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노출신 합성’논란 왜? “딥페이크 안일하게 볼 우려”

김효실 기자 2025. 1. 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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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살면서 그런 기분 처음 느껴봤어요. 피가 온몸에서 다 빠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소름 끼치고.”

배우 박하선이 ‘음성·영상 합성기술(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경험을 털어놓으며 한 말이다. 그가 진행을 맡은 범죄 분석 코멘터리 프로그램 ‘히든아이’(MBC 에브리원) 14회차(지난해 12월30일 방송)에서 딥페이크 성범죄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다.

이날 방송에서 박하선은 “예전에 누군가 (내 피해에 대해) 에스엔에스(SNS)로 제보를 했고, (범인을) 잡고 보니 대학 교수였다”고 했다. 가해자는 팬미팅에 참여해 활영한 사진으로 불법합성 범죄를 저질렀으며 ‘처벌 수위가 가볍다’며 항소했지만 가해자가 벌금형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됐다고 덧붙였다. 공동진행자인 아이돌 그룹 씨스타 출신 가수 소유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딥페이크’라는 용어가 없던 시절, 지금으로부터 한 10여년 전 일인 것 같다. (지인이) ‘혹시 너야?’ 이러면서 알려줘 사이트에 들어가게 됐는데 (범죄 피해물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소유는 2024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전했다. “올해 팬분들이 제보를 해주셨어요. 처음에 사진만 봤을 때는 크게 타격이 없었어요. 너무 말도 안 되니까. 그런데 영상들 보면서 계속 기분이 너무 안 좋았어요.”

범죄 관련 예능 프로 ‘히든아이’는 공동진행자 4명(박하선·소유·김성주·김동현)과 프로파일러 출신 권일용·표창원, 현직 형사 이대우 등 총 7명이 함께한다. 지난해 12월30일 방송분에서 박하선·소유가 딥페이크 피해 경험을 공개했다. MBC every1 유튜브 갈무리

한겨레가 2020년 6월25일부터 지난해 6월까지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의2(허위영상물 반포 등) 위반 혐의가 포함된 105건 1·2심 판결문 살펴본 결과, 아이돌 등 연예인 피해자가 포함된 사건은 모두 37건으로 전체의 35.2%를 차지했다. 성별 파악이 가능한 연예인 피해자 111명(동일 인물 중복 포함) 중 109명(98.2%)은 여성이었으며, 미성년자도 상당수였다. 여성 연예인을 타깃으로 한 불법합성 성범죄는 수십여년 간 이어져 온 문제지만, 우리 사회는 이들의 고통에 둔감했다. 유명인이라면 감내해야 하는 일로 치부하는 정서와 성적 대상화가 만연한 대중문화 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맞물린 결과다.

특히 최근 드라마 ‘원경’(tvN, TVING)의 노출신을 둘러싼 논란은 대중문화 산업의 ‘시대착오적 인식’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화일보’는 지난 16일 원경의 주연 여성 배우들이 ‘19금’ 버전에 나오는 신체 노출에 대해 대본 단계에서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했으며, 이들의 소속사 쪽에서 노출신 편집을 요구했지만 제작진이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이 과정에서 노출신이 신체를 노출한 대역 배우의 몸에 옷을 입고 촬영한 주연 배우들 얼굴을 합성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사실이 확인됐다. ‘원경’은 원경왕후와 이방원을 주인공으로 한 12부작 퓨전 사극이다. 티브이엔(tvN) 방송에서는 ‘15세 관람가’이지만 오티티(OTT) 티빙에서는 ‘19금’ 버전을 따로 제공한다.

드라마 제작진은 ‘노출 강요 의혹’ 보도가 나오자 당일 곧바로 입장을 내어 “(드라마가) 기획 처음부터 티브이엔과 오티티 버전을 차별화해 기획하고, 오티티 버전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 제작된다는 점을 오픈하고 캐스팅을 진행했다”, “제작 단계별로 소속사 및 배우별 협의를 거쳤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배우들 소속사 쪽에선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하지만 제작진의 해명에도 노출신을 제작한 방식을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부 누리꾼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한 누리꾼이 엑스(옛 트위터)에 공개한 민원 내용을 보면 “배우의 동의 없이 신체가 합성된 장면은 배우의 권리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심각한 범죄에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딥페이크 기술을 안일하게 받아들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범죄 예방과 인식 개선에 역행하는 행위이며 방송의 윤리적 기준을 어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돼 있다. 김은영 성균관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초빙교수는 22일 ‘여성신문’ 기고 글에서 “이번 ‘원경’을 둘러싼 논란이 반면교사가 돼 여성의 몸으로 이슈를 선점하고 화제를 모으려는 노출 마케팅이 시대착오적이란 점이 명확해지고, 역사 속 여성들의 삶을 통해 과거와 오늘을 바라보는 이해의 깊이가 깊어지길 바랄 뿐”이라고 짚었다.

드라마 ‘원경’의 한 장면. 티빙 제공

미국 배우·방송인노동조합(SAG-AFTRA)은 ‘노출·정사신 가이드’를 마련해 작품 오디션 때부터 촬영이 끝난 뒤 최종 영상과 스틸 사진이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지속해서 배우로부터 동의를 받도록 권고하고 있다. 배우가 노출을 원치 않는 경우 대역 배우를 쓰거나 컴퓨터그래픽(CG) 기술 이용이 가능하긴 하지만, 이 경우에도 배우에게 설명하고 지속적인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가이드는 2017년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거세지며 엔터테인먼트 업계 내 성폭력을 예방하고자 만들어졌다. 한국에서도 2017년 영화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난 뒤 한국영화감독조합(DGK)에서 성폭력방지위원회를 설치하고 2019년 ‘중·지·신(중지 Stop·지지 Support·신고 Report) 행동 강령’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강령에는 폭력, 섹스, 성적인 접촉, 노출이 있는 배역의 경우 관련 내용을 사전에 고지하고 촬영 때 감독과 배우가 동등한 지위에서 참여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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