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꼬마’…힘든 애니메이션 왜 또 하냐면요

누적 관객수 220만명. 2011년 7월 개봉한 ‘마당을 나온 암탉’은 한국 애니메이션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 황선미 작가의 베스트셀러 동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탄탄한 스토리에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들의 활기와 큰 스크린을 십분 활용한 시각적 쾌감을 더해 호평받았다.
14년이 지난 22일 ‘마당을 나온 암탉’이 4케이(K)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했다. 14년 전 흥행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았다. 그만큼 이 작품이 독보적이라는 의미인 동시에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제작 당시 너무 고생해서 다시는 애니메이션을 안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2021년 신인 홍준표 감독과 ‘태일이’를 내놨고, 지금은 홍 감독과 상업 장편 애니메이션 ‘꼬마’를 만드는 중이다. 영상 강국 한국이 유일하게 뒤처진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지치지 않고 도전하는 두 사람을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14년이 흘렀지만 캐릭터의 입체성이나 메시지가 낡지 않아서 지금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라 안심했습니다.” 리마스터링 작업으로 세월의 더께를 닦아낸 ‘마당을 나온 암탉’을 다시 본 심 대표의 소감이다. 이번 재개봉은 에이아이(AI) 기술을 활용해 콘텐츠 작업을 하는 기술 업체 ‘인쇼츠’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에이아이 등 기술 혁신과 함께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홍 감독 역시 ‘태일이’에서 ‘꼬마’까지 몇년 새 기술은 애니메이션 강국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이제는 혼자서도 애니메이션을 뚝딱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모두 발전했습니다. 인적 역량도 기술적으로 농후해졌어요. 덕분에 ‘태일이’ 때 시행착오를 줄이면서 ‘꼬마’는 좀 더 물 흐르듯 원만하게 작업하고 있어요.”
전세계를 지배하는 할리우드나 일본 애니메이션과의 기술 격차가 거의 사라진 지금 중요한 건 기획과 시나리오라고 둘은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실사 영화와 드라마 강국인 한국에서 왜 유독 애니메이션만 안 되는 걸까?

‘마당을 나온 암탉’ 제작 때 “계속 거절당하며 투자자를 구하느라 진을 뺐”던 심 대표는 “성공 사례가 드문데다, 시나리오와 캐스팅만으로 투자가 결정되는 실사 영화와 달리 애니메이션은 몇분짜리 프레젠테이션 영상이 있어야 하는데, 이 작업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든다”고 말했다. 스토리뿐 아니라, 캐릭터 시각화 개발에 돈과 시간이 많이 투여되는데, 초기 비용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에선 연관 기업들이 제작위원회를 만들어 묵직한 쌈짓돈을 쥐고 될 만한 프로젝트를 찾는다. 한국에선 성공 경험이 적다 보니 애니메이션은 펀드 조성도 잘 안된다.
‘꼬마’ 역시 크라우드펀딩까지 하면서 제작비 마련을 위해 분투 중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극장 애니메이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명감, 그리고 가능성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성장이 침체된 영화 시장에서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는 게 애니메이션이다. 오티티(OTT)까지 포함하면 애니메이션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향후 5년간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해부터 넷플릭스가 일본 애니메이션 서비스를 대폭 늘린 이유다. 한국 역시 지난해 티브이(TV) 인기 애니메이션의 지식재산권(IP)을 확장시킨 극장 애니메이션 ‘사랑의 하츄핑’이 100만 관객을 넘기는 의미 있는 성과를 냈고, 베스트셀러 소설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퇴마록’이 2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매년 200~300편의 한국 영화가 개봉하는데 애니메이션은 10편이 안 돼요. 영상산업의 세계적인 흐름에서 애니메이션 비중은 점점 커지는데 시도가 너무 없어요. 수익성 못지않게 중요한 게 극장 장편 애니메이션의 상징성이거든요. 픽사나 스튜디오 지브리가 뛰어난 극장 장편 애니메이션을 내놓으며 형성된 영상 강국의 가치가 시리즈 애니메이션의 발전과 수익으로 이어지죠.” 심 대표의 말에 홍 감독이 덧붙였다. “한국 웹툰 아이피 파워는 세계적인데, 이걸 먼저 알아본 게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예요. 한국 웹툰을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있는 작품들이 많은데, 우리 제작 역량과 연결된다면 머잖아 한국도 애니메이션 강국이 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웹툰은 아니지만 일본 도에이애니메이션이 제작해 최근 제97회 아카데미시상식 단편 애니메이션 최종 후보에 오른 `알사탕'의 그림책 원작자 백희나 작가는 국내에서 애니메이션 제작이 이뤄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잠재력이 아직 껍질을 깨지 못하고 있는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줄탁동시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공적 지원이 필수라는 데 둘은 공감했다. 홍 감독은 ‘태일이’로 2022년 캐나다 판타지아국제영화제에 초청됐을 때 방문했던 캐나다국립영화위원회(NFB) 스튜디오에서 “돈이 안 되니까 정부가 지원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게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상업적 성공의 결실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결실을 위한 싹을 키우기 위해 물을 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는 의미다. 최근 할리우드와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중국이 애니메이션 강국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데도 정부의 막강한 지원이 작용했다.

명필름이 제작 중인 ‘꼬마’는 2010년 반달가슴곰의 서울대공원 탈출 사건을 모티브 삼은 창작 애니메이션이다. 귀여운 꼬마 곰을 주인공으로 해 아이와 어른까지 아우르는 가족 애니메이션으로 준비 중이다. 홍 감독은 “처음에 귀여운 캐릭터를 개발했더니 서사 연기에 부족함이 느껴졌다”며 “표정이 풍부한 연기파 아역배우 느낌으로 캐릭터를 잡아 완성했다”고 말했다. 꼬마 곰이 동물원을 탈출한 뒤 벌이는 모험을 통해 동물과 인간의 행복한 공존에 대한 주제의식을 담은 ‘꼬마’에는 “서울 어딘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잘 몰랐던 많은 동물이 등장하고, 도심 골목길부터 숲속까지 더 많은 풍경이 들어갈” 예정이다.
두 사람이 10년 가까이 ‘꼬마’에 매달린 데는 사실 사명감이나 시장 가능성을 넘어 “애니메이션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 심 대표는 ‘토이스토리’ 3편을 극장에서만 10번 넘게 봤다. 홍 감독은 2004년 픽사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 개봉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다렸던 작품이라 개봉일 오전에 극장에 갔더니 전부 아이들인 거예요.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아, 괜히 왔나’ 싶었는데 시작하자마자 순식간에 조용해졌죠. ‘이게 애니메이션의 힘이구나’ 하며 매료된 순간이었어요. 힘들 때면 그때를 떠올리며 추스르고 다시 작업에 몰두합니다.” ‘꼬마’는 2026년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 ‘꼬마’는 열악한 투자 환경에서 제작비 마련을 위해 후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후원자들은 금액에 따라 초대권 선물과 함께 디지털 또는 극장 상영본에 이름이 새겨진다. https://bit.ly/ggoma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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