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배경 없는 자식들”만 러 파병, 대가로 위성 발사체 엔진 챙겨
북한이 1만여 명을 해외 파병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베트남전에 전투기 조종사를 보내고 내전 중인 아프리카 국가들에 교관단 등을 파견한 적은 있지만 수십~수백 명 수준이었다. 1만여 명 파병에 따른 체제 관리 경험이 없다. 체제 유지는 김정은에게 가장 중요하다.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파병 득실은 무엇일까.
폭풍군단 산하 부대에서 ‘추가 파병설’ 돌아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된 북한군 병사는 “해외 훈련인 줄 알았고 참전인 줄은 몰랐다”고 했다. 파병 사실을 “어머니도 모른다”고 했다. 이런 일은 김정은이 특수 부대인 ‘폭풍군단(11군단)’과 정찰총국 병력을 차출해 보냈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금 북한의 일반 부대는 공사장 등 경제 현장에 동원되고 있다. 일반 주민 접촉이 잦아 보안 유지가 어렵다. 반면 특수전 부대인 11군단과 대남·해외 임무를 맡은 정찰총국은 외부 노출이 거의 없다. 체제 특성상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주민은 알기 어렵다. 병사 가족도 마찬가지다. 북이 더 파병한다면 폭풍군단(11군단)에서 다시 차출할 가능성이 크다.
1만여 명 중 장교는 5%인 5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이들과 그 가족은 러시아 파병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파병 전 북한 지도부는 이들에 대한 관리에만 집중해도 됐다. ‘영웅’ 칭호를 약속하고 가족에겐 식량 배급 등을 늘렸다고 한다. 95%인 일반 병사는 ‘해외 훈련’이라고 속여도 당장은 큰 문제가 없다. 사상자가 나와도 가족에겐 ‘특수 군사 임무 중이었다’고 얼버무릴 수 있다. 실제 북한군에선 훈련이나 노역을 하다가 죽거나 크게 다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상자가 대규모로 나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족 통제가 어려워지고 민심 동요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북 당국은 전사자 가족의 불만을 잠재우려고 식량·생필품 등 물질적 보상을 하고 있다. 동시에 군 총정치국, 국가보위성 인력을 총동원한 감시망도 강화했다.
지금까지 북한군 사망자는 400여 명, 부상자는 30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파병 전력의 30%가 넘는다. 그런데 러시아의 ‘고기 분쇄기’식 병력 투입으로 북한군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북한군이 집중 배치된 쿠르스크 지역은 몸을 숨길 데가 없는 평원이다. 겨울 러시아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 히틀러의 독일군은 얼어 죽고 굶어 죽었다. 생포된 북한군도 4~5일을 굶었다고 했다. 사상자가 급증하고 추가 파병까지 하면 북 당국의 주민 통제 능력도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
북 당국의 함구에도 파병 소문은 퍼질 대로 퍼졌다. 문제는 “배경 없는 자식들만 희생된다”는 등 부정적 여론이 확산하는 것이다. 실제 훈련이 힘든 ‘폭풍군단’에는 서민 아들이 간다고 한다. 힘 있고 돈 있는 간부 자식은 편한 곳에서 군 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김정은이 ‘없는 집 자식들만 총알받이(대포 밥)로 내보냈다’는 불만이 번지는 것이다. 북한 내 계층 갈등과 체제 균열 불씨가 된다. 반면 일부 주민은 파병의 반대급부로 러시아가 식량·석유 등을 대폭 지원해 주면 민생이 개선될 수 있다는 기대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급부로 방공 무기·식량·정제유 확보
북한은 반대급부로 정찰위성 발사체 엔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2023년 11월 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우주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액체 연료로 ‘하이드라진’이란 질소·수소 화합물을 썼다. 두 차례 실패 끝에 완성한 기술이다. 통상적으로 한번 성공한 발사체를 계속 쓴다. 그런데 북한은 작년 5월 신형 엔진으로 ‘만리경 2호’를 올리려다 실패했다. 기존 ‘하이드라진’이 아닌 ‘액체산소’를 원료로 쓰는 엔진을 달았다가 2분 만에 폭발한 것이다. 이 엔진이 러시아의 반대급부라는 것이다.
