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look] 북 비핵화 대신 통제, 트럼프 ‘스몰딜’ 신호

2025. 1. 25.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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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2기 북핵 전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미국의 새 행정부로부터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만만치 않은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외교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과 다시 연락을 취해볼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당시 북·미 정상회담 성과를 언급하면서 “나는 그(김정은)와 잘 지냈고 그 문제(북핵)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특히 종교적 열정이 강한 이란과는 협상이 어렵다고 언급한 뒤, 김정은을 두고 “그는 종교적 광신도가 아니다. 똑똑한 남자(smart guy)”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일 취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했다. 국제사회가 통상적으로 인정하는 ‘핵보유국(Nuclear weapon states)’과는 조금 다른 표현이었지만, 집권 2기에 들어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이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확산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22일 열린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안보협의체) 외교장관 회의에서 발표된 공동 성명에는 기존에 명시됐던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빠졌다.


미, 제재론 북핵 고도화 못 막아…핵 보유 인정하고 담판할 듯
이런 변화의 조짐은 앞서도 있었다. 국방장관 지명자인 피트 헤그세스는 지난 14일, 그리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지명자는 지난 15일 상원 인사청문회 답변 과정에서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언급하거나, 혹은 (지금까지의) 대북 제재는 북한 핵 개발을 막는 데 실패했다고 발언했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초 이후 지금까지 30년 넘게 유지된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전략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한 마디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현존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깨지 않으면서도, 북한을 향해 비핵화를 전제하지 않는 협상을 하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풀이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장담한 만큼, 많은 전문가들은는 집권 초기 외교·안보 정책 리소스가 러시아 문제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됐다.

동시에 과거 집권 1기 시절의 ‘아브라함 협정’으로 상징되는 중동 질서의 재편 시도를 기억하고 있기에, 트럼프 집권 2기에서도 현 중동 사태 해결이 외교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이게 될 것으로 판단했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최근의 소식을 종합해 보면 미국의 새 행정부는 전문가들의 당초 예상보다는 이른 시점에 북한 문제를 일단락시키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최근 행태를 보건대, 완전한 비핵화는 어렵기에 북한 핵을 미국 주도의 일정한 통제 하에 두는 ‘스몰 딜’로 방향 설정이 이뤄졌을 수 있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우선, 취임을 전후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미 국민의 지지가 선거 때보다 더 높아진 상황에서 러시아와 이스라엘은 물론 북한이라는 외교적 난제를 모두 포괄적으로 다루고 싶은 자신감이 생겼을 수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외교를 거래로 이해하고 또한 다자외교 틀보다는 양자 담판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에서 북한과의 거래가 생각보다 비싸지 않다는 생각을 했을 수 있다.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의 핵 무력은 더욱 고도화되었기에 미국이 지불해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타깃이 완전한 비핵화에서 부분적인 ‘스몰 딜’(핵 통제) 담판으로 옮겨간다면, 미국은 러시아 문제와 중동 사태를 포함해 큰 지불 없이 한반도 문제까지 해결했다는 명예를 챙길 수 있다고 내다봤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시점에서 북한의 생각은 무엇일까?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이 북한에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은 했겠지만, 취임식 전후 전해지는 워싱턴 발 소식에 북한 역시 외교적 계산에 매우 분주할 것이다. 특히 ‘스몰 딜’에서 ‘스몰’의 실체가 무엇일지는 향후 협상을 통해 가시화되겠지만, 어쨌든 일종의 핵보유국 지위를 부여받게 되었으니 김정은의 입장에선 훗날 고인이 됐을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충분히 면(面)이 설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북한이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적대적 두 개 국가론’의 핵심 배경에는 2020년 12월에 제정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으로 상징되는 북한 내 한국 문화의 확산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을 상대로 외교적 타결을 이루고, 그 결과 ‘글로벌 사우스’ 진영이든 혹은 그보다 더 넓은 외교 공간이든 북한이 국제사회의 뚜렷한 일원으로 들어오게 될 때, 북한 사회가 미국과 국제사회의 영향을 견뎌낼 수 있을 지 문제다. 지금까지 핵 개발은 북한 사회를 일종의 상시 위기 체제로 만들어,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김정은이라는 유일 지도체제의 유지만이 대안이라는 최면을 가능케 했다. 즉, ‘지도자 동지’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미국에 맞서지 못한다는 주민들의 공감대가 있었던 것이다. 미국과의 담판 이후 ‘위기가 걷어진’ 북한 사회가 지금처럼 유지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적극적인 의지가 북·미 간 의미 있는 외교 담판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요인이 있다. 바로 2018년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두 정상이 공동 발표한 ‘싱가포르 공동선언문’이다. 4개 항을 통해 새로운 관계, 한반도 평화체제, 북한 비핵화, 미군 유해 발굴에 대한 분명한 합의가 있었고, 만약 다시 접촉이 시작된다면 그 출발점은 싱가포르 선언문이 될 것이 분명하다. ‘스몰 딜’을 추가 합의처럼 덧붙이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이제 문제의 핵심은 우리의 입장과 역량에 있다. 최소 50배 이상 차이가 나는 압도적인 경제력과 비교조차 어려운 국제적 위상을 바탕으로 한국은 거시적이지만 매우 정교한 전략적 그림을 그리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북한 변화의 결정적인 모멘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시가 아까운 상황에서 국내 정치적 혼돈으로 인해 혹시라도 미국과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앞선다. 결국 70년이 넘는 한·미 동맹의 공고한 관성을 믿으며, 인적 및 물적 자원을 포괄하여 한·미 관계에 투입되는 우리의 다양한 리소스의 개별적인 전문성을 믿어야 할 때이다.

◆박인휘 교수=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고,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스크랜튼대학장을 맡고 있다. 한국국제정치학회장, 청와대 안보실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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