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 탄생 15년...'극우'를 분석할 때

이슬기 프리랜서 기자 2025. 1. 30.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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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오늘 이슬기 프리랜서 기자]

▲ 지난 2014년 9월6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단식농성장 근처에서 '폭식 집회'를 벌인 일베 회원들. 사진=금준경 기자

“슬기야, 일베 걔넨 대체 왜 그러는지 궁금하지 않니?” “…”

실은 안 궁금했다. 때는 바야흐로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회원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인 2014년 9월쯤이었다. 당시 나는 수습을 뗀 지 얼마 안 돼 아이템을 찾아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일간지 사회부의 사건팀 기자였고, 아이템 회의를 앞둔 나에게 선배는 이같이 말했다. 사실 나는 그네들에 관심이 없고, 또 모르고 싶었다. 굳이 똥을 꼭 '찍먹'해봐야 똥인 줄 아나,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고 이듬해 1월 내 '나와바리'(당시 나는 서울의 관악-방배-금천-동작경찰서를 잇는 '관악라인' 출입이었다)의 한 남성 청소년은 “페미니스트가 싫다”는 말을 남기고 수니파 무장단체인 IS(이슬람국가)로 갔다. 그의 행적을 좇으며 생각했다. '페미가 얼마나 싫으면 전쟁통으로 가겠다는 거야?' 정말로 관심이 없지만, 가만 있는 나를 그들이 자꾸 '긁었고' 그에 꾸준히 답해야 했던 것이 지난 11년 내 기자 생활의 역사가 됐다. 참사 유가족들 앞에서 피자를 먹어 치우던 일베서부터 '남성 혐오를 나타내는 손동작'이라며 IT게임 업계의 여성 노동자들에 공격을 감행한 게임 유저들, 최근 서울서부지법을 때려부수고 경찰들에 폭행을 감행한 일련의 사람들까지.

'폭식 투쟁' 직후 결국 나는 선배와 함께 일베를 보다 깊숙이 취재했다. 데이터분석업체 '뉴스젤리'와 함께 일베의 2014년 한 해 게시물을 분석하고, 일베 유저를 만나 인터뷰하고, 전문가들에 의견을 물었다. 그렇게 내놓은 기사의 야마는 '일베는 우리 안에 있다'였다. (서울신문 <'일베' 넌, 누구냐>, 2014년 10월25일) 취재를 통해 알게 된 '일베'는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평범한 자취생, 스포츠와 게임을 좋아하며 대학 입학과 취업을 걱정하는 청년 남성이었다. 기사를 본 어느 선배가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 뭐 그런 거냐”는 코멘트를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확 찜찜해졌다. '그래, 생각해 보면 일베도 평범하겠지. 한국에 사는 게임하고 취업 걱정하는 젊은 남자겠지. 근데, 그게 그래서 뭐?'

▲ 2015년 9월1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일베 저장소' 관련해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일베를 악마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항해 '사실은 그들도 평범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기사는 일베를 향한 타자화를 의식하다보니 어딘가 맥이 빠지는 지나친 일반화로 끝나버린 감이 없잖아 있다. '악마처럼 보이는 그들도 사실은 평범해'에서 한 끗 더 나아가 왜 평범한 그들이 '악마'가 되는지, 왜 일베는 그걸 가능케 하는 공간인지를 규명했어야 했다. 내가 만난 일베 유저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능욕'이나 일베 내의 여성혐오, 지역혐오적 발언에 “조금 과한 감은 있지만 거긴 원래 그런 곳”, “웃겨서 하는 것” 등의 대답을 내놨다. 요즘 말로 옮기면 그것은 일종의 '밈'이며 일베는 '그런 밈이 유머로 통용되는 공간'이라는 뜻일 테다. 그들이 온라인에서 밈으로 소비하던 여성혐오 등은 결국 다 오프라인으로 비어져 나왔다. 그들은 '폭식 투쟁'처럼 꾸준히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위력 행사를 고민했고 '실천'했다.

극우 세력이 법원 담을 넘어 공권력에 대한 테러를 자행한 오늘에 이르러 그들의 생성과 준동, 그것을 가능케 한 토양을 조명하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언론을 위시한 우리 사회의 자신들을 향한 지나친 악마화나 타자화, 일반화를 넘어서. 지금껏 언론은 이들 목소리를 팩트체크없이 퍼나르며 선정성에 기대 기사의 페이지뷰 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또 어떨 때는 '일부 의견'이라며 무시하다가도 어떨 때는 '다수 의견'으로 격상해 '페미 논란'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향한 괴롭힘을 '젠더 갈등'으로 프레이밍했다. 극우 커뮤니티나 유튜브에 대해 언론은 그때 그때 입맛에 맞게 꺼내 썼을 뿐 이렇다 할 '관점'이랄 게 없었다는 게 옳은 지적이다.

뒤늦게나마 면밀한 진단과 정치한 분석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취사선택'이다. 게시물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 분석, 당사자 인터뷰, 전문가 멘트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노이즈'들을 적절히 걸러내는 것이 곧 기자와 데스크의 실력이다. 데이터 분석을 하다보면 의미값이 불분명한 것들이 자주 수집되는데, 실은 그게 커뮤니티 내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는 그네들만의 은어일 수도 있고, 혹은 정반대일 수도 있다. 이를 기사에서 살리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기자의 역량에 달렸다. 전문가 멘트를 따는 일도 마찬가지다. 시국을 분석할 역량이 안 되는 이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기사에 담는 일은, 시간이 부족한 기자가 자주 저지르는 실수이자 알면서도 넘어가는 '습관'이다. 이러한 참사를 막는 '눈'이 취재 기자와 데스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1월19일 오전 3시경 서울서부지법에서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 사진=유튜브 갈무리

'극우의 요람'이라는 일베가 탄생한 지 올해로 15년 째, 그들을 단순히 사갈시한 대가를 우리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냥 싫어하는 것은 제일 쉬운 길이다. 이제라도 어려운 작업에, 전면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서부지법 폭동'을 사흘 전부터 조직적으로 모의한 정황을 디시인사이드의 몇몇 갤러리를 분석해 보도한 연합뉴스의 최근 기사(<尹지지자 커뮤니티, '난동' 사흘 전 서부지법 답사 정황>, 2025년 1월26일) 같은 것들이 전초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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