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힐링영화가 많아졌다고? 정상적 사회 바라는 대중의 요청
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마이클 만 감독의 ‘페라리’.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외면하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엔초 페라리의 여정이 울림을 준다. [사진 CJ ENM]](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3/12/joongangsunday/20250312084447876bqnb.jpg)
![올해의 홀로코스트 영화 ‘리얼 페인’. 홀로코스트의 어두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해 비극을 더욱 명징하게 드러낸다. [사진 각 제작사]](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3/12/joongangsunday/20250312084449575dobe.jpg)
2월12일에 개봉될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브루탈리즘 건축 양식(극히 단조롭고 간결한 디자인의 노출 콘크리트 양식. 안도 다다오 건축물이 대표적이다.)을 추구했던 헝가리계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 토스(에이드리안 브로디)의 이야기이다. 라즐로 토스는 가상의 인물이다. 이주민의 아메리칸 드림을 그리는 내용인 만큼 인종차별이나 계층계급의 문제가 꽤나 심각하게 전개될 것 같지만 ‘브루탈리스트’는 그보다 자신의 예술관을 엄격하게 실현해 나가고 자아를 성취하는 인간형, 그 완전주의에 대해 치중한다. 이런 시기와 이런 시대, 이런 세상에서 각각의 개인들은 어떻게 자신의 일상을 유지해 나갈 것인가. 모두 거대한 격류에 휩싸이기만 할 것인가. 그 가운데에서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완전체에 가깝게 해 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 같은 질문을 담고 있는 내용의 작품이 바로 ‘브루탈리스트’이다.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 곧 감독상을 받았던 작품이다. 얼마 전 열린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남우주연, 남녀조연, 각본상 등 주요 부문 후보로 모두 올랐었다. ‘브루탈리스트’는 사람들이 지금 시대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 일단을 피력하고 있는 작품이다.
![올해 골든 글로브 주요부문 후보에 모두 올랐던 ‘브루탈리스트’. [사진 각 제작사]](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3/12/joongangsunday/20250312084451262lkpl.jpg)
최대 3억 달러(4500억원)까지의 제작비가 들어가는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그만큼의 전세계 마케팅비가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돈을 써서 ‘쫄딱’ 망한 영화가 바로 워너 브라더스의 ‘조커:폴리아되’였다. 이 ‘조커2’는 2억 달러를 들였지만 1억5000만 달러를 날렸다. 이는 마이클 치미노 감독이 1980년에 만든 ‘천국의 문’의 기록에 달하는 것이었다. 치미노는 이 영화를 500분짜리의 괴작(怪作)으로 만들어 당시 돈으로 4400만 달러를 썼지만 흥행 수익은 350만 달러에 불과했다. ‘조커:폴리아 되’의 1억5000만 달러 적자와 같은 수준이었다. ‘천국의 문’을 제작했던 유나이티드 아티스(UA)는 MGM에 매각됐고 이후 MGM 역시 유명무실한 영화사가 되고 말았다. 영화 한편으로 산업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음을 경험했던 할리우드는 40여 년만에 그 지옥이 ‘조커:폴리아 되’로 재현되는 것을 목도했다. 할리우드가 이후 왜 급격하게 작은 규모의 영화들, 그러나 상대적으로는 부가가치가 높은 휴먼 드라마에 치중하는가를 짐작할 만 하다.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어떻게 섞여 살아가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사진 각 제작사]](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3/12/joongangsunday/20250312084453012uoaq.jpg)
주인공 빌 펄롱(킬리언 머피)은 한 수녀원(막달라 마리아 수녀원)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과 학대 사건에 대해 ‘사소한 일’로 치부하지 않고 개입하되, 자신의 용기와 희생을 통해서 이루려 한다. 그 정중동의 애티튜드가 국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같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맷 데이먼과 벤 에플릭이 2022년에 만든 영화사 ‘아티스트 이쿼티(Artist Equity)’의 작품이다. 이 영화사는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 ‘플랜B’와 함께 현재 할리우드에서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드는 중요한 영화사로 주목받고 있다. ‘플랜B’는 윤여정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했던 ‘미나리’의 제작사다. 할리우드의 자본과 시스템 만큼이나 배우 각각의 의지, 그 개인기 역시 중요함을 실증하는 사례들이다.
와카타케 치사코 원작의 소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일본에서 진작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모리의 저녁’을 만들었던 오키타 슈이치 감독은 2021년 7월에 아오이 유우를 내세워 동명의 영화를 발표했다. 이 영화는 각자도생이 세계에서 가장 극대화 돼 있는 일본사회에서 각각의 개인들이, 극단적으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섞여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려 한다. 불길하고 암울한, 그저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세상살이에서 자아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를 역설한다.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기 위해 조심하되 상대의 자존심도 배려하는 것, 조용하지만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리하여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가는 길을 택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영화다. 3년이 넘은 작품이지만 이상하게도 요즘의 한국사회에 강한 울림을 준다.
국내 흥행이 썩 잘되고 있지는 않지만 마이클 만 감독이 만든 작가주의적 레이싱 영화 ‘페라리’도 그런 측면에서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1957년의 이탈리아가 배경이고 전쟁과 파시즘을 겪었으며 게다가 아들까지 잃은 엔초 페라리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은 흐름이고, 결코 그것을 외면하려 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자신대로 혼자서 갈 수 있는 길을 묵묵히 가려고 한다. 페라리는 말한다. “나는 차를 팔기 위해 레이싱을 하는 것이 아니다. 레이싱을 하기 위해 차를 파는 것이다”라고.
지금 한국 극장가에 따뜻한 힐링영화, 차분한 휴먼 드라마가 많아지고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이제 그만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대중의 무언의 요청이자 압력일 수 있다. 늘 극장은 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곳이다. 그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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