이라도 발견해 소재가 확인되면 정부 차원의 조사가 이뤄질 수 있냐”고 거듭 따져 물었다. 하지만 후쿠오카 후생상은 “오늘부터 두번째 민간 잠수 조사가 진행되는 것은 알고 있다”며 “안전성 문제 등을 포함해 향후 대응을 검토해 나가고자 한다”고 즉답을 피했다.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조세이탄광 관련 대정부 질문이 이뤄진 이날도 우베시 도코나미 앞바다에서는 오후 1시부터 조세이탄광 내부로 민간 잠수부가 투입돼 유골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이번 조사는 31일부터 다음달 2일까지 사흘간 진행될 예정이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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