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에 이렇게 손님 적은 것 처음” “TK민심은 하나? 최근엔 의견 다양”[영남 대표시장 가보니]
한시간째 과일만 장바구니에…“비싸서 엄두 안나”
“대구가 보수색 짙지만 윤 대통령 잘못 지적 나와”
“명태 한 마리만 포로 떠 주이소.”
26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의 한 수산물 가판 앞에서 딸과 함께 온 70대가 상인에게 말을 건넸다. 상인 김희분씨(82)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이스박스에서 큼지막한 동태를 꺼냈다.
“1만원”이라는 김씨의 말에 손님은 호주머니에서 꼬깃하게 접은 지폐를 꺼내며 “작년보다 올랐네”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가판에는 제수용으로 쓰는 조기와 돔베기를 비롯해 가자미, 오징어 등 생선이 널려 있었지만 찾는 이는 드물었다.
서문시장에서 50여년 동안 생선을 팔았다는 김씨는 “설 연휴에 이 정도로 손님이 적은 건 처음이다. 예년의 절반 만큼의 매상도 올리지 못했다”면서 “경기가 안 좋아도 너무 안 좋다. 이래서는 몇 년 버티지 못하고 장사를 접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구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에는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맞아 많은 시민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지만 고물가와 정국 불안정 등의 영향으로 호주머니는 좀처럼 열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날 설 차례상의 필수 품목인 건어물 상가 쪽 분위기도 비슷했다.
2대에 걸쳐 100년 가까이 건어물을 팔고 있다는 정정화씨(67)는 “도매가가 많이 올랐지만 우리(상인) 입장에서는 비싸게 받지를 못한다. 손님들은 저렴한 가격을 기대하고 전통시장을 찾기 때문”이라면서 “적게 남긴다는 생각에 가격을 조금만 올렸지만 찾는 손님 자체가 너무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해를 거듭할수록 제사와 차례를 안 지내는 분위기가 퍼진 탓도 있는 것 같다. 설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아내,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온 서모씨(42)의 장바구니는 거의 비어 있었다. 서씨 가족은 시장에 온 지 1시간째였지만 과일만 구매한 상태였다.
서씨는 “확실시 (전통시장이)대형마트보다는 물건 값이 싼 것 같은데, 이 곳도 와닿을 정도로 저렴하지는 않은 것 같다.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다”면서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 장 보기가 무섭다는 말이 절로 생각난다”고 말했다.
지자체 차원의 이렇다할 대책이 없어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구시는 올해 지역화폐인 ‘대구로페이’ 관련 예산을 배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비해 상당 수 다른 지자체는 내수 경기 침체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지역화폐 발행 한도와 할인율을 일시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대구참여연대는 지난 20일 성명을 내고 “대구시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민생대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한편 서문시장은 ‘보수 텃밭’인 TK지역에서 정치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민심의 바로미터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도 2022년 당선인 신분으로 이 곳을 찾는 등 여·야 인사의 발길이 잦았다. 다만 12·3 비상계엄 이후 윤 대통령의 사진과 서명이 사라지는 등 여론이 흔들리는 모습이 포착된다.
박종호 서문시장 상가연합회장은 “온누리상품권 환급 행사 등 이벤트 때문에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지만, 전반적인 경기는 확실히 좋지 않은 것 같다. 매출이 예전같지 않다는 상인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흔히 대구가 보수색이 짙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근에는 ‘한 가지 의견’만 나오는 건 아닌 것 같다”면서 “(윤 대통령이)잘못한 건 잘못했다, 김(건희) 여사가 잘못했다, 특검을 받았으면 이런 사태가 없지 않았겠나 등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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