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태 기자의 책에 대한 책] "오늘 밤에는 어찌 된 일인지 전혀 쓸 수가 없다"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5. 1. 24.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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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게 직업인 사람들 중에 '마감'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나쓰메 소세키는 한 편지에서 '마감일을 미루자'면서 그 이유로 무려 신(神)을 들었다.

"14일이 마감일인데 14일은 안 되겠으니 17일로 하자. 그런데 17일이 하필 일요일이니까 18일로 하자"는 식이었다.

청탁받은 원고, 그러니까 쓰라는 글은 안 쓰고, 그 글은 못 쓴다면서 엉뚱하게 다른 글을 남긴 작가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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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못 지킨 작가 30인의 기상천외 '핑계'들

글 쓰는 게 직업인 사람들 중에 '마감'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 단어만 나오면 몸속 혈관이 수축되고, 좌측 상방 45도 허공에 눈길이 간다.

그런데 마감을 잘 지키면 오히려 희귀종으로 취급받는다. 작가의 글이 좀 늦어져도 출판사는 매섭게 독촉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 만드는 출판사가 언제일지 모르는 작가의 접신 혹은 예열을 마냥 기다릴 순 없는 법. 그래서 편집자들은 작가에게 공손하게, 그러나 독기를 품고 묻고 또 묻는다.

"독촉하려는 건 아니지만 원고는 언제쯤…."

이때 창작의 고통으로 눈물짓던 작가들은 곤경을 모면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핑계를 순식간에 '창작'해 눈앞의 편집자를 설득하려 하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편집자들이 작가 속내를 모를 리 없다.

'작가의 마감'은 일본 작가 30인이 남긴 원고 마감에 관한 글을 모은 책이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 했던가. 애써 핑계를 찾아냈지만 속내가 훤히 보이는 작가들의 글들을 마주하면,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쓰메 소세키는 한 편지에서 '마감일을 미루자'면서 그 이유로 무려 신(神)을 들었다. "14일이 마감일인데 14일은 안 되겠으니 17일로 하자. 그런데 17일이 하필 일요일이니까 18일로 하자"는 식이었다. 그는 이 편지에서 신을 찾는다. "서두르면 신이 용납하지 않아요."

일본 대하소설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는 핑계로 '나이'를 든다. 그는 신문기자에게 소설 연재를 부탁받으면서 온갖 호의는 다 누렸다고 한다. 그런데 거절해야 했던 것. 거절 이유로 그는 '나이 탓'을 했다.

"요사이 자꾸 모든 게 덧없게 느껴지고 현실이 절망스럽달까. 나이 탓이려니 했는데, 생각해보니 벌써 예순 살을 바라봐. 그러니 아내가 이 편지를 들고 가는 걸 부디 언짢게 생각지 말아 주시게."

청탁받은 원고, 그러니까 쓰라는 글은 안 쓰고, 그 글은 못 쓴다면서 엉뚱하게 다른 글을 남긴 작가들도 있다.

호조 다미오란 작가는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왜 쓰지 못하는가를 생각했다. 그때 그의 귀에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만둬, 변명하지 마." 글이 안 써진 덕분에 이 글을 후대에 남겼으니 그것도 나름의 성과이긴 하지만. 그는 이어서 쓴다. "그렇다. 이제껏 원고를 쓰지 못한 핑계를 늘어놓았을 뿐이다. 나도 알고 있다…."

큭큭대며 읽다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일의 고통을 고민하게 만드는 이 책은 만들어진 과정도 흥미롭다.

저자 안은미는 일본의 인터넷 무료 전자도서관인 아오조라문고에서 우리말로 하면 마감, 영어로는 데드라인(deadline)을 뜻하는 '시메키리(しめきり)'를 검색해 이 책을 냈다. 시메키리를 검색했더니 유명 저자들이 남긴 마감의 숙명에 관한 글이 쏟아졌다고 한다.

마감은 글을 쓰는 모든 이의 숙명적인 고통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언제나 유한하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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