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쓴소리' 짓밟는 여야의 '내로남불'
금태섭 때 비판하더니 김상욱엔 보복성 상임위 사·보임
'양심 투표' 보장한 국회법 있지만 당규 앞에 무용지물
'당론 투표' 자체만 비판하긴 어렵다는 반론도
텃밭 지역구에서 자란 한계는 의원 스스로 극복해야
'미스터 쓴소리'가 실종됐다. 두 거대 양당의 진영 싸움이 극단으로 치닫으면서 어느 당이든 소장파는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선거 국면이나 탄핵 등 굵직한 정치 이벤트가 펼쳐지는 가운데 '당론'은 소장파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 지도부는 주류와 다른 목소리를 내면 '배신자 프레임'을 씌워 정치적 타격을 주는 방식으로 소수파를 통제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표면적으로는 '자유'와 '민주'를 전면에 내건 '가치 집단'이다. 하지만 양당이 그동안 보여준 모습은 당내 패권 구도에 걸림돌이 되는 소수(少數)를 억압하는 '이익 집단'에 가깝다.
소수 의원들이 과거와 달리 당내에서 '소장파' 자리조차 잃어가는 현상에는 당 지도부의 압박이 주효하게 작용한 탓이 크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소신 투표를 했던 의원들의 당내 입지나 지역구 기반이 탄탄하지 않거나 자신만의 정치적 자본이 크지 않았던 측면도 존재한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정치 선진국이라는 유럽을 보더라도 당론 투표 자체를 악습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진단도 나온다.
與, 김상욱 탈당 압박…보수의 민낯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8일 본회의에서 이른바 쌍특검(내란·김건희 특검법) 재표결이 끝난 직후 기자들과 만나 같은 당의 김상욱 의원에게 공개적으로 탈당을 권유했다.
권 원내대표는 "계속해서 당론과 반대의 행위를 한 김 의원에게 '당론을 함께 하기 어려우면 같은 당을 할 수 없는 것 아니냐, 탈당을 진지하게 고민해보라'고 권유했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쌍특검 모두 부결로 당론을 정했지만, 상당수 이탈표가 나오면서 통과될 뻔했다. 내란특검법은 단 2표가 모자라 부결됐다.
원내대표 입장에서는 또다시 야권 주도로 상정될 특검법에 대비해 느슨해진 표 단속을 다시 팽팽히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권 원내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노골적으로 김 의원에게 탈당을 압박한 것을 놓고는 친윤계 내에서도 "과했다"는 반응이다. 당내 일각에서는 "표 단속 필요성은 늘 있던 것 아니냐. 당헌·당규를 고치면 몰라도 이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모습을 노출해서는 곤란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국민의힘 당헌 제60조에 따르면 1항 '의원은 헌법과 양심에 따라 국회에서 투표할 자유를 가진다', 2항은 '당론에 대해 의원이 국회에서 그와 반대되는 투표를 했을 경우 의원총회는 의결로서 그에 대한 소명을 들을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반면 당헌 제63조에서 규정하는 '원내대표의 권한' 부문에는 소속 의원에게 탈당을 권유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
애초 무기명 투표였기 때문에 김 의원이 당론과 반대되는 투표를 했다는 분명한 증거 역시 없다. 다른 의원이 이탈표를 던졌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당 지도부가 김 의원의 투표 행위가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최소한 의원총회를 소집해 소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어야 했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다.
더군다나 원내 지도부의 압박은 공개 탈당 권유에서 그치지 않았다. 원내 지도부는 김 의원의 소속 상임위를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로 옮기기도 했다.
당론 투표에 따르지 않았을 경우에 대한 명확한 징계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이는 전형적인 보복으로 읽힐 수 있는 부분이다.
뒤늦게 '탈당 압박'이 논란이 되자 당 차원에서는 "탈당을 권유한 것이 아니다"라며 없던 일로 하자고 진화에 나서는 등 촌극을 빚기도 했다.
