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집었던 떡 내려놓고 구경만…'설 대목'인데, 전통시장 '울상'

송호영, 이다빈, 정인지 2025. 1. 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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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찾는 발길 '뚝'…"손님 줄어 힘들어"
차례상 비용 역대 최고…"물가 올라도 너무 올라"

설 명절 연휴를 앞둔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전통시장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송호영 기자

[더팩트ㅣ송호영·이다빈·정인지 기자] 설 연휴를 앞둔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전통시장은 한산했다. 물건을 고르던 손님들은 한두 개만 구매한 후 빠른 걸음으로 시장을 빠져나갔다. 그마저도 손님이 없는 가게 상인들은 앉아서 애꿎은 상품만 정리했다. 손님이 적어 텅 빈 골목으로 배달 오토바이가 빠르게 지나갔다.

이날 오후 2시 시장 내 가게 절반 이상에서는 손님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임대 표시가 붙은 채 비어 있는 가게도 있었다. 해조류를 팔던 60대 A 씨는 연신 "무슨 물건 찾으세요"라고 물었지만, 멈춰서는 손님은 없었다.

과일가게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던 30대 남성은 비싼 가격에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배 한 박스에 6만원, 레드향 한 박스에 3만5000원이라는 설명을 듣고 망설이던 남성은 결국 딸기와 곶감 1만 원씩만 구매했다.

과일가게 상인 50대 B 씨는 "경기가 안 좋아서 손님이 많이 줄어든 데다 과일값이 많이 올라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어 "15박스씩 취급하던 과일을 12박스, 10박스만 취급하고 있다"며 "배 같은 경우 한 박스에 6만원인데 이 가격이면 다른 선물을 한다는 분이 많은 상황"이라고 했다.

같은 시간 서울 은평구 대림시장은 설을 앞두고 식재료를 사러 나온 시민들로 복작거렸지만, 영등포전통시장과 마찬가지로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오른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가던 60대 여성은 수산물 도소매점 앞에 멈춰 새우와 동태포 등의 상태를 살피다가도 가격표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이내 자리를 떴다. "명절엔 물건이 아예 없을 겁니다. 수입으로도, 박스로 들어오는 것도 없어요"라는 상인의 호소에도 소용없었다. 떡국용 떡을 사려던 50대 부부도 1만원이라는 가격을 들은 뒤 "그냥 가자. 나중에 사자"며 발길을 돌렸다.

상인과 흥정하며 승강이를 벌이는 이들도 있었다. 바지락 1만원 어치를 구매한 60대 여성은 상인이 바구니에 담아 둔 바지락을 보고 "이건 5000원 어치 밖에 안된다"며 많이 달라고 졸랐다.

반찬가게를 운영 중인 박윤하(36) 씨는 "물가가 올라 손님들이 놀라기도 하고, 반찬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날마다 채소 가격이 달라져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인상해야 하는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며 "명절이라 손님들은 싸게 많이 구매하고 싶어 하지만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많이 드리고 싶어도 물가가 맞지 않아 아슬아슬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전통시장에서도 시민들의 지갑이 쉬이 열리지 않았다. /정인지 기자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전통시장에서도 시민들의 지갑이 쉬이 열리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50대 여성은 대파를 구매하기 위해 지갑에서 천원권 세 장을 꺼내 상인에게 건네면서 "맞죠?"라며 가격을 재차 확인했다.

빨간 고무 대야에 담긴 미꾸라지와 메기, 생굴 등을 바라보던 80대 여성은 1근에 8000원이라고 적힌 생굴을 집어들며 "아들과 며느리 오면 굴 떡국을 해주려고 한다. 1000원 깎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상인은 "언니 가져갈거야 안 가져갈거야. 빨리 얘기해. 그런 말 하지 말고"라며 말을 끊었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40대 상인은 "먹어봐야 맛을 알지. 이거 엄청 맛있어 언니"라며 귤 껍질을 까 적극적으로 시식을 권했다. 시민들이 힐끗 쳐다만 보고 발길을 멈추지 않자 상인은 귤 한 알을 더 집어들었다.

꽃무늬 점퍼에 체크무늬 팔토시, 빨간 앞치마를 착용한 문갑순(83) 씨는 "돌아보면 알지 않나. 사람이 적다. 시장 끝에서 가게를 하다가 가게가 잘 안 돼 결국 이렇게 거리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문 씨는 수레에 배추와 갓, 시금치를 올려놓고 시장 이곳 저곳을 이동하며 물건을 팔고 있었다.

문 씨는 "다른 상인들이 자기 점포 앞을 막는다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는 경우가 많다"며 "구박받을 걸 알면서도 치매에 안 걸리려고, 아들, 딸 용돈 주려고 이렇게 나온다"고 말했다.

가판대에 햇 고사리와 생강, 말린 홍어를 내놓고 판매하던 노민준(47) 씨도 "야채나 과일 물가가 특히 많이 올랐다"며 "고객 연령층도 60대 이상 나이 드신 분들만 시장을 찾아주신다"고 토로했다.

전문 가격조사기관인 한국물가정보가 지난 1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4인 가족 차례상 비용은 전통시장 약 30만2000원, 대형마트 약 40만9000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전통시장 28만1000원, 대형마트 약 38만원이 들었던 지난해에 이어 또 다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특히 과일과 농산물 가격이 상승했다. 지난 설에 비해 배는 3개 기준 1만3500원에서 100% 상승한 2만7000원에 달했고, 무 역시 1개당 2000원에서 4000원으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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