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요안나씨 유족 "MBC, 괴롭힘 예방 못한 책임…가해자 사과하라"

김예리 기자 2025. 1. 2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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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노동자 소모시켜, 비극 방치 사과 요구…정치적 소비되는 것 분노"
유족, 가해자 4명이 고인 따돌렸다고 판단…지난달 관련 민사소송 제기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고 오요안나 캐스터는 MBC 보도국 과학기상팀 기상캐스터로 일하다 지난 2024년 9월15일 직장내괴롭힘을 호소하며 숨졌다. 사진=고인의 생전 유튜브 브이로그 영상 갈무리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숨진 고(故) 오요안나 MBC 보도국 기상캐스터의 유족들이 “MBC는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지 못한 책임을 인정하고 오요안나에게 사과하라”고 했다. “괴롭힘 가해자들에게 최소한의 가해 인정과 요안나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다”고도 했다.

오씨 유족은 28일 통화에서 “(고인이 겪은 일은) 개인 인격의 문제이자 시스템의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MBC 안에선 약육강식, 악마적 자본주의의 세계가 펼쳐졌던 것 같다. 프리랜서 기상캐스터들이 방송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서로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살아남는 구조”라고도 했다.

유족들은 지난 27일 언론을 통해 오씨의 유서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오씨는 지난 2021년 5월 MBC에 기상캐스터로 입사해, 근무 3년5개월차인 지난해 9월15일 숨졌다. 고인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유서엔 함께 근무했던 복수의 기상캐스터 이름과 함께, 이들로부터 부당한 비난과 인격 모독을 겪어왔다는 고발이 담겨 있었다.

유족들은 오씨가 지난해 9월 생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가족들에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분노와 고통을 호소해왔다고 했다. 유족은 오씨가 공개된 자리와 개인 간 대화를 막론하고 업무상 필요성을 벗어난 질책과 비난, 인격 모독성 발언 등 괴롭힘을 겪은 것으로 보고 지난달 고인과 함께 근무한 기상캐스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MBC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본지가 확보한 소장과 오씨가 생전 남긴 기록 등에선 고인이 겪은 일들에 대한 다수의 대화, 기록들이 확인됐다. 오씨는 유서에서 예정된 라디오 방송 때문에 특보를 맡지 못하겠다고 했더니 책임감이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면서, “갑자기 새벽 (방송)을 맡은 탓에 택시 탈 돈이 없고 3개월 간 숙직실에서 자면서 출근할 동안 다들 관심 가지신 적 있나”라고 적었다.

오씨는 본인의 실수로 인해 MBC 기상캐스터 조직 전체가 피해를 입거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압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녹취록에 따르면 한 선임 캐스터는 2022년 하반기 입사 2년차였던 오씨에게 방송 실력을 문제 삼으며 “이렇게 되면 그냥 잘리거나 기상팀이 없어지거나” 할 수 있다며 “태도까지 안 좋아? 있어야 될 이유가 어떤 게 없어”라고 했다. 이에 오씨가 눈물을 흘리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자 해당 캐스터는 “너 왜 이렇게 잘났어?”라며 질책을 이어갔다. 오씨는 당일 MBC 내부 동료에게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잘못했어도 내가 이런 소리 들을 만큼 최악인가”라며 “물어보고 싶었는데 눈물만 나더라”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또 다른 날에는 선임 캐스터가 오씨에게 “아는 아나운서 선배 많다면서 가서 좀 봐달라고 해” “MBC 날씨 전체가 욕 먹어” 등의 지적을 하고, 오씨가 “더 꼼꼼히 모니터링 하겠습니다 선배님”이라며 답한 카카오톡 대화가 확인됐다.

선임 캐스터의 업무를 대신 처리한 오씨가 '태도'를 이유로 비난 받은 대화도 발견됐다. 지난해 4월 오씨가 선임 캐스터가 부탁한 자료를 대신 작성해 제출한 뒤 '다음부터 제출일을 지켜달라'고 하자, 해당 캐스터는 “지금 나한테 훈계해?” “어쩌라는 거야” “어이가 없네” 등으로 답했다. 오씨는 이에 “그런 뜻은 아니었다” “제가 기분 상하게 말씀드린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7월엔 오씨가 MBC 보도국장과의 대본 검토 과정에서 받은 선임 캐스터 방송 관련 지적 사항을 기상팀 단체 대화방에 공유했다는 이유로 질책 받았다. 앞선 방송분에 대해 타 캐스터 지적 사항이 공유된 적 있는 대화방이었다. 이 대화방에서 한 선임 캐스터는 “선배들이 너네 틀린 거 찝어내고 단톡에서 뭐라 하는 건 일부러 그러는 거야”라며 “안나가 선후배에 대한 개념이나 태도가 많이 다른 것 같아”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선임 캐스터는 “저는 이제 이 방에서 일일이 답 안 할게요”라면서 “기본도 안 돼 있는 후배를 하나하나 상대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이해 부탁드립니다”라고 했다.

