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 한입, 사르르 두입… 설 연휴처럼 ‘순삭 주의’[이우석의 푸드로지]
신라시대부터 이어온 귀한음식
유과·강정, 기름에 튀겨낸 방식
다식은 곡물에 꿀 버무려 굳혀
설탕물에 생열매 가둔 ‘숙실과’
中 간식 탕후루도 비슷한 원리
인삼·도라지 ‘약초 정과’ 유명
중앙아시아서 먹던 고기만두
흑설탕 넣고 지져 호떡 변신
추석과 함께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설이다. 오랜만에 모인 사람들이 여러 음식을 장만해 두고 명절을 즐긴다. 같은 명절이지만 아직 농사일이 남은 추석과는 달리, 농한기인 설은 조금 더 여유롭다. 세시풍속으로 즐기는 민속놀이도 설 쪽이 더 많다. 겨울 하늘에 연을 날리고 빙판에 팽이를 친다. 오징어게임에 등장하는 많은 게임이 우리 민속놀이에서 나왔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주전부리 과자다. 한과를 곁에 두면 입도 놀이도 즐거워진다. 그러니 사람들이 명절이 좋다 한다.
한과(漢菓)는 세계 각국의 과자 식문화처럼 우리 민족이 먹던 과자다. 우리 옷 한복, 우리 집 한옥, 우리 음식 한식처럼 우리 과자란 의미다. 요즘 대부분의 한류 상품이 그렇듯, 한과 역시 건강한 맛으로 외국인들로부터도 인기를 끌고 있다. 과자라 하면 공장제 시즈닝을 뿌려낸 크래커(cracker)나 칩(chip)에 익숙한 서양권에선 물론, 우리네 한과의 발달과 비슷한 배경을 지닌 일본에서도 한과의 맛과 영양에 주목하고 있다. K-과자의 커다란 유행 속 한과가 ‘전통’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과는 제조법이나 쓰는 재료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우선 튀겨내는 방식. 말린 찹쌀떡을 기름에 튀겨낸 다음 꿀을 묻히고 튀밥을 굴려 묻혀낸 유과(油菓)가 있다. 반죽에다 꿀을 첨가해 빚어낸 다음 기름에 튀겨낸 유밀과(油蜜菓)가 있는데 요즘 젊은 층에 인기가 많은 약과가 바로 이에 속한다. 곡물을 꿀이나 조청에 굳혀 만든 강정(羌)도 있는데 이 역시 튀긴 다음 썰어낸다.
다식(茶食)은 기름에 튀기지 않는다. 곡물가루를 그대로 꿀에 버무렸다가 굳혀서 모양을 낸다. 느끼하지 않지만 단맛은 품고 있다. 숙실과(熟實果)는 글자 그대로 과일이나 견과류를 꿀이나 물엿, 설탕 등에 조려낸 것이다. 과육을 그대로 쓰기도 하고 으깨서 다른 모양을 만들기도 한다. 생육 그대로 쓰는 것은 대추와 밤 등이 있고 감 같은 것은 으깨서 쓴다. 중국의 탕후루는 설탕물에 생 열매를 가둬 놓은 숙실과와 비슷한 원리다. 약초 뿌리나 과육을 은근한 불에 조리고 설탕물을 입혀낸 정과(正果)도 있다. 인삼정과나 도라지 정과 등 약초 정과가 유명한데 때론 과일을 쓰기도 한다.
한과의 역사를 얘기하기 전에 우선 ‘과자’라는 음식에 대해서 알아보자. 과자(菓子)란 여러 종류가 있지만 보통 주로 곡물을 갈아 달곰한 감미료를 넣고 굽거나 튀겨낸 음식이다. 과자란 한자어 자체는 일본어에서 나왔다. 옛날에 거의 유일하게 당도가 있던 음식인 과일(果實)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냈대서 그와 유사한 한자를 써 표현했다. 정작 중국에선 과자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가오디엔(고占)이나 디엔신(点心)으로 부른다. 과일은 쉐이궈(水果)로 따로 이른다.
잉여농산물이 드물었던 과거에는 과자는 무척 귀한 음식이었다. 삶의 영위에 필요한 식량(곡물)을 식도락으로 즐기도록 했으니 그 존재 자체가 고급인 셈이다. 굳이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음식이 과자지만 오롯이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과거 서민들은 평소에 과자를 구경하기조차 어려웠다. 그야말로 특별한 날에나 먹었다. 인류가 늘 식량부족에 허덕였던 것은 아닌 만큼 과자 문화 역시 오래전부터 발달했다. 동서고금을 통해 권력이 있고 풍요로운 곳에 과자가 생겨났다. 이르게는 메소포타미아 문명 당시에 과자가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이후 그리스, 로마 시대를 지나 중앙집권적 왕권이 강성했던 프랑스에서 제과가 발달했다. 15세기 이후 신대륙과 남아시아에서 들여온 초콜릿(카카오), 설탕(사탕수수) 등 감미료와 향신료를 대량으로 들여와 제과의 발전과 대중화에 공을 세웠다.
