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렵더라도 어쨌든 해보라고
‘시스터 아웃사이더’의 저자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시인 오드리 로드는 미국 주류 문단의 벽을 부순 최초의 흑인 여성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소수자의 정체성을 지닌 작가로서, 백인 여성과 결혼한 두 아이의 엄마로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였다. 1970~1980년대 흑인 민권운동, 급진적 여성운동, 게이·레즈비언운동에 참여한 운동가였다.
‘나는 당신의 자매입니다’(박미선·이향미 옮김, 오월의봄 펴냄)는 시인이자 도서관 사서, 교수이자 딸과 아들의 엄마, 운동가이자 전사로 살아온 로드의 에세이·연설문·미출간 산문을 모은 책이다. 옮긴이들이 해제에 언급했듯 ‘시스터 아웃사이더’의 핵심이 성애였다면, 이 책의 핵심은 ‘차이 페미니즘’이다.
로드는 “삶의 차이, 사랑의 차이, 일의 차이를 가로질러” 자신의 말과 글이 다른 취약한 이들에게 가닿기를 바랐다. “성장은 차이들 속에서 발견된다”고 그는 믿었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스스로 차이를 정의하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복잡하고 어려운 현실을 살펴보지 않을 때, 예기치 못한 왜곡이 벌어진 상황에서조차 이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을 때 분열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백인 아버지들’이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고 선언했지만, 로드는 흑인 어머니와 시인이 “나는 느낀다, 그러므로 자유롭다”고 속삭이는 것을 들었다. 언제나 이성에 밀려났던 ‘느낌’은 혁명적 인식론으로 자리를 되찾는다. 왜 마음과 느낌과 감정은 세상을 이해하는 데 부차적인 것이 되어야 하는가? 로드의 느낌과 실천은 전복적이고 혁명적이기에 더 많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사상이 된다.
“저는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전사 시인 어머니이며, 저의 이 모든 정체성보다 더 강인한 사람입니다. 저는 분리 불가능한 통합성을 지닌 사람으로 존재합니다.”
삶과 시를 분리할 수 없었던 시인,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가로질러 연대하고 함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운동가, 이성애 제도와 인종의 차이를 넘어선 가족 안에서 관계의 섬세함과 균형감을 찾은 생활인, 누구보다 냉철했던 투사, 그의 진면목이 이 책에 담겼다. 무엇보다 글을 쓰고 싶은 이들이라면 참고할 것. “두렵더라도 어쨌든 해보라고. (…)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 속삭이는 목소리에 용기를 얻을지니. 옮긴이들의 해제 또한 주옥같아 줄을 줄줄 치게 된다. 228쪽, 1만7천원.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21이 찜한 새 책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남유하 지음, 사계절 펴냄, 1만8천원
소설가 남유하가 스위스 조력사망기관 디그니타스에서 생을 마감한 여덟 번째 한국인, 엄마와 함께한 동행기를 썼다. 누구보다 삶을 사랑했지만 말기 암의 고통을 끝내고 싶었던 엄마의 마지막 소원은 존엄한 죽음이었다. 준비 과정부터 애도 일기까지, 돌봄과 죽음에 대한 또 다른 의견. 담담한 문장에 눈물이 차오른다.
교육과 기술의 경주
클라우디아 골딘·로렌스 F. 카츠 지음, 김승진 옮김, 생각의힘 펴냄, 3만3천원
202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클라우디아 골딘이 하버드대 경제학과 로렌스 카츠 교수와 함께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 심화 원인을 진단한다. 교육과 기술 사이에서 불평등 증가 여부가 달려 있다. 저자들은 20세기 대부분 교육의 진전으로 불평등이 감소했지만 1970년대 이후 교육 성장의 둔화로 불평등이 심화됐다고 본다.
식물을 보는 새로운 눈
마거릿 코훈·악셀 이월드 지음, 이정국 옮김, 안그라픽스 펴냄, 2만원
자연을 관찰하고 그리면서 자연과 하나 되는 법을 일러주는 책. 사계절 식물 그림은 경이롭고, 과학과 예술을 통합한 기획은 우아하다. 죽음과 삶, 자연과 그림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도 아우른다. 생태주의 사상에 기반한 괴테주의 생물학자 마거릿 코훈, 괴테주의 환경 예술가 악셀 이월드가 함께 썼다.
어떻게 과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이윤종 지음, 어크로스 펴냄, 1만7천원
교육방송(EBS) ‘지식채널e’의 원고를 쓴 방송 작가가 지질학자 우주선, 우주물리학자 황정아, 커피화학자 이승훈, 실험물리학자 고재현, 고생물학자 이융남, 인공위성 원격탐사 전문가 김현옥, 서울시립과학관장 유만선, 과학기술학자 임소연을 인터뷰했다. 읽을수록 과학자들의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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