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국면 속 불붙은 '개헌론'…추진 가능할까
"개헌 적기 넘어서" "지금 말할 때 아냐" 엇갈린 정치권
대통령 권한 우선 축소·국회 해산권 검토 등 여러 대안론
[더팩트ㅣ국회=김시형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에 정치권에선 개헌 논의가 불 붙고 있다. 조기 대선 가시화 속 잠룡들은 개헌을 고리로 뭉치는 모습이다. 여권에서도 개헌 특위를 띄우는 등 본격적인 논의에 나섰다. 반면 야권에서는 지금은 논의할 때가 아니라며 거리를 둔다.
헌법학자들도 계엄 사태로 인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극단적으로 드러났다며 개헌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러나 대통령 권한 축소 우선 추진론, 국회 해산권 검토 등 대안은 엇갈렸다. 탄핵 정국에서 범국민적인 개헌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4년 중임제' 공약했던 이재명, 지금은 '선 긋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지금은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라는 게 제 생각"이라며 개헌론에 선을 그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대선 당시 대통령 임기를 1년 줄이고,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개헌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놓은 바 있다. 당시 이 대표는 10대 공약 중 하나로 정치·사법개혁을 내세우며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추진하고 일하는 국회,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다만 구체적인 구상은 발표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한 초선 의원도 <더팩트>와의 통화에서 "지금 개헌 논의는 시기상조"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이 완전히 종결되고 더불어 수많은 가담자들도 법에 따라 합당한 처벌을 받은 뒤 개헌을 논의하든 말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 관계자도 "여러 차례 당 회의에서 개헌이라는 단어가 언급된 적은 없다"며 "당 차원에서 개헌론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적극 군불 때는 與…"'조기 대선' 전제는 아냐"
이 대표와 민주당이 거리를 두는 것과 달리 여권에서는 연일 개헌에 군불을 때고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0일 국회에서 열린 긴급 비대위 회의에서 "개헌이 적기라는 정도를 넘어섰다"며 "조만간 개헌특위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헌 논의 배경으로는 전직 대통령들의 임기 후 '잔혹사'를 꼽았다. 권 위원장은 "현 대통령제에 문제가 있어 대부분의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불행한 일을 겪게 됐다"며 "개헌을 해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개헌 카드로 정국 돌파를 모색하겠다는 의중도 깔려 있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통화에서 "여당은 87년 헌법 체제의 불안정성을 내세우며 시대에 맞게 개헌이 필요하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속내는 이번 (계엄 사태) 책임이 우리에게만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국민의힘은 '조기 대선'을 전제로 하는 개헌 논의는 아니라고 못박았다. 국민의힘 원내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을 엄중히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 조기 대선을 염두하거나 연계해서 개헌을 논의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사건(계엄)으로 인한 대안이 필필요하고, 정치권 원로 등 많은 분들도 언급해주셔서 개헌 필요성을 꺼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야 불문 잠룡들 '개헌' 한목소리…'비명계' 연결고리 주목
여야 잠룡들의 움직임도 개헌을 고리로 활발해지고 있다. 야권에서는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경수 전 지사,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언급했고 여권에서는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과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개헌을 띄웠다.
