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터진뒤 봉사 손길 확 줄어” 설 앞둔 쪽방촌 급식소 한숨
자원봉사자 줄더니 문의조차 없어”
기업들 물품-금전 후원도 감소
식재료값 올라 급식소 운영 난항
설 연휴를 앞둔 24일 오전 11시 반 서울 영등포구 쪽방촌. 쪽방촌 주민 100여 명이 배식대 앞에 길게 줄을 선 가운데 어묵국을 떠담던 봉사자 지모 씨(61)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총 300인분의 코다리 조림, 무김치 등 식사를 만들고 배식하는 데 참여한 자원봉사자는 총 10명이었다. 대부분 40대에서 50대로, 남자 봉사자가 많았다.
이곳을 찾은 자원봉사자는 작년 이맘때는 20여 명 정도였는데 절반으로 줄었다. 특히 외부에서 찾아온 봉사자가 예년에는 적으면 10여 명, 많으면 20명에 달했지만 올해는 아예 없었다. 빈자리는 쪽방촌 주민이나 노숙인 쉼터 관계자들이 거들었다. 이날 쪽방촌 봉사를 주관한 사단법인 ‘사막에 길을 내는 사람들’의 최은화 사무국장(68)은 “작년에는 경기 침체로 자원봉사자가 점점 줄었는데, 지난해 12월 3일 계엄을 기점으로 올해는 아예 문의가 끊겼다”고 말했다.
● 설 앞두고 “계엄으로 자원봉사, 기부 줄어”
설이 다가왔지만 일부 무료 급식소 등은 운영에 난항을 겪고 있다. 기업들의 후원은 물론이고 자원봉사자까지 줄면서 예년보다 활기를 잃은 모습이다. 영등포 쪽방촌에서 만난 쉼터 관계자는 “자원봉사자가 줄어든 빈자리가 확실히 티가 난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벌어진 불법 비상계엄의 타격이 컸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자원봉사자는 “작년 11월 말, 12월 초쯤 교회 관련 단체들에 연말연초 배식 봉사에 참여해 달라는 편지를 돌렸다”며 “그 직후 계엄이 터졌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배식을 받아 식사하던 한 쪽방촌 주민도 “요즘은 무료 급식소마다 사정이 어려워 근근이 버티는 것 같다”며 “나라에 무슨 큰일이 생기면 이런 급식소부터 여파가 드러난다”고 우려했다.
연탄 나눔 봉사 현장에서 만난 직장인 김모 씨(26)는 “봉사 현장은 원래 서로 밝게 웃으면서 땀 흘리고 보람을 느끼는 게 묘미인데 이번 연말에는 계엄, 탄핵 등 어수선한 정국 때문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며 “원래 자주 나오던 봉사자분들도 최근에는 발걸음을 끊었다”고 말했다.
설 물품이나 금전 후원도 줄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무료 급식소 ‘바하밥집’ 측은 “통상 설 전후에 성금뿐만 아니라 떡, 간식, 핫팩 등 기부 물품이 많이 들어왔는데 올해는 문의도 한 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무료 급식소 ‘명동 밥집’을 운영하는 천주교한마음한몸운동본부의 경우 지난해 후원금이 2023년보다 12%가량 줄었다.
● 기업 후원도 끊겨… “기부의 효능감-보람 느끼도록 독려해야”
서울 종로구에 있는 무료 급식소 ‘사회복지원각’에 따르면 지난해 설에는 ‘어르신들에게 명절 음식을 대접하고 싶다’며 후원금을 보내온 기부자가 20여 명 있었는데, 올해는 10명 이하였다. 자원봉사자가 모자라 운영 자체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준영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는 “경기가 침체되거나 정치적 위기를 맞는 상황에는 ‘각자도생’의 분위기가 생겨 전반적으로 기부에 관한 관심이 줄어든다”라고 말했다.
기업 후원도 줄고 있다. 25일 서울 동대문구 무료 급식소에서 만난 ‘밥퍼나눔운동’(밥퍼) 관계자는 “지난해 설 명절에 기업 후원이 대략 3000만 원 정도 들어왔는데, 올해는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사막에 길을 내는 사람들’은 대기업에서 지난해 12월까지 후원금을 보내줘 운영에 도움을 받았지만, 올해는 기업의 새 후원 문의가 없는 상태다.
후원은 줄었는데 공과금이나 식재료값은 오르니 무료 급식소 운영은 점점 어려워진다고 봉사단체들은 하소연한다. 밥퍼 측은 “수도세, 전기세 등을 비롯해 식자재 가격도 모두 지난해에 비해 최소 15∼20%씩은 뛴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무료 급식소 ‘토마스의 집’는 채솟값이 많이 올라 매년 해오던 김장을 올해는 못 했다고 한다. 후원받은 김치로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한창근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에 들어서면서 일부 기부는 집회나 정치 분야로 쏠리는 측면이 있었다”며 “무료 급식소 등 복지 분야의 기부를 다시 활성화시키기 위해선 사람들로 하여금 기부 행위가 주는 효능감, 보람을 다시 느낄 수 있도록 독려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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