법이 보장한 소신 투표…남은 건 '내로남불'
당헌·당규가 국회법에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에는 원론적으로 대부분 공감하는 지점이다. 다만 국회의원도 의원이기 이전에 당원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은 김 의원 탈당 권유 사태 이전에도 국회에서부터 이어져 온 해묵은 논쟁이다.
2019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표결 과정에서 당시 금태섭 민주당 의원이 '소신 투표'를 했던 것이 그 예다.
금 전 의원은 공수처법 표결 당시 기권했고, 당 안팎에서 제명 요구가 이어졌다. 2020년 총선 공천이 한창이던 때였던 만큼 당원들의 목소리가 컸던 때였다. 금 전 의원은 지역구 경선에서 당시 민주당 주류였던 '친문'을 표방한 강선우 당시 후보에게 패했다.
민주당 윤리심판원은 이듬해 금 전 의원의 소신 투표는 "당의 강령이나 당론에 위반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징계를 결정했다.
국회법에 양심 투표가 보장되어 있더라도, 당론엔 '강제 당론'과 '자율 당론'이 있는 만큼 '강제 당론'은 당원으로거 따라야 한다는 논리가 국회법이 정한 '양심 투표'를 압도했다.
이에 미래통합당(現 국민의힘) 하태경 전 의원은 현행 정당법에 '국회의원의 양심에 따른 표결을 징계할 수 없다'는 내용을 담은 일명 '금태섭법(정당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 법은 임기 만료 폐기됐다.
통합당 차원에서도 "당 내부의 건전한 비판도 포용 못하는 민주당이 야당의 비판은 얼마나 무시할지 아찔하다"고 논평을 냈다.
이를 현재 국민의힘 상황에 대입해보면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당 지도부에 반기를 드는 목소리는 포용하지 않고 극우 세력의 논리만 포용하는 '극우 정당'이 된 상태다.
앞서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지난 21일 법원 폭동 사태 이후 여당이 강경 극우세력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언론의 지적에 대해 "어떤 세력과 특별히 거리두거나 말거나 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고 답했다.
당 지도부 인사들이 "모든 국민을 다 포용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고 거들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국민의힘은 소속 의원이 당론에 반기를 드는 상황에 처하자 자신들이 비판했던 상황을 그대로 답습했을 뿐만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으면 극단적인 주장까지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많던 '미스터 쓴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금 전 의원(서울 강서갑)이나 김 의원(울산 남구갑) 모두 각 당에서 텃밭으로 분류되는 곳에 지역구를 두고 있다. 텃밭 지역구엔 충성심 높은 당원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당론과 다른 목소리를 냈을 때 오히려 지역 내 당원들의 이탈 현상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역구 내 입지가 자연스레 흔들리면 이는 다음 총선에서 공천 불이익으로 이어진다.
더욱이 금 전 의원은 단수 공천을 받았고 김 의원은 국민추천제를 통해 공천받은 점 역시 '소신 정치인'으로 뿌리내리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지도부 입장에서는 공천 당시에는 은혜를 입어놓고 당이 필요로 할 땐 다른 소리를 한다고 느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치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독일이나 미국에서도 당론 투표 경향은 강하게 나타난다. 두 국가의 통치 체제는 다르지만 당론 투표를 중시하는 원내 운영 방식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미국의 경우 우리의 원내대표 격인 원내총무를 채찍을 뜻하는 '윕(whip)'으로 부른다. 주요 임무가 소속 의원들의 표를 단속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호칭이다.
당론 투표에 어긋나는 표결을 할 경우 지역구 예산을 배당하지 않거나 상임위를 사·보임 시키는 등 보복성 징계가 이뤄지기도 한다.
또다른 정치권 관계자는 "원내 지도부가 김 의원을 탈당시키지는 못한 대신 상임위를 바꿔버린 것으로 보이는데 지역구 당원들에게도 분명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김 의원이 금태섭이 아닌 조순형처럼 '미스터 쓴소리'로 계속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지역구 기반을 탄탄히 다지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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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박희원 기자 wontim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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