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 제철’ 겨울 이적시장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
겨울이다. 만둣집의 뜨거운 김이 향기로워지고 방어회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동절기 휴업 중인 K리그의 겨울 별미는 이적 시장이다. ‘정통한 소식통’이 활개치고, 정보 한 토막이 떠들썩한 논란을 낳는다. 잠시 뇌를 뺀 채 ‘카더라 통신’을 즐길 수도 있지만, 가짜뉴스에 현혹되어 감정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겨울철 심신 건강을 위한 몇 가지 이적 시장 상식을 소개한다.
이적 시장의 공식 명칭은 ‘선수 등록 기간’이다. 프로축구 선수는 해당 국가의 축구협회 및 리그 그리고 국제축구연맹(FIFA)에 등록을 마쳐야만 공식전에 출전할 수 있다. 선수 등록은 정해진 기간에만 가능하며 동시에 1개 구단 이상에 등록될 수 없다. 최근 강원 FC의 양민혁은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했다. 강원 FC가 먼저 등록을 말소해야 토트넘이 양민혁을 신규 등록할 수 있다. 강원 FC는 그 대가로 토트넘으로부터 현금 약 60억원을 받았다. 이게 흔히 말하는 이적료(transfer fee)다.
이적 시장의 주연은 구단, 선수 그리고 중간자 역할을 하는 에이전트다. 축구단과 선수는 서로 직거래하지 않는다. 구단이 모든 매물(선수)의 현황을 일일이 파악하기가 힘들어서 에이전트를 경유한다. 업무 특성상 에이전트는 ‘암약’할 수밖에 없다. 팬들 사이에서는 간혹 부정적으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에이전트는 축구 산업의 기본 구성원이다. 2023년부터 국제축구연맹(FIFA)의 에이전트 시험을 통과해야만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한국스포츠에이전트협회 이동준 회장(디제이매니지먼트 대표)은 “구단과 선수, 에이전트가 삼각 편대로 건강하게 돌아가야 한다. 유통업자로서 제 몫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이론적으로 이적 협상은 간단하다. 공급자(원 구단)와 소비자(새 구단)가 상품(선수)을 거래한다. 두 구단(사는 쪽, 파는 쪽)과 선수 측의 뜻이 맞으면 이적 업무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에이전트 외에도 중간에 끼는 이해당사자가 많기 때문이다. 선수 가족이나 친구, 옆집 아저씨, 사돈의 팔촌, 구단주의 절친 등 별별 플레이어들이 사방팔방에서 출현한다. A 에이전트는 “한국인 선수를 중동에 이적시킨 적이 있다. 현지의 한국인 교포, 구단 고위직의 친구인 무역업자, 해당 구단의 공식 에이전트, 선수 측 대리인, 그 대리인과 연계된 에이전트가 모두 관여되었다”라고 말한다. 중간 과정이 복잡해질수록 진행이 느리고 수수료가 증가한다. 브라질 선수는 관련된 ‘경제권자’가 여러 명일 때가 허다해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해진 룰 없이 관행과 인맥에 의존하는 점도 이적 시장을 복잡하게 하는 요인이다. 공정가격 같은 개념은 없다. 같은 상품(선수)이라도 판매 조건이나 시점에 따라 수시로 바뀐다. 에이전트 수수료도 제각각이다. 그래서 반칙을 범하는 사람이 많은데 걸려도 딱히 벌을 주는 주체가 없다. B 에이전트는 “이상한 사람이 정말 많다”라고 말한다. “무작정 구단을 찾아가 ‘C 선수를 데려올 수 있다’고 말한다. 구단의 위임장을 받으면 그제야 생면부지인 C 선수 측을 접촉하기 시작하는 식이다. 선수에겐 ‘내가 구단 책임자와 막역한 사이’라며 또 허풍을 떤다.” 선수 쪽에서 위임장을 남발할 때도 있다. 이러면 여러 명이 구단을 찾아와 ‘보시다시피 C는 내 선수’라며 협상권을 주장하는 일이 발생한다. 구단과 선수, 에이전트는 별별 브로커들의 진위를 정확히 판별할 줄 알아야 한다.
‘이적 확정’ 단독 기사는 구단의 선물?
이적 관련 단독 보도는 대부분 ‘언플(언론 플레이)’의 산물이다. 직접 이해당사자들은 협상이 완료될 때까지 해당 건을 절대 발설하지 않는다. 그런데 경쟁에서 밀린 경쟁자(에이전트 또는 브로커)가 문제다. 이들은 어떻게든 거래에 끼어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혹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식이다. 자신과 무관한 거래 정보를 제공해 언론의 환심을 사는 ‘언플’도 있다. 순도 100% 가짜뉴스도 많다. D 에이전트는 “뜬금없는 이적설이 퍼져서 선수 가족끼리 ‘이거 알아?’라며 서로 확인한 적도 있다”라고 말한다. ‘이적 확정’ 단독 기사는 대부분 구단 측의 선물이다. 모든 협상이 완료된 시점에서 구단 고위층이 공식 발표로부터 하루 또는 몇 시간 전에 평소 친한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이때 누설자를 특정하기 어렵게 취재원은 ‘정통한 소식통’이 된다.
유럽과의 차이를 아는 것도 국내 이적 시장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또 다른 팁이다. 세계 최대 축구 시장인 유럽은 이적에 관한 모든 분야가 규모와 깊이를 뽐낸다. 이적 관련 보도가 디테일하고 금액 정보도 정확한 편이다. 시장이 작고 경직된 K리그의 현실은 좀 다르다. C 에이전트는 “팬들이 K리그의 이적료나 선수 연봉을 실제보다 크게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는 선수 영입 주도권의 차이도 지적한다. “테크니컬 디렉터가 활성화된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감독이 선수 영입의 권한과 책임을 쥔다. 특정 선수를 콕 집어서 영입에 나서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금액이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테크니컬 디렉터와 단장이 영입 업무를 지원하는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감독이 혼자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도 혼자 지는 분위기다.”
이적 시장에서 정답은 없다. 수많은 구단과 그보다 훨씬 많은 선수가 동시다발적으로 흥정하는 만큼 거래 성사를 예상하기가 매우 어렵다. 해당 건의 직접 관련자들은 진실을 좀처럼 말하지 않거나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포장하기 때문에 ‘썰’에 대한 팩트체크 자체가 쉽지 않다. 욕망과 절박함, 참과 거짓이 시시각각 변하는 이적설의 계절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이번 겨울도 이적 난리 통을 실컷 즐기시길 바란다.
홍재민 (축구 전문기자·레드재민tv 운영)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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