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의 무덤과 함정…고스란히 드러낸 尹

CBS노컷뉴스 김명지 기자 2025. 1. 29.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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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로 시작해 '법치'와 싸우다
"무너진 법치 다시 세우겠다" 법치 내세우며 정치 입문한 尹
25차례의 거부권, 타협 없는 개혁…법치 만능주의에 대한 경고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눈을 감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법치'의 함정에 빠졌다.

법률가 출신으로 '법치'의 현주소를 지적하며 정치에 입문하고, 정치의 영역마저 종종 법치로 대신해 왔다고 평가받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해제를 기점으로 이젠 사법 당국과 '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대통령보다도 법치를 강조했던 윤 대통령이 법과 맞서는 일련의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법치를 바라보는 시각마저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한편, 법치는 만능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출마 일성으로 '법치 다시 세우기' 언급했던 尹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2021년 3월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며 검찰총장직 사의를 표명하고 있다.

법조인 출신으로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소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윤 대통령에게 '법치'는 매우 상징적이고 중대한 개념이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에서 검찰총장이었던 2021년 3월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검찰 수사권 폐지 등 문제로 사의를 표명하면서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이후 정계에 입문해 같은 해 6월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도 '법치'를 우선순위로 뒀다.

그는 당시 "산업화와 민주화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위대한 국민, 그 국민의 상식으로부터 출발하겠다"며 "그 상식을 무기로 무너진 자유민주주의와 법치,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공정의 가치를 기필코 다시 세우겠다"고 밝혔다.

'법치' 강조했던 尹…그가 '정치' 대신 택한 것들

연합뉴스

문제는 윤 대통령이 '법치'로 '정치'를 대신하려 했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단독 처리된 법률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25차례나 행사한 것이 대표적이다(권한대행 체제 이후 제외).

대통령실은 이러한 법률안에 대해 대개 위헌‧위법성이나 여야 간 '합의 없음'을 문제로 꼽으면서 거부권 행사가 대통령의 정당한 법적 권한임을 강조했다.

문제는 임기 내내 다수 야당의 벽에 부딪힌 윤 대통령이 이처럼 '정치'로 풀어갈 문제를 '법대로' 처분했고, 양측은 양보 없이 각기 '강 대 강 마이웨이'를 걸어왔다는 점이다.

국회가 '입법 독재'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선포한 비상계엄 역시 거대 야당을 상대로 한 끈질긴 설득, 대화와 타협, 인정, 책임과 같은 '정치'를 대신한 선택지의 연장선상이란 지적이 나온다.

연세대 행정학과 최영준 교수는 "윤석열 정부 출범 이래 법률안 거부권 행사, 의대 정원 증원, 노사 문제와 각종 개혁은 등은 법치주의 테두리 안에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야당과 파트너십, 대화와 타협과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며 "민주주의 없는 법치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법 위에 상식 있고, 상식 위에 도덕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야당의 반대는 비일비재한데, 이를 두고 비상계엄을 내린 게 통치 행위라며 법 뒤에서 숨는 건 법치를 주장하면서 법치를 망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에 되레 되치기…"'법치'와 '문제 해결 정치' 공존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법치를 강조했지만 윤 대통령은 결국 법에 발목이 잡혔고, 현재는 어떤 면에선 되레 법에 저항하고 있다. 다만, 그러면서도 '합법적 계엄'이란 굳건한 주장 아래 법리 다툼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윤 대통령 측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권, 서울서부지법이 발부한 영장의 적법성 등을 줄곧 문제 삼았다. 이에 따라 체포영장 집행 등을 물리적으로 거부하거나, 체포적부심을 제기하거나, 그도 안 되면 사법당국의 판단을 대놓고 비판했다.

박 평론가는 "법은 원체 해석이 여지가 많고, 불리하면 억지 논리를 펴는 데 악용되기도 한다"며 "윤 대통령이 포고령 작성, 구체적인 지시 등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법을 이용한 궤변"이라고 지적했다.

타협과 책임의 정치가 끝끝내 발휘되지 않은, 정치의 부재 속에 법치주의가 왜곡되고, 법치주의를 바라보는 시각마저 왜곡할 수도 있다는 우려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탄핵 이후에도 우리 사회에 법치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 가파른 대치 국면은 계속될 것 같다"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향해서도 여러 수단을 동원해 수사와 재판을 지연시킨다는 문제의식이 여론조사에 반영되는 상황인데, 정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법적 판단에 대한 각 진영의 불복은 앞으로도 당분간 극심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기가 더욱 어려워졌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이제는 '법치만능주의'에서는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합법 여부만 따졌던 방식의 '법치'로 인해 현재 법치주의가 얼마나 크게 위협받고 있는가"라며 "법치주의를 복원하는 것도 결국 '문제 해결의 정치'다. 당면한 문제에 대해 정치권이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주는, 정치가 돌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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