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연 승객, 영웅인 척 말라” 승무원 대응 논란에 분노한 항공사 직원들이 한 말

김보영 2025. 1. 2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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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김해공항 계류장에서 승객 170명과 승무원 6명을 태우고 이륙을 준비하던 홍콩행 에어부산 항공기 BX391편 내부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진화 작업을 하고 있다. 화재는 1시간 16분 만에 완전히 진압됐고 승객 170명(탑승 정비사 1명 포함), 승무원 6명 등 모두 176명은 비상 슬라이드로 모두 탈출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보영 기자] 지난 28일 부산 김해국제공항 계류장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항공기에서 불이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을 두고 기내 보조배터리 화재 등이 의심되는 가운데, 승객 일부는 “안내 방송이 없었다”며 비상대응 절차에 대한 논란을 제기했다.

29일 항공업계와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28일 오후 10시 15분경 김해공항 주기장에서 승객 169명과 승무원 6명, 탑승정비사 1명 등 176명을 태우고 홍콩으로 떠나려던 에어부산 항공기 BX391편 꼬리 쪽 내부에서 불이 났다. 기내에 불꽃이 튀면서 승객과 승무원은 비상구 문을 열고 비상용 슬라이드를 이용해 모두 탈출해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슬라이드를 타고 대피하는 과정에서 3명이 경상을 입었고 승무원 4명이 연기를 흡입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중 경상자 2명과 승무원 4명은 치료 후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은 오후 10시38분쯤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소방인력과 장비를 최대한 동원해 진화 작업에 총력전을 펼쳤다. 대응 1단계는 관할 소방서 인력 전체가 출동하는 경보령이다. 불은 오후 11시24분쯤 초진됐고, 화재가 발생한 지 1시간 16분만인 11시31분쯤 항공기 대부분을 태운 뒤 완전히 꺼졌다.

승객들 “가만히 앉아 있으라해” “승객이 문 열었다”

화재는 인명피해 없이 전원 대피하며 마무리됐지만 일부 승객들은 항공사 측의 대응이 부실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에어부산 항공기 뒤편 좌석에 앉은 한 승객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승무원이 ‘앉아 있으라’ 하고서 소화기를 들고 왔는데 이미 연기가 자욱하고 선반에서 불똥이 막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연기가 차기 시작하니까 비상구 옆에 앉은 승객이 게이트를 열었고, 승무원이 반대편 게이트를 열어 승객들이 탈출하기 시작했다”며 “상당히 혼란스럽고 무서웠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한 40대 승객은 “처음 봤을 때 불이 짐칸 선반 문 사이로 삐져나왔다”며 “불을 끄려고 문을 열려고 했는데 승무원이 열지 말라고 해서 하지 않았고 승객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나가려고 뒤엉켰다”고 화재 상황을 떠올렸다. 항공기 앞쪽에 있었던 한 승객은 “승객들이 전부 착석하고 벨트까지 맨 후 뒤쪽에서 ‘불이야’하는 소리가 났다”며 “별도로 화재에 대한 안내 방송은 없었고 연기가 앞쪽까지 밀려왔다”고 말했다.

친구와 홍콩 여행을 가려 한 임신부 승객은 “세월호 사고나 이번 제주항공 사고도 있었는데 승무원들이 가만 앉아 있으라며 소화기를 뿌리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며 “화재가 난 좌석 주변 승객을 나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승무원이 ‘짐 놓고 나가라’는 말도 없어 자기 짐 챙기는 승객과 탈출하려는 승객으로 아수라장이었다”고 말했다.

항공사 직원들 “문 잘못 열면 추락하거나 폭발 가능성”

승무원들의 대피 안내 절차가 적절했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일고 있는 가운데 항공업계 종사자들은 “비상 상황에서 승객들이 임의로 탈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안전요원인 승무원들의 지시를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대한항공의 한 직원은 “세월호는 가만히 있으라고 하고 선장이 먼저 탈출했지만 우리는 아니다”라며 “우리는 제일 마지막에 나간다. 그게 매뉴얼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잘 모르는 승객 입장에서는 답답할 수 있겠지만 매뉴얼에 기반해서 움직이고 있는 거다. 내 목숨 걸고 승객들 살리려고”라고 말했다.

에어부산의 한 직원은 “승무원 지시 없이 문 열어버리면 엔진에 빨려 들어갈 수도 있고 슬라이드 오팽창이라 안 터지면 손님들은 매뉴얼로 터트리는 방법을 모르니 그대로 추락했을 수도 있고 불씨가 도어쪽으로 튀어서 여는 순간 슬라이드 속 가스와 함께 폭발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에어부산 직원도 비상문을 열었을 때 일어났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고 가능성을 나열하며 “제발 마음대로 행동하고 영웅인 척 인터뷰하지 말아달라. 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에티하드 항공의 직원은 “리튬 배터리 화재면 그에 맞는 매뉴얼이 있다. 소화기로 초기 진압 후 물로 채운 컨테이너에 넣어버린다”며 “기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할론 소화기는 산호를 밀어내서 화재 나는 곳에 산소를 없애 진압하는 구조다. 한창 진압 중인 불에 산소 바람이 생기면 진압이 더 이상 안된다. 문이 열려서 포기하고 다른 비상구도 개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에어부산은 29일 자료에서 화재사고 당시 기내 비상탈출 경위에 대해 “최초 목격 승무원에 따르면 후방 좌측 선반에서 발화가 목격됐다”며 “화재 확인 즉시 승무원이 기장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기장은 2차 피해가 없도록 유압 및 연료 계통을 즉시 차단한 후 비상탈출을 선포해 신속하게 전원 대피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화재 안내 방송이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별도의 안내 방송을 시행할 시간적 여력없이 동시다발적으로 긴박하게 이루어진 상황으로, 짧은 시간 내에 관련 절차에 의거해 신속하게 조치해 탈출업무를 수행했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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