아시아에서도 수천 년 전 중국에서 말린 과일과 곡물로 만든 초기 과자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교 차 문화의 유행과 함께 생겨난 다식이 본격적 과자의 기원이 됐다. 8세기 초 중국 당나라 불가에서 인기를 끌던 당과자(唐菓子)가 신라와 일본으로 건너가 본격적인 동아시아 과자의 시대가 열렸다고 본다.
이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자 중 하나(중국에서만 해도 한 해 4조 원 이상 팔린다)인 월병(月餠)이 나왔다. 남송 대에 월병 과자를 만들어 중추절을 기념했다는 대목이 문헌에 등장하고, 원나라 말엽에도 주원장이 원에 대항한 봉기를 위해 월병을 비밀 서신 전달용으로 썼다고 한다.
일본 화과자(わがし·和菓子)는 애초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이후 센고쿠 시대를 거치고 개별 진화를 통해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메이지 시대엔 서양 제과 기술이 들어와 한데 섞이며 다양한 재료와 세공 기법이 더해져 현재의 화과자 문화를 이루게 된다.
돌고 돌아서 다시 한과. 우리 한과의 역사도 유구하다. 아시아 과자의 발달사와 마찬가지로 당과 교류하던 신라 시대부터 연회와 불교 행사에 다식으로 과자를 만들어 썼다. 고려사에는 충렬왕 때 고려병(高麗餠)이란 이름의 음식이 등장하는데 이는 떡이 아닌 유밀과의 일종으로 서술되어 있다. 유밀과는 쌀을 기반으로 기름과 꿀을 더해 만드는 한과다. 당시 원나라에서 열린 세자의 결혼식에도 보내서 차릴 만큼 귀하고 값진 음식이었다. 이때 고려의 유밀과 명성이 알려져 원에 역수출했다고 한다.
한과의 발전은 제례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가 지배한 조선시대에도 지속됐다. 종묘제례는 물론, 민가의 관혼상제에 과자가 빠지지 않았다. 수라상에는 후식으로 떡과 과자를 차렸는데 궁중 육처소에는 이를 전담하는 생과방(生果房)도 있었다. 제례나 연회 때 높이 쌓아 올리던 강정류 한과를 따로 조과(造菓)라고 했으며 양반가의 경우 집집마다 만드는 방법이 대대로 전수됐다. 한과 마을도 생겨났다. 강릉 사천면, 고성 왕곡, 고령 개실, 봉화 닭실마을 등이 한과를 잘 만들기로 지금껏 소문난 곳이다. 다만 한과는 재료와 품이 많이 드는 사치품인 까닭에 국가적 개입도 있었다. 계층에 따라 과자를 취급하는 것을 엄격히 다스렸고 흉년이라도 들라치면 조정에서 아예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기호식품이지만 한과는 꾸준히 살아남았다. 지방 관리들이 몰래 만들어 먹다가 엄중한 처벌을 받기도 했다. 패가망신을 각오하고도 끊을 수 없던 음식이란 의미다. 수입도 했다. 국내에서 나는 것은 꿀과 조청(물엿)밖에 없었으니 중국이나 일본(류큐) 등에서 설탕을 사다 썼고 밀가루도 들여왔다. 아예 월병이나 양갱 같은 외국의 과자를 직수입하기도 했다. 고려속요 쌍화점에 등장하는 쌍화가 중앙아시아의 삼사(samsa)라는 일종의 ‘만두’였다는 설과 더불어 달곰한 이슬람의 디저트 떡, 즉 과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조선에 들어선 호떡이 수입돼 한과의 영역에 합류했다. 호부추, 호파(양파) 등 보편적으로 ‘오랑캐 호(胡)’가 붙으면 중국의 것이다. 그들은 우리를 동이(東夷)라 불렀으니 서로를 오랑캐라 부르며 살아왔다. 정작 중국에서도 호떡을 뜻하는 후빙(胡餠)이 중앙아시아 오랑캐로부터 왔다고 여겨 붙인 이름이다. 회족(回族)들이 먹는 넓적한 고기만두 개념의 음식이 들어와 호떡이 된 것이다.
호떡을 간식이 아니라 빵처럼 먹은 이유다. 처음엔 중국 상인들이 들여와 주식 개념으로 팔던 것이지만 근대에 들어 설탕이 그나마 많이 풀리면서 맛이 확 달라졌다. 흑설탕을 넣고 기름에 지져낸 지금의 한국식 호떡으로 독자 진화했다. 견과류나 씨앗을 넣거나 잡채를 넣은 것도 생겨났다. 이후 호떡은 간식 개념으로 우리 생활에 뿌리가 내려 이젠 명실상부한 K-호떡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일본 도쿄 신오쿠보 등 도심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는 것이 한국식 호떡인 ‘홋토쿠(ホットク)’다. 고속도로 휴게소, 편의점 등에서도 팔고 있으며 1개 300~350엔(2700~3200원) 정도로 한국에 비해 값도 비싸다.