김 지사는 지난 13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87체제의 가장 안 좋은 점이 최근 부각됐다"며 "이제는 제7공화국 출범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와 지난 2022년 대선 직전 단일화를 이루며 4년 중임제를 공약한 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도 최근 자신의 SNS에 "위험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지 않고 대통령의 권력 오남용을 막으려면, 권력의 폭주와 파행이 없게 하려면 헌법상 권력구조와 선거법, 정당법을 고쳐야 한다"고 피력했다. 지난달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의 긴급 간담회에서는 "개헌 시기는 빠를수록 좋다"며 "개헌을 미루고 선거를 하면 불행이 예고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개헌을 고리로 '비명계' 간 연대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자신을 '개헌론자'로 자칭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내달 발족을 목표로 개헌특위를 준비 중이다. 우 의장은 지난달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통과 후 열린 외신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에게 권력이 너무 집중돼 있어 여러가지 오판이 생길 수 있다.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시켜서 국회 권한을 강화시키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여권 잠룡인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조기 대선 시 당선자 임기를 차기 총선 시점인 2028년 4월로 맞추고, 이후 4년 중임제 대통령제로 개헌하자고 제안했다. 유 전 의원은 전날 유튜브를 통해 "5년 단임 대통령제의 수명은 이제 종말을 고했다"며 "조기 대선 시 임기를 3년으로 줄이는 희생을 후보들끼리 약속하고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조기 대선과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의 또다른 차기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오세훈 서울시장도 윤 대통령 구속 직후 SNS에 "이제 개헌을 논의합시다"라는 글을 올려 "지도자 리스크로 인한 혼란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나라 운영 시스템을 완전히 개보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학자들, 개헌 필요성엔 '공감'...국민 합의가 과제
헌법학자들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극단적으로 드러났다고 입을 모았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통화에서 "1948년 헌법 제정 이후 87년까지 39년간 헌법 개정이 9차례나 있었지만 87년부터 2025년까지 38년간 단 한 차례의 헌법 개정이 없었다"며 "이는 시대의 변화를 너무 오랫동안 못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다. 개헌 필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대통령 권한 축소'부터 우선 추진할 것을 제안했다. 장 교수는 "한꺼번에 완벽하게 모든 것을 고치는 건 불가능하다"며 "국무회의를 의결해야만 계엄할 수 있다든지, 대통령도 국회의장처럼 당선 후 당적을 이탈해 여당과 거리를 벌리는 방안 등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 중 서로 합의할수 있는 부분만이라도 먼저 하고 자칫 '8년 단임제'가 될 수 있는 4년 중임제 등은 더 심도있는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헌법학자인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개헌 필요성에 공감했다. 차 교수는 통화에서 "대통령 독단을 견제할 방법이 없어 국가가 대통령 한 명의 오판에 의해 수렁에 빠지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며 "총리와 권력을 분산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와 프랑스식 이원 정부제를 대안으로 삼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해산권' 검토 필요성도 언급됐다. 차 교수는 "5분의 3 이상의 의석을 갖고 있으면 위헌 가능성이 있는 법률을 통과시킬 수 있고 탄핵 소추권을 오남용할 수 있다"며 "통제받지 않는 국회에 대한 견제장치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과 총선 시점을 맞추는 방안을 놓고는 "중간에 선거라도 한 번 있어야 정치인들이 신경쓰지 않겠나"라며 "두 선거를 동시에 실시하는 건 자칫 국민의 심판과 견제를 받지 못할 수 있어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조기 대선 시 탄핵심판 이후 60일 안에 선거를 치러야 해 개헌 논의의 시간적 제약도 존재한다. 이에 최 평론가는 "탄핵 국면 속 여야 간 심리적 내전 상태에서 개헌 논의는 공방만 있고 실체는 없을 수밖에 없다"며 "이에 대선 주자들끼리 공통 공약을 내 합의점을 찾고 국민들에게 대국민 성명을 합동으로 내는 방법 등으로 동력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민적 합의가 우선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헌법학 교수는 통화에서 "현재의 (계엄) 정국에서 크나큰 정치적 의제인 개헌을 논한다면 전 국민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정국의 시선은 온통 탄핵 심판 한 곳으로 쏠려있어 국민들이 이를 판단할 만한 여력이 없다. 최소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 이후 논의돼야 한다"고 했다.
rocker@tf.co.kr
발로 뛰는 더팩트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카카오톡: '더팩트제보' 검색
▶이메일: jebo@tf.co.kr
▶뉴스 홈페이지: http://talk.tf.co.kr/bbs/report/write
Copyright © 더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의 날씨] 설 연휴 마지막 날 '한파'...아침 최저 -10도 안팎 강추위 - 생활/문화 | 기사 - 더팩
- 국무위원·사령관들 증언 넘치는데…달라도 너무 다른 윤·김 - 사회 | 기사 - 더팩트
- 호주제 폐지 18년…엄마 성 바꾸기는 여전히 '첩첩산중' - 사회 | 기사 - 더팩트
- 정치색 드러내는 연예인들…소신과 선동 논란 꼬리표 - 정치 | 기사 - 더팩트
- [인터뷰] 조경태 "尹-국민의힘 관계, 명확히 정리해야" - 정치 | 기사 - 더팩트
- [TF프리즘] 설 명절, 관객들에게 따뜻함 안겨줄 애니메이션 - 연예 | 기사 - 더팩트
- [TF씨네리뷰] 권상우의 액션만 업그레이드된 '히트맨2' - 연예 | 기사 - 더팩트
- 억대 연봉에 위기극복 격려금까지…취준생 몰리는 '기름집' - 경제 | 기사 - 더팩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