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게임 체인저’ 유리 기판 시장 들썩인다

이슬아 기자 2025. 1. 2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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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C 세계 최초 양산 전망… 필옵틱스·HB테크 등 협력사 주목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CES 2025’에서 엔비디아향 SKC 유리 기판 공급 가능성을 시사했다. [뉴스1]
"유리 기판이 2~3년 내 상용화되면 빅테크가 인공지능(AI) 컴퓨팅 최적화를 위해 너나없이 (유리 기판을) 찾을 테고, 현재 한국이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기 때문에 관련 기업들 실적이 파격적으로 성장할 것이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공학과 교수가 유리 기판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 말이다. 유리 기판은 차세대 반도체 소재로, 기존 플라스틱 기판 대비 전력 소모가 30% 적고 데이터 처리 속도는 40%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AI 반도체 효율을 극대화할 '게임 체인저'로 불리는데, 최근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25'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만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C 유리 기판을) 방금 팔고 왔다"고 말해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상용화가 눈앞으로 다가온 듯한 분위기에 관련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는 것이다(그래픽 참조).

고성능 AI 컴퓨팅 위한 핵심 솔루션

유리 기판의 강점은 유리라는 소재 특성에 기인한다. 그간 AI 반도체는 플라스틱 기판에 중간 기판(인터포저)을 올리고, 다시 그 위에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올리는 구조로 제작됐다. 플라스틱 기판은 표면이 거칠어 미세 회로를 새기기 어렵다 보니 인터포저가 기판과 반도체 칩 사이 연결을 추가로 담당했다. 그런데 표면이 매끄러운 유리 기판을 사용하면 기판 자체에 수많은 미세 회로를 새겨 인터포저 없이도 곧바로 HBM, GPU 탑재가 가능하다. 그럼 반도체 두께가 줄면서 '전성비'(전력 대비 성능비)와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또 유리 기판은 열에 강하기 때문에 발열에 따른 휨 현상(warpage) 걱정 없이 더 많은 반도체 칩을 위로 쌓을 수 있다. 인텔, AMD, 브로드컴, 엔비디아 등 AI 반도체 제조 기업이 최근 앞다퉈 유리 기판을 도입하려고 움직이는 배경이다.

현재 유리 기판 시장은 국내 기업이 선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선두를 달리는 건 SKC다. SKC는 2021년 일찌감치 자회사 앱솔릭스를 출범하고 유리 기판 사업에 진출했다. 지난해 미국 조지아주에 유리 기판 생산 공장을 완공했으며, 올해 상반기 세계 최초로 대량생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김성진 앱솔릭스 최고기술책임자(CTO)는 CES 2025에서 자사 유리 기판 시제품을 선보인 뒤 "본격적인 공급에 앞서 고객사와 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며 "이미 수요가 자사 생산 (예정) 물량을 넘어선 만큼 공급 확대를 위한 투자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종환 교수는 "SK(그룹)가 HBM에 이어 유리 기판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면 선두에 선두를 차지하는 것이라 AI 반도체 시장에서 그 프리미엄이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SK, 유리 기판서도 두각… 프리미엄↑"

경쟁사인 삼성전기와 LG이노텍도 유리 기판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기는 세종 사업장에 유리 기판 파일럿(시범) 생산 라인을 구축했으며 올해 시제품 출시, 2026년 양산을 목표로 한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CES 2025에서 "특정 고객을 언급할 수는 없지만 여러 고객과 협의하고 있다"며 "올해 2~3개 고객에게 시제품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문혁수 LG이노텍 CEO도 CES 2025에 참석해 "(유리 기판은) 무조건 가야 하는 방향이고, LG이노텍도 올해 말 시제품 양산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밖에 30여 년 업력의 커버 글라스 기업 제이앤티씨도 지난해 유리 기판 개발에 성공해 올해 하반기쯤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CES 2025 이후 주가가 상승한 것은 유리 기판 생산 기업만이 아니다. 유리 기판 생산 기업과 밸류체인으로 묶인 소부장 기업들도 오름세를 보였다. 앱솔릭스에 유리관통전극(TGV) 홀 드릴링 장비를 공급하는 필옵틱스, 유리 기판 패턴 검사 장비(AOI)를 납품하는 HB테크놀러지와 야스, 유리 기판용 화학 재료(포토레지스트 등)를 공급하는 와이씨켐, 건식 식각(에칭) 장비를 조달하는 아이씨디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기가비스(AOI), 에프엔에스테크·켐트로닉스·태성(식각 장비), 한빛레이저(스크라이빙 및 커팅 장비) 주가가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냈다.

전문가들은 유리 기판 투자와 관련해 SKC 밸류체인에 포함됐거나 될 가능성이 큰 기업에 먼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유리 기판이 '묻은' 여러 기업 중 투자 우선순위를 잘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형수 HSL파트너스 대표는 "앱솔릭스가 가장 먼저 유리 기판 양산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되기에 SKC는 물론, SKC와 협력 관계에 있는 기업들부터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며 "아직 주요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한 채 주가만 오른 소부장 기업의 경우 추후 SKC, 삼성전기, LG이노텍 등 밸류체인에 실제 포함되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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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기자 is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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