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앓음이라는 것 [1인칭 책읽기 : 이제, 저 멀리 우리가 있는 것처럼]
한강의 노벨문학상과 계엄령
수 많은 개인이 가진 1인칭과
국회 앞에 모였던 1인칭들
![시인 황종권, 문학평론가 문종필, 변방의 작가 정훈교, 여행작가 변종모, 문학전문기자 이민우(왼쪽부터).[사진=더스쿠프 Lab. 리터러시]](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1/24/thescoop1/20250124195506125jtui.jpg)
문학을 하는 사람에게는 일종의 글쓰기 앓음이 있다. 쉽게 말하면 글을 못 쓰면 몸이 아픈 병이 있다는 것이다. 무속신앙에 있는 신내림과 비슷한 것인데 생업을 위해 취업전선에서 일을 하다가도 결국 작가가 되지 못하면 수년에 걸쳐서 빙빙 돌아 작가라는 길을 찾아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가 된다는 것은 갈망의 형태를 띤 숙명이다.
정훈교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10년 전이었다. 대구에서 '시인보호구역'이라는 서점을 열고 문학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알게 됐다. 당시만 해도 독립서점이 익숙한 시절도 아닐뿐더러 책 판매가 목표가 아니라 문화운동이 목표인 공간은 익숙하지 않았다. 지역에서 문학을 한다는 것에 걱정이 앞섰다.
그 공간은 몇번이나 이사를 거쳤다. 그사이에 '시인보호구역'이라는 공간을 모르는 문인들이 없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지만 대구에서 문화운동을 했기에 직접 시인보호구역을 가본 이는 많지 않았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귀중한 장소였지만 시민들에게 시인 초청행사가 자리를 잡는 건 쉽지 않았다.
문화 복합공간, 수많은 행사, 시인초청 강연회 등 수많은 시간이 거쳐가다 지난해 결국 시인보호구역의 공간이 정리됐다. 사람들의 손으로 시인보호구역을 부활시키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쉽지는 않았다.
정훈교 시인의 앓이를 들었다는 시인들의 이야기를 종종 종로 길바닥에서 듣긴 했지만 마치 이국에서 온 편지처럼 그것이 어떤 힘이 되진 못했다. 그러다 책 한 권이 나에게 왔다. 정훈교 시인의 디카시집 「이제, 저 멀리 우리가 있는 것처럼」이었다. 디카시란 '디지털 카메라 시詩'의 줄임말로, 사진과 시를 결합한 시의 한 장르다. 정훈교 시인이 그간 보낸 시간이 사진과 시에 담겨 돌아왔다.
출간 낭독회를 한다는 이야기에 서울 흑석동의 청맥살롱에 모였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의 시인들과 에세이 작가들이 와 있었다. 다들 정훈교 시인의 시집을 읽고 낭독할 시를 정해왔다. 그것은 정훈교 시인의 삶의 파편과 같은 것이라서 각자 자신이 바라보는 정훈교 시인이 담겨 있었다.

'당신의 골목에서'라는 시에서 시인은 말한다 "당신의 골목에서/낡은 것들은 죄다 이름이 있다고 했는데/당신과 내가 마주했던 낡은 시간은/죄다 어디로 갔는지/흐린, 날/우두커니 섰는" 시들은 일종의 상처였다. 낭독회에 온 시인들은 정훈교 시를 더듬더듬 만지듯 낭독을 해나갔다.
'쓰다만, 나의 문장들'이란 시에서 정훈교 시인은 이야기한다 "이 길을 가다 보면,/당신을 만날 수 있다고 했지/길 끝에/푸른 전설이 있고, 고백이 있고/미처 쓰지 못한 당신과 나의 문장들이 잠겨 있다고 했지/"
결국 10여년의 시간을 쌓고 쌓아 정훈교 시인의 시인보호구역은 한권의 시집이 됐다. '쓰다만, 나의 문장들'에서 노래하듯 대구에서 시작한 시인의 길은 결국 그가 시인으로서 결국 쓰고야 말았던 한 권의 책으로 돌아온 것이다. 글쓰기는 일종의 앓음이니 어쩌면 정훈교 시인이 대구에서 10여년간 앓은 것은 시집을 위한 시간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훈교 시인은 최근 제주도에 가서 활동 중이다. 이 책에는 이미 제주도에서 활동했던 그의 삶과 사진들이 담겨 있다.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제주도의 풍경이 정훈교 시인의 렌즈를 통해 새롭게 담긴다. 그곳에는 10여년간의 시인보호구역과 또 그곳을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과 인연들 그리고 추억들이 담겨 있다.
정훈교 시인의 시의 문구들은 "앓음"을 통해 나왔다기에는 곱다. 그래서 슬플 때가 있다. 갈망의 모습을 한 숙명. 한 시인의 삶이 여기 있다. 이 시집은 마침표보다는 쉼표에 가깝다. 정훈교 시인의 다음 길을 응원한다.
이민우 문학전문기자
문학플랫폼 뉴스페이퍼 대표
lmw@news-paper.com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