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간 수백개 쏟아진 '전한길' 단순 인용 보도 논란
'전한길' 보도, 빅카인즈 기준 245건, 다음뉴스 기준 500건
조선일보·매일신문, 반박 없는 인터뷰…음모론 무분별 확산 우려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 관련 보도가 일주일 동안 수백개가 쏟아졌다. 대다수가 전씨의 말을 따옴표로 단순 인용한 보도였다. 대중적 인지도가 상당한 전씨의 말을 검증 없이 확산시키는 언론의 행태가 음모론을 강화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을 정쟁화하는 데 기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한길씨는 지난 19일 유튜브에 <대한민국 혼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초래했다> 영상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했다. 전씨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이해된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가 절대 권력기관으로 감사원 감사나 국정원 조사를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대법원 판결과 검찰 수사, 국정원 조사 등 국가기관에서 이미 근거가 없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선관위 선거정보시스템 보안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을 지낸 김승주 고려대 교수는 27일 MBC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어떤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빈약한 음모론에 가깝다”고 일축했다. 선관위도 지난 21일 이래로 세 차례 장문의 보도자료를 내며 부정선거 의혹을 반박했다.
1월19일부터 1월27일까지 한국언론진흥재단 뉴스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104개 주요 언론사를 대상으로 '전한길' 키워드를 검색한 결과 총 245건의 기사가 나왔다. 다수의 인터넷신문이 포함된 다음 뉴스 기준으로는 500개가 넘는 기사가 검색됐다.
전씨의 발언을 중심으로 주요 기사들이 전개됐다. <'일타강사' 전한길 “선관위가 한국 혼란 초래… 수개표하자”>(YTN), <전한길 “왜 죽어라 달려드는지 이해 안 돼” 심경 고백>(한국경제), <한국사 강사 전한길이 2030에 눈물로 호소한 이유는>(문화일보), <전한길 “난 노사모 출신…비상계엄 아닌 계몽령, 국민들 선동당하고 있다”>(아시아경제) 등의 기사다. 일부 문단에서 “수개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았다” 등의 반박성 문장이 추가됐지만 기사의 주된 내용은 전씨의 발언 인용이었다.
빅카인즈 기준 보수성향의 언론사 위주로 전씨 관련 기사를 많이 쓴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17건) △아시아경제(16건) △노컷뉴스(15건) △매일신문(14건) △해럴드경제(13건) 등이다. 온라인 대응팀을 별도로 운영하는 경제 매체가 다수라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가십성으로 전씨 발언을 소비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채널A, 매일신문, 조선일보는 전씨의 별도 인터뷰를 내기도 했다. 채널A는 27일자 '정치시그널'에서 전씨를 인터뷰했는데 생방송에선 “일반 방송사에서는 이 부정선거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부정선거가 있다, 없다는 가치 판단을 내리지 않은 상태”라며 “전 선생님의 개인 의견임을 다시 한번 알려드린다”고 선을 그었지만 전문을 제외한 채널A 온라인용 기사에선 전씨의 발언만 포함됐다.
25일 매일신문 인터뷰와 28일 조선일보 인터뷰 역시 전씨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그대로 전달했다. 해당 영상과 기사들엔 '틀린 말 하나도 없다', '전한길샘 응원합니다', '역시 계엄은 계몽령이었다' 등의 댓글이 네이버 기준 수천 개 달렸다. 매일경제 인터뷰 제목은 <한국사 일타강사 전한길 “탄핵 반대, 대한민국 무너뜨릴 순 없다”>, 조선일보 인터뷰 제목은 <일타강사 전한길 “탄핵 또 탄핵…나라 망하게 하겠단건가”>이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을 옹호하는 세력이 공유하는 핵심 가치다. 아직 기성 언론 대부분은 부정선거 음모론과 선을 긋고 있지만 이렇게 음모론을 기성 언론이 따옴표로 무분별하게 다루는 것 자체가 음모론을 사회가 승인한 것 같은 효과를 준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한길씨는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스스로 희생한 윤석열 대통령에 사랑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고 '야당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발언하는 등 내란을 정쟁으로 바라보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정은령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교수는 지난 21일 미디어오늘에 “지금은 언론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기존에 하던 것처럼 트래픽을 노리고 따옴표로 짧게 짧게 기사를 쏟아내면 사면초가에 몰린 언론이 제 발등을 다시 한번 찍게 된다”며 “일단 누가 말한 건 사실이니 '발생 기사'를 써야 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런 무분별한 인용들이 부정선거 등 허위정보를 기성언론이 승인한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준다. 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허위정보들에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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