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정치박박] `요행·한탕주의 보수`의 종말부터 바란다
대선 신승, 수권세력 염치 바란 국민 시험대
反극단, 청년·전문가 친화, 정당다움 걷어찬 尹
지지연합 이탈…방탄·검열·불복·폭력 내로남불
명분 부순 계엄亂 문책없이 집권 요행수 不可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위선' '무능' 등이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투표 독려 현수막에 해당 어휘를 '사용 불허'한 시기가 있었다. 성추문을 초래한 서울시장·부산시장 동반 궐위에서 출발한 2021년 4·7 재보궐선거였다. 국민의힘은 "투표가 내로남불을 이깁니다"라는 현수막 문안을 석연찮은 이유로 차단한 선관위와 당대 집권여당(민주당)에 한껏 각을 세웠다. 2017년 대통령선거,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국회의원 선거 연이은 참패로 '패배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던 세력이 '승리의 명분'을 찾는 순간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과거의 조국'으로부터 도덕률 잣대를 낱낱이 저격당한 뒤, "민주당만 빼고"라고 칼럼을 쓴 진보인사를 민주당은 고발했다. 또 페미니즘·미투에 앞장서던 여성 정치인들이 내편을 감싸려 "피해 호소인"을 들먹였고, 자가(自家) 소유 국민을 범죄시하며 세금폭탄을 안긴 정권에서 부동산 폭등 수혜자가 잇따르고 공사 임직원들이 '신도시 땅 투기'를 획책한 사건 등 내로남불이 부지기수였다. 국민의힘은 4·7 재보선에 이듬해 3·9 대선까지 이겼다. 헌정 초유의 '대통령 파면' 오명을 썼던 보수정당에 '주권자' 국민이 5년 만에 국정을 다시 맡긴 건 '명분의 승리'였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현 대통령을 후보로 택해 '탄핵의 강'을 건넌 점도 명분을 적잖게 보탰겠다. 2013년 국가정보원을 '댓글 수사'로 밀어붙여 이름을 떨쳤던 그는, 2017년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의 중추로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권까지 발골(拔骨)하며 공로를 인정받았다. 문재인 정권에서 검사장 승진과 동시에 서울중앙지검장이 됐고 검찰총장까지 직행했지만 '살아있는 권력 수사'로 정치문법을 깼다. '검찰 개혁'을 내세우던 부패 의혹 정권 실세들과 부딪히며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런 윤 대통령을 앞세운 국민의힘에 국민이 기대한 건 요약하자면 '염치'였을 것이다.
그렇게 치른 20대 대선에서 윤 대통령은 48.56%를 득표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고작 0.73%포인트차 앞섰다.투표율은 77.08%로 19대보다 0.15%포인트 못 미치지만, 선거인 수 약 4420만명 역대 최대규모로 치른 총력전 결과였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의 2.37% 득표까지 고려하면 '보수의 승리'도 아니었다. '탄핵 대선' 당시 자유한국당에 24%여 득표만 허용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안철수 몫'까지 지지를 몰아줬던 게 민심이다. 그러나 정권이 경제·원자력, 범죄수사까지 전문가집단을 배척하고, 젠더 및 대북·대중문제로 돌아선 2030남성에 '세대 비하'로 응수하자 돌아섰다.
'오만한 세력'에 냉엄한 국민은 운동권 카르텔 재집권 대신 보수에 기회를 줬다. 보수를 멀리하던 세력과 계층까지 '지지연합'을 이뤄줬다. 윤 대통령은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反)지성주의"와 "이권 카르텔"을 성토하며 출발했다. 국정을 전부 전문가들과 함께하겠다던 그다. 그러나 전문가들과의 민관합동위원회 구성은 조기 좌초됐고,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급변한 대통령실 졸속이전에 정권 인수 여력이 소모됐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차단됐고, '검수완박법 저지' 대오는 느슨했다. 대통령 의전라인은 1년도 안 돼 전문성을 상실했다.
