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네살에 매료된 양주별산대놀이, 이젠 운명”…이수자 ‘윤동준’ [청년 장인, 전통을 잇다②]
매일매일 기량 닦고 과거의 유산에 몸 던져
“전통 살린 후일담 만들어 장면의 폭 넓힐 것”
아버지와 함께 양주별산대놀이 보존회를 처음 찾은 열 네 살의 남학생의 눈에서 초롱초롱 빛이 났다. 연구생들의 화려한 의상과 장구·피리 등 삼현육각의 울림, 전승교육사의 열정적인 가르침이 그의 마음을 울렸다. 소녀시대와 티아라, 빅뱅 등등 한국 가요계의 아이돌 그룹이 첨단과 유행을 이끌며 10대들의 마음을 흠뻑 적실 때, 그는 오롯이 이 과거의 놀이에, 예술에 매료됐다.
학교 수업시간에도 온통 탈춤 생각뿐이었다. 동아리 역시 양주별산대놀이를 택했고 열일곱의 나이에 전수자를 거쳐 스무 살에 국가무형유산 양주별산대놀이 이수자가 됐다. 현재 26명의 양주별산대놀이 이수자 중 막내인 윤동준씨(27)의 이야기다.
설 명절을 앞두고 양주시 부흥로의 양주별산대놀이전수회관에서 만난 윤씨는 영하의 날씨에도 야외에서 탈을 쓰고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하루하루, 매일매일 윤씨는 자신의 기량을 닦고 익히고자 과거의 유산에 자신의 몸을 던진다. 그는 “‘양주별산대놀이’ 전승을 오래 전부터 ‘운명’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어린 나이에 양주별산대놀이를 하겠다고 하니 아버지께서 ‘정말 하고 싶냐’고 여러 번 되물으셨어요. 대답하는 순간마다 내 눈이 그렇게 반짝였다고 하시더군요. 슬럼프도 있었지만 꾸준히 양주별산대놀이를 하는 것 보면 ‘천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싫든 좋든 이제 이것밖에 할 수가 없겠구나’ 하는 운명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양주별산대놀이는 춤과 무언극, 덩담과 익살이 어우러진 민중놀이로 250여년 전부터 양주에 정착돼 전승되다 1964년 국가무형유산 제2호로 지정됐다. 양주는 현재 서울지역의 본산대가 소멸된 상태에서 유일하게 본산대패의 탈놀이를 정착시킨 곳이다.
양주별산대놀이는 춤사위가 부드럽고 우아하면서도 손목과 고개를 까딱까딱하며 모든 춤사위를 깔끔하고 산뜻하게 처리한다. 특히 각 과장과 배역이 세분화돼 있고, ‘중(승려)’ 관련 과장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윤씨 역시 주전공으로는 ‘옴중’을, 부전공으로는 ‘말뚝이’를 선택해 이수자 시험을 통과했다. 전체 8과장8경으로 이뤄진 양주별산대놀이는 1과장부터 8과장까지 각각 다른 이야기 구조를 가진다. 윤씨가 주로 맡는 ‘옴중’ 역은 전 과장에서 절반 이상을 출연하고, 독무를 하는 장면도 있어 까다롭게 여겨진다. 더욱이 자세를 낮게 해 무거우면서도 강력하게 흩뿌리는 ‘용틀임’ 등의 춤을 추는 ‘옴중’은 하루 이틀의 연습으로 해낼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윤씨는 “허리를 숙이고 다리로 버티면서 호흡을 타는 게 정말 힘들다. 자세뿐 아니라 진중하고 엄숙한 감정을 내기 위해 어릴 때부터 노력을 많이 했다”며 “6시간 공연을 끝내고 나면 기진맥진하지만 ‘잘 봤다. 어린 친구들이 있어 다행이다. 든든하다’는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을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현재 양주별산대놀이를 배우고 있는 이들은 연구생 3명을 포함해 6명이 전부다. 전수자는 아직 없다. 전통을 이어가는 윤씨와 같은 청년들의 참여가 중요한 이유다.
윤씨의 꿈은 양주별산대놀이 한 과장의 후일담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취발이가 버리고 간 아기 마당이의 미래’를 그려보는 식이다. 전통을 살리되 후일담을 만들어 장면의 폭을 넓히겠다는 당찬 목표다. 이와 함께 윤씨는 30여개의 배역을 모두 배워 전승교육사, 나아가 보유자가 되길 꿈꾼다.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양주별산대놀이’를 하려는 청년들이 적어지는 게 걱정”이라며 “양주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자칭 ‘전통지킴이’다. 더 열심히 기량을 갈고 닦아 ‘양주별산대놀이’가 지금 시대의 많은 이들에게 더욱 알려져 인기를 얻고 보존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매력에 한 번 빠지면, 현재에도 너무 재밌고 의미있는 문화예술이란 걸 알게 되실 거예요. 제가 택한 길을 묵묵히 걸으며 이러한 양주별산대놀이의 매력을 많은 분들께 알리도록 온 힘을 쏟겠습니다.”
옴중 탈을 쓴 윤씨의 춤이 다시 한 번 날아올랐다.
김보람 기자 kbr13@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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