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기술전쟁 대비한 中 ‘애국 석학’ 불러들인다
“MIT(매사추세츠공대)로 떠났던 그가 칭화대로 돌아왔다.”
지난 21일 중국 명문 칭화대는 미국에서 15년간 활동했던 세계적 블록체인(정보를 중앙 서버가 아닌 모든 참여자의 네트워크에 분산 공유해 위·변조를 막는 기술) 전문가 첸징이 모교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지난해 칭화대 컴퓨터 과학·기술학과 교수에 임명된 첸징은 가상 화폐 거래가 금지된 중국(홍콩 제외)에서 보기 드문 블록체인 전문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을 이용해 달러를 지원하고, 이를 전략 자산처럼 축적하겠다는 뜻을 드러내자 중국 정부가 가상 화폐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 분야 최고 전문가를 모셔온 것으로 보인다.
첸징은 중국의 전형적인 ‘천재 소녀’ 루트를 밟았다. 2007년 칭화대 컴퓨터공학과 학사·석사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떠나 MIT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지도 교수가 컴퓨터 과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 수상자 실비오 미칼리 교수였다. 이후 뉴욕 스토니브룩대 조교수로 재직하며 블록체인의 기술적 한계로 알려진 보안·확장성·분산화의 트릴레마(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최적화할 수 없다는 삼중 딜레마)에 대한 해법을 개발했다. 2016년에는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뛰어난 젊은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 지도교수였던 미칼리가 설립한 가상 화폐 발행사 알고랜드(Algorand)에서 수석 과학자로 일하며 가상 화폐 거래의 효율성과 보안 수준을 높이는 연구를 주도했다.
첸징은 향후 중국 정부의 비공식 고문을 맡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가상 화폐 전략 대응을 조언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경기 순환 주기의 예측 정확도를 높이는 연구도 선도해 위기에 처한 중국 경제를 관리할 새로운 접근법을 제안할 수 있다는 기대도 중국 내부에서 나다. 첸징은 칭화대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이제는 내가 배운 것을 돌려줄 때”라면서 “학계와 산업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의 계산 경제학(알고리즘을 이용한 경제 문제 해결 방식 연구)과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선도하겠다”고 했다.
첸징이 중국으로 돌아오는 ‘애국 과학자’ 대열에 합류한 것은 미·중 갈등 여파와 중국의 ‘기술 돌파’ 전략이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다. 중국의 해외 인재 유치 사업인 ‘천인계획’(2008~2018년)과 미국의 중국계 스파이 색출 프로젝트인 ‘차이나 이니셔티브’(2018~2022년)로 인해 미국의 저명한 중국계 과학자들이 고국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 중국 경제·기관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을 기반으로 연구 활동을 해온 중국 과학자들의 귀국 비율은 2010년 48%에서 2021년 67%로 늘었고 최근에는 75%로 증가했다.
미국에서 넘어온 중국계 석학들이 중국 기술 발전과 산업 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마오쩌둥 전 주석이 ‘제1의 귀빈(貴賓)’이라고 불렀던 1세대 미국 유학파 첸쉐썬은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제트추진연구소를 이끌다가 미국 내 반공(反共)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1955년 중국으로 돌아왔다. ‘중국 로켓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는 중국 전기차 산업의 밑그림을 그리는 등 첨단 산업 전반을 지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4년에는 튜링상을 수상한 석학 야오치즈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돌아와 칭화대에서 AI(인공지능)연구를 이끌었다. 지금 그의 제자들이 중국 핵심 AI 기업들의 수장이 되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내 중국계 석학들의 귀국은 최근 가속도가 붙었다. 2020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로 재직하던 AI 석학 주숭춘이 베이징대로 돌아왔다. 그는 ‘베이징 범용AI연구원장’도 맡고 있다. 나노 공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으로, 미 조지아공대 종신 석좌교수였던 중국계 과학자 왕중린도 중국 최고 과학기술 연구기관으로 평가되는 중국과학원(CAS) 산하 연구소로 이직했다.
중국계 유명 과학자들이 중국행을 택하는 것은 중국이 이들의 연구를 전폭적으로 뒷받침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국가별·기관별 과학 연구 역량의 대표 지표로 꼽히는 ‘네이처 인덱스’ 순위에서 중국은 지난해 처음으로 미국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특히 하버드대를 제치고 연구 기관 1위를 차지한 중국과학원 대학은 CAS 직속이어서 중국 최고 과학자들과 긴밀하게 협업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중국의 첨단 산업 발전은 한국을 비롯한 각국과 달리 기술 연구를 주도하는 석학들이 먼저 움직여서 ‘국가 과제’를 만들고, 기업이 호응하는 구조로 돌아가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위상이 유독 높다는 특징이 있다. 중국 기업인들 사이에서 ‘석학 모시기’가 사업의 최우선 과제로 꼽힐 정도다. 베이징의 한 국영 기업 산하 기관의 투자자는 “중국에서 기술 기반 기업이 사업에 성공하려면 유명한 과학자와 손잡아야 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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