국민의힘은 2022년 '정권교체 프리미엄'하에 치른 6·1 지선에서 17개 광역단체 중 12곳 단체장을 가져갔다. 2018년 지선에서 서울시장 20%대 득표로 참패하고 대구시장·경북지사 2곳만 건진 것에 비해 상전벽해다. 그나마 있던 지지연합 덕이지만, 정권은 이들을 등졌다. 친윤(親윤석열)계 주도로 30대 여당 대표를 '징계 축출'하고 '홍위병 청년'만 거둬들이자 '이대남'이 돌아앉았다. 대통령 지지율 초기 급락도 이때 보였다. 이듬해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의 '맨몸 수중수색' 원인이 해병1사단장 지시사항이란 직관적인 문책조차 정권 핵심부가 뭉개기로 일관하자 '군필' 30대도 돌아섰다.
전통적 지지층 붕괴도 못지 않다. 2023년 3·8 전당대회에 앞서 윤 대통령과 '관저 정치' 핵심들이 '바지 대표'를 만들기 위해 당내 여론을 토끼몰이했다. 유력주자가 도전을 포기할 때까지 대통령실 수석과 비서실장이 공격하고, 초선 50여명이 다선 선배에게 '연판장 집단린치'를 가했다. '수도권 대표론' 윤상현·안철수가 연대를 논의하자, '윤안(윤석열·안철수) 연대 단속령'과 '국정운영의 적'을 날조했다. 당원의 자연스러운 의사 형성과 투표를 못 견디는 천박함이었다. 이는 당의 자율마저 고사시켰다. 용산 정책기획수석-여당 정책위의장이 '당정협의 발표'를 양산했지만 화제가 된 바 없다.
유죄 확정으로 서울 강서구청장직을 상실한 인사를 즉각 사면·복권시킨 대통령, 이를 보궐 공천으로 받든 여당은 그해 10월 '강서 참패'를 자초했다. '용산 억제기' 역할을 못한 지도부가 임명직 당직자만 갈고 '2기 지도부'라고 분칠한 것, '혁신 없는 혁신위'에 눌려 해체된 것도 촌극이었다. 급히 내세운 '비대위원장 한동훈'도 취임 1주 만에 사퇴 압력을 받았다. 김건희 여사가 정권 초기 좌파인사와 접촉해 명품 가방을 받은 '몰카'가 4·10 총선 5달 앞 폭로됐는데, 비대위원장 지명 직전 한동훈이 '김건희 특검'에 관해 "법 앞에 예외는 없어야 한다"며 '국민 눈높이'를 시사한 탓이었다고 한다.
이는 '윤한 갈등'의 실질적 출발점이자, 반년 뒤 7·23 전대 앞 '영부인 문자 읽씹' 운운 불공정 전대 개입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이외에도 윤 대통령은 그해 2월 '의대 2000명 증원'과 '의료 계엄령'으로 전통적 보수층 직역을 공격했다. '선택할 자유'를 읽었다더니, 전국민·기관 국가의료보험을 강제가입시킨 한국과 의료시장이 개방된 미국 간 본질적 차이에 눈 감았다. 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운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기원을 두고도 오히려 프리드먼이 '담합성'을 비판했던 건 알까. '채 상병 사건' 수사대상인 이종섭 전 국방장관 출국금지 해제 논란은 중도·청년층을 더욱 떠나보냈다.
비대위가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으로 야권 총선후보 비리를 부각시키고, '개헌 저지선'에까지 호소하자 여당은 낙동강 벨트를 겨우 사수하며 108석을 건졌다. 그 직전 친윤계는 공천장악력에 혈안돼 비대위를 공격했다. 한 언론사 주필 겸 맹윤(猛尹) 유튜버가 "차라리 이번 선거 집시다…배신하지 않을 101석"을 외쳤듯. 그는 총선 참패 직후 공영방송 오전라디오 진행까지 꿰찼었다. 유튜버와 당내 정치인의 방송 잠식은 더 있었다. 전임 문재인 정권에 '나꼼수 출신' 공영방송 장악을 성토하던 여당의 잣대마저 부러뜨린 사건이다. 보수는 여론조사 등에서 '부끄러워서' 자취를 감춰갔다.
