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물고 욕하며 성수 붓는 송혜교가 속시원한 까닭('검은 수녀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이번 설 명절 극장가는 단연 <검은 수녀들>이 채우고 있다. 예매율 1위에 공개 나흘 만에 80만 관객에 근접했다. 사실 오컬트처럼 마니아틱한 장르도 없지만 한국이 재해석한 오컬트는 이제 대중적인 장르가 되어간다. 음산하고 오싹하지만 스타일리시하고 때론 시원시원하기까지 한 새로운 오컬트의 세계. 바로 이것이 이른바 'K오컬트'라고까지 불리는 한국형 오컬트의 독특한 색깔이다.
<검은 사제들>에서 <곡성>을 거쳐 각종 좀비물들과 <방법> 같은 독특한 오컬트물이 쏟아지면서 생겨난 K오컬트라는 영역은 지난해 <파묘>로 정점을 찍더니 올해 초부터 <검은 수녀들>이 그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서구의 오컬트라면 악령이 깃든 부마자를 구마사제가 나서 싸우는 장면이 떠오르지만, K오컬트는 여기에 무속인 같은 한국적인 요소가 더해졌고, 음과 양이 마치 빌런과 슈퍼히어로의 대결처럼 그려지는 액션이 강화되었다.
<검은 수녀들>은 마지막 엔딩에 사제복을 입은 강동원이 카메오로 등장하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검은 사제들>의 수녀 버전이라고 해도 될 법하다. 강동원이 사제복을 입은 것만으로도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검은 사제들>처럼 <검은 수녀들> 역시 수녀복을 입은 송혜교가 단연 화제의 중심이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송혜교의 이례적인 홍보와 거침없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검은 수녀들>의 기대감이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영화는 등장부터 그간 보지 못했던 송혜교의 모습들만으로도 시선을 잡아끈다. 담배를 피우고 수녀복을 챙겨입고 드럼통을 들고(그 통에는 물론 기름이 아닌 성수가 채워져 있다) 부마자를 구원하기 위해 거침없이 걸어가는 모습은 '우리가 알던 송혜교 맞아' 하는 말이 절로 나오게 만든다.
<검은 수녀들>은 유니아 수녀(송혜교)가 미카엘라 수녀(전여빈)와 함께 악령이 깃든 소년 희준(문우진)을 구마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일반적인 오컬트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서사로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색다른 차별점들이 눈에 띈다. 그건 공식적으로 사제들만 할 수 있는 구마의식에 수녀가 전면에 나서는 서사라는 점에서부터 보이는 차별점이다.
유니아 수녀는 구마의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사제단으로부터 신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식적인 구마의식의 권한이 부여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가 소외시킨 '소수자'이자 '사회적 약자'의 시선이 담겨 있다. 그런데 유니아 수녀와 함께 악마와 맞서는 미카엘라 수녀도, 또 유니아 수녀와 과거 같이 했던 수녀지만 지금은 무속인이 되어 있는 친구도 사실상 같은 처지다. 이들은 모두 능력자지만, 그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건 마치 저주처럼 그려진다. 유니아 수녀는 그래서 자조적인 의미를 더해 자신들을 "미친년들"이라 말한다.
유니아 수녀의 거침없는 행보들, 즉 담배를 피우고 욕설을 하며 악마와 대차게 맞붙는 모습은 그래서 보는 이들을 보다 더 시원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능력 때문에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가 되어 살아가는 소외된 이들의 정서가 이들의 행보들을 달리 보게 만들고 나아가 응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악마와 맞서기 위해 이들이 보여주는 연대는 현실과 맞물려 깊은 은유의 울림을 만들어낸다. 유니아 수녀가 맞서고 있는 건 악마들만이 아니라고 여겨지고, 진짜 미친 건 저들이 아니라 저들을 버린 세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영화가 가진 이런 의미와 은유들을 염두에 두고 보면, 영화 개봉 전부터 송혜교가 보여준 이례적인 홍보와 거침없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새삼스런 의미로 다가온다. 한국에서 여성이 배우로 살아가는 과정은 그 능력에도 불구하고 비뚤어진 현실의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틀 때문에 왜곡되거나 폄하되고 때론 소외되기도 했던 것이 현실이고 송혜교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이미지에 갇혀 있기보다는 배우로서의 위치를 찾아나가겠다는 의지가 수녀복을 입었지만 담배를 피워 물고 욕설을 날리는 송혜교에게서 느껴지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이제 그런 이미지들은 저 불길 속에 모두 태워버리고 배우로서 훨훨 날아가기를.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영화 '검은 수녀들'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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