호떡이 한과의 범주에 드느냐는 이견이 좀 있을 텐데, 모든 문화적 산물은 지리적 주변국과의 문물 교류를 통해 변화, 발전한다. 사실 우리 한과 역시 중국, 일본과 서로 영향을 많이 주고받았다. 한과는 일반적으로 상식하는 주식이 아니라 기호품인 까닭에 권력끼리 교류하며 상호 닮아갔다.
참고로 한식에는 튀긴 조리법을 많이 찾아볼 수 없지만 한과에는 튀기는 게 거의 필수다. 참기름에 튀기는 유탕(油湯) 방식은 유과, 유밀과 등 한과를 만들 때 주로 찾아볼 수 있다. 팥을 써서 단맛을 내는 것도 동아시아 삼국이 비슷하다. 중국 팥떡이 홍두병(紅豆餠)이 되었고, 일본 도미빵(다이야키)이 우리 붕어빵으로 변신(?)했다. 일본이 서양 제과술을 본떠 만든 팥앙금(앙꼬)은 지금도 현대 한과의 감미료 중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은근한 단맛이 요즘 트렌드에 맞아 떨어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세밑부터 몹시 혼란스러운 을사년이라 느긋한 설 연휴를 핑계 삼아, 달곰한 한과 한 점 집어 먹으며 누적된 스트레스를 달래봄직도 하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 약과 = 대표적 유밀과다. 요즘 세대를 이어가며 한과의 인기를 주도하는 것이 바로 약과다. ‘이티떡’으로 유명한 경기떡집이 콩가루를 넣어 만든 ‘콩 약과’를 내놓았다. 애초부터 반죽에 들어간 콩가루 덕분에 단맛이 덜하고 고소한 맛은 더한다. 칼로리 저감 효과는 덤이다. 반죽을 잘 치댄 덕분에 졸깃한 식감이 끝까지 살아있다. 개별포장이라 유통기한도 길어 하나씩 심심할 때 까먹기에 좋다. 서울 마포구 동교로9길 24.
◇ 유과 = 꿀을 섞어 기름에 튀겼지만 과자를 에워싼 쌀튀밥이 달고 기름진 맛을 단번에 상쇄시킨다. 오히려 담백한 맛이다. 바삭한 식감에 살짝 달곰한 맛이 고급스러운 느낌으로 남는다. 튀밥에 쑥가루와 흑미, 백련초를 넣어 각각 다른 풍미를 내는 4색 유과가 인기다. 교동한과는 한과의 본향 강릉에서 한과류(유과) 심영숙 명인이 만들어 각지에 공급하는 한과 전문점이다. 서울 중구 을지로 30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 쑥꿀레 = 목포 명물로 불리는 ‘근대식 한과’다. 콩고물과 꿀(조청)을 버무려 먹는 경단 모양 쑥떡인데 작은 크기에도 꽤 다양한 맛이 들었다. 달콤함은 물론, 고소함과 쌉쌀한 쑥의 향기가 한입에서 어우러진다. 가락지죽집은 목포역 앞 원도심에서 오랜 시간 죽과 분식을 팔아온 노포인데 직접 만드는 쑥꿀레와 약식을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전남 목포시 수문로 45.
◇ 적두병 = 이름을 그대로 풀이하면 팥떡(赤豆餠)이다. 몇몇 서양과자는 빵과 크게 다르지 않듯 한과의 세계에도 떡과 비슷한 것이 많다. 비슷한 재료를 쓰는 것은 곳곳에 있지만 적두병만큼은 대구에서 사 먹을 수 있다. 경주 황남빵과 비슷하지만 좀 더 투박한 모양새다. 팥소를 곱게 갈아 반죽 안에 넣고 구웠다. 일일이 반죽과 소를 빚어 만드는데 은근한 단맛이 나 쉽게 물리지 않는다. 대구 중구 달성공원로8길 10 달성빌딩.
◇ 잡채호떡 = 전국 곳곳에 소문난 호떡집이 많지만 남대문명물호떡은 그야말로 K-호떡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집. 추우나 더우나 길게 드리운 인파로 똬리를 튼다. 기름을 넉넉히 붓고 튀기듯 즉석에서 만들어 낸 두툼한 호떡에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열광한다. 전통적인 꿀 호떡은 물론, 잡채를 가득 넣은 잡채호떡도 인기다. 바삭한 껍질은 베어 무는 순간 곧 쫀득해지고 뜨겁게 퍼지는 잡채는 감칠맛을 더한다.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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