범보수층이 7·23 전대로 한동훈 지도부에 민심·당심 약 63% 득표를 몰아줬고, 10·16 재보선 부산 금정구청장 선거에서 여당이 야권 단일후보를 20%포인트 이상 득표차로 꺾는 '반전'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승세도 '맹윤'이 걷어찼다. 지난해 11월7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은 '명태균 게이트'와 '윤한 관계'에 관한 회피성 응답만 각인시켰다. 대통령 부부 휴대전화 교체 '홍보 과잉'도 기억에 남는다. 용산과 맹윤은 쇄신없이 당원 익명게시판 검열 시도로 11월을 허비했다. '김건희 특검 리스크'가 최고조에 이른 12월초, 야당발 음모론으로 치부되던 '충암파 계엄'이 현실화해버렸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는 언어도단이다. 여당은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에 참여하지도 않은 다수파가 더욱 큰소리쳤고, "계엄합법" 집회를 따라다녔다. 위헌적으로 국회 등에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48시간 내 미복귀 전공의·의료인을 '처단'한다며 언론 통제까지 선언한 계엄 포고령에부터 직접 사과한 적이 없다. 대통령을 '마음같아선 죽이고 싶다'는 익명 당원글조차 협박죄라 색출하고 계엄은 묵인하면서, 민주당 신고센터에만 '카톡 검열'이라며 설득력을 바라나. 비판보도는 "가짜"로 몰고, 자신들 입맛대로 써야 "진짜"라며 '데스크 흉내' 내는 언론관리도 전대미문이다.
최근 여론조사 혼돈을 즐기는 태도에도 '반성'은 없다. 자체 전화번호부 표본추출과 ARS(자동응답) 저예산 방식의 조사가 연말부터 양산됐다. 일찍이 보수 아스팔트만 박수칠 듯한 편파설문에 샘플링이 유독 튀던 업체, 총 2시간20분 만에 전화접촉을 8만7000여건 마쳤단 업체, 영남권 집계를 전국 조사처럼 공표한 업체, 대구경북보다 호남에서 보수정당 지지가 더 높단 업체, 전국단위 조사 수주를 현 정권에서 불린 비주류·영남권 업체 등 동시다발이다. 혹자는 2017년 대선 참패 직전 '홍준표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골든크로스를 이뤘다'는 지라시의 '가짜 여연 여론조사'가 떠오른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계엄선포 담화에 들지도 않은 '부정선거' 음모론이 국론을 분열시켜도, 여당은 정면반박 없이 "부실선거"를 거론하며 '간'을 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조작 음모론자들은 '사전투표에 참여만 해도 내 표가 전산시스템에 의해 도둑맞는다'는 주장, '수십만명인 투·개표 사무원과 참관인들이 총단합해 투표지·투표함을 조작하고 빼돌리고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킨다'는 양립불가한 주장을 동시에 하고 있다. 논리를 갖추려면 다툴 건 양측이지만 '선거불복 단일대오'로 귀결될 뿐이다. 대법원 판결을 토대로 선관위가 반박자료를 홈페이지 전면 게시해둬도 읽은 티조차 내지 않는다.
동맹인 미국 대사관부터 국무부까지 무단계엄에 불쾌감을 표하고, 주한미군이 가짜뉴스를 반박할 동안 '성조기'를 흔들고 다닌 게 이들 어용세력이다. '서부지법 폭동'까지 일으켰다. 국민의힘과 자유통일당을 합쳐도 비례 득표율 40% 미만인 밑천을 보여놓고도 '요행'만 좇더니, 민노총조차 하지 않던 '법원 습격'을 저질렀다. 지키는 게 있어야 보수인데 '책임없는 쾌락'만 좇았다. 정권은 지지연합과 명분을 부쉈을 뿐 복원한 적이 없다. 제도권 부수기를 능사로 아는 극단주의자, 6년째 "세상이 뒤집어진다"는 음모론자들과 어울려 '한탕'을 노리던 윤 대통령은 내란수괴 혐의 구속기소에 이르렀다.
보수는 오랜 신뢰자산을 탕진했고, 단죄는 불가피하다. '이재명 포비아'로 국민 여론을 토끼몰이할 생각은 접고 잘못에 대가를 치를 때다. 이대로면 보수는 '좀비'로 남는다. 불타서 잿더미가 된 다음에야 진정한 부활과 재건도 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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