유족은 다수의 언론 보도에서 괴롭힘 가해자가 2명으로 특정된 것과 달리 가해자는 4명으로, 고인이 다수에 의해 따돌림을 당했다고 보고 있다. 오씨가 생전 복수의 정규직 직원을 포함한 MBC 동료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호소했음에도 변화는 없었다고도 했다.

오씨에게 문제의 발언을 한 것으로 파악된 2명의 기상캐스터에게 28~29일 가해 사실 및 입장 확인을 위해 문자·전화 연락을 취했지만 현재까지 답이 오지 않았다.

▲고 오요안나 기상캐스터가 생전 자신에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MBC 날씨뉴스 방송화면. 출처=고 오요안나 캐스터 인스타그램

“기상캐스터, 사고 당해도 아무도 책임 안 지는 배달노동자와 같다”

유족은 통화에서 “이 사건이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길 바란 게 아니라, 개개인의 반성과 사회적 경종을 이끌어내길 바라며 문제 제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인의 사망 배경엔 “기상캐스터끼리 경쟁을 유발하는 프리랜서 고용 구조와 (MBC) 내부 문화”가 있다고 강조했다.

MBC 기상캐스터들이 속한 보도국 과학기상팀은 팀장을 포함한 팀원 전원이 프리랜서 신분이다. 오씨도 방송분에 따라 건건이 급여를 받아왔다. 유족은 오씨가 MBC로부터 받은 월 급여는 200만 원을 넘지 않았다고 전했다.

관련해 유족은 “배달라이더와 다르지 않다. 회사가 건건으로 대금을 지급하면서, 교통사고가 나면 누구도 책임 지지 않는다”며 “MBC도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소모시켰다. 기상캐스터들이 방송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원시적으로 서로 약점을 물고 늘어지며 살아남는 구조를 만들어왔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MBC는 약자의 권리를 옹호한다고 말하지만 내부에선 강자가 살아남는 노동 구조를 유지했다. 이런 비극이 생기도록 방치한 데에 인정과 사과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MBC는 28일 고인이 자신의 고충을 담당 부서나 관리 책임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며 유족이 요청하면 진상조사에 착수하겠다고 했다. 이를 두고 유족은 “MBC가 몰랐다고 말하는 것은 자정하고 예방할 능력이 없는 회사임을 인정하는 것”이라면서 “MBC가 권력자를 향해 입바른 말을 해온 모습대로 (공식 입장에서) 사내에도 그런 태도를 취해줬다면 더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올바른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에 대해서는 “망신을 주거나, 직업적 생명을 끊기를 원한 것이 결코 아니다. 지금이라도 최소한의 인정을 하고 요안나에게 사과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한편 유족들은 오씨의 괴롭힘 피해가 알려진 뒤 사건이 유족 뜻과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우려도 전했다. 유족은 “오요안나가 정치적으로 소비되는 것에 분노한다. 비참할 뿐”이라면서 “이번 사건이 정치적 공격이나 논쟁이 되는 것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그는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의 영상에 분노한다. 우리는 가해자가 2명이라 밝힌 적도 없고, 가해자가 그들이 특정한 사람들이라고 밝히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MBC는 28~29일 유족 요구에 대한 입장 및 사실 확인을 위한 전화와 문자 메시지에 현재까지 답하지 않았다. 관련 질의에 앞서 MBC 측은 “고인이 당시 회사에 공식적으로 고충(직장 내 괴롭힘 등)을 신고했거나, 신고가 아니더라도 책임있는 관리자들에게 피해사실을 조금이라도 알렸다면 회사는 당연히 응당한 조사를 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MBC는 “정확한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마치 무슨 기회라도 잡은 듯 이 문제를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면서 “유족들께서 새로 발견됐다는 유서를 기초로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한다면 MBC는 최단시간 안에 진상조사에 착수할 준비가 돼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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