‘하이드라진’ 원료 엔진은 기술적으로 쉽지만 추력이 약하다. 부식과 독성 문제도 있다. 반면 ‘액체산소’ 엔진은 기술적으로 어렵지만 추력이 강해 더 크고 무거운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다. 미국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액체산소 엔진을 쓴다. 김정은은 러시아의 첨단 엔진 덕분에 정찰위성과 발사체 능력을 대폭 끌어올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번 실패했지만, 또 쏠 것이다.
북한이 수준급 정찰위성을 보유하면 한미 연합군의 움직임을 실시간 훑어볼 수 있다. 탄도미사일 정확도도 향상시킬 수 있다. 특히 위성 발사체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과 직결된다. 북이 ICBM을 완성해 미 본토를 핵 타격할 능력을 갖출 경우 한국에 대한 미 핵우산은 제때 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의 안전에는 별 관심이 없다. 반면 푸틴은 ‘북한의 위성 개발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김정은이 1만여 명을 총알받이로 보낸 이유는 대한민국을 겁박할 군사 기술 확보에 있을 것이다. 평양 공습을 걱정하는 김정은은 러시아제 방공 무기도 파병 반대급부로 확보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파병된 북한 장성급 지휘관이 러시아군의 작전, 전술 및 병력·장비 운용 방식을 경험하며 현대전 역량을 키우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소득”이라고 했다.
“북한군, 시신·부상자 회수에 열 올려”
파병 북한군은 최근 러시아가 영토 탈환 공세로 최대 격전지가 된 쿠르스크 지역에 집중 배치돼 있다. 올해 초 북한군 병사가 생포된 이후 “북한군이 러시아군과 달리 시신, 부상자 회수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군 피해 상황 등 파병 정보를 숨기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과 러시아는 아직도 파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파병군은 북 정예 특수전 병력으로 사격술과 체력 등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드론, 포격전 위주의 현대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현재까지 전세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북한군 전투 영상을 분석해 보면 드론에 대한 의미 없는 원거리 사격, 무도한 돌격 전술로 사상자 규모를 키우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군이 점차 전장 환경과 현대전에 익숙해지면 러시아의 쿠르스크 탈환 작전에서 한쪽 날개를 담당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한국어 사랑 영화 틀어달라” 생포 병사, 한국 데려와야
생포된 북한군 병사는 우크라이나군에게 ‘사랑 이야기가 담긴 영화를 틀어달라’고 했다가 우크라이나어 대사가 나오자 ‘한국어 영화로 바꿔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어를 전혀 못 하는 것이다.
이 병사는 우리 정부 관련 요원이 한국어로 “북한으로 돌아갈 것인가”라고 묻자 “여기 우크라이나 사람 좋은가요”라고 반문했다. 이어 “여기(우크라이나)에서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현재 이 병사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파병 사실을 감추기 위해 포로가 되면 자폭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실제 극단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중에는 얼굴에 수류탄을 터뜨린 경우도 있는데 시신으로도 북한군 확인을 어렵게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 생포된 북한군은 김정은 명령을 어긴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으로 송환되면 무사하기 어려울 것이다. 본인도 모를 리 없다.
생포된 북한군이 국제법상 전쟁 포로가 되려면 북·러가 참전을 인정해야 한다. 포로는 본국 송환이 원칙이다. 그러나 북·러는 참전을 인정한 적이 없고, 병사는 ‘훈련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전쟁 포로라도 본인 의사가 중요하다.
‘한국어 사랑 영화’를 틀어달라는 20대 병사라면 한국 귀순을 희망할 가능성이 크다. 데려와야 한다. 헌법상 우리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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