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아제한도 출산장려도, ‘국가가 하면 된다’는 착각
⑤누가 초고령사회를 앞당겼나 (하)
출산율 성과 관리에 연연한 정부
산아제한 시절과 달라진 것 없어
2018년 합계출산율(여성 한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이 1명 밑으로 떨어지자, 인구학자들은 크게 술렁였다. 전염병 창궐이나 전쟁, 체제 붕괴를 겪지 않는 한 불가능한 숫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960년 5.95명에서 2023년 0.72명으로 약 88% 하락했다. 전세계 217곳 국가(지역) 중에서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이다. 20년 이상 초저출산(1.3명 이하)을 기록한 유일한 국가(인구 1천만명 이상 기준)이기도 하다. 저출생 심화는 고령화를 앞당긴 주된 요인이다. 그러는 동안,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기관별 1년간 출생아 수, 만 18~49살 여성 직원 수(남성 직원의 경우 배우자 포함),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표기한 출생률’(지난해 12월27일 각 공공기관에 발송된 신규 공시 항목안)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 공시 항목에 기관별 출생률과 가임기 여성의 수 등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기관 직원들은 물론이고 각계에서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여기는 시대착오적 행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일·가정 양립 제도 개선’의 일환이라고 하지만, 출산율 제고를 목적으로 이뤄지는 전형적인 성과 관리 위주의 행태다. 2016년 행정안전부(당시 행정자치부)가 지방자치단체별 가임기 여성 수를 표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만들어 물의를 빚은 뒤로 정부 기관의 인식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인식과 발상의 연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국가가 출산을 통제하고 관리함으로써 인구 위기를 극복한다는 아주 오래된 오만과 착각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왜 산아제한 정책을 90년대까지 지속했나
“산아제한 정책을 그만 두자고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주장을 펴면 공직자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1989~90년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한겨레에 당시 정부의 정책 실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가파른 출산율 하락에도 정부는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선진국의 출산율 하락 사례를 언급하고 향후 국민연금·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지만 귀담아 듣는 이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이미 우리나라는 1983년에 출산율 2.06명으로, 현재 인구 규모를 유지할 수 없는 수준인 저출산사회(2.1명 이하)로 들어섰다.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추진된 가족계획 사업이 출산율 하락을 주도했다. 가파른 인구 증가가 재난을 초래한다는 이른바 ‘인구폭발’에 대한 우려를 ‘산아제한’ 정책으로 해결하고 이를 경제발전의 핵심 과제로 삼은 것이었다. 정부는 적정 자녀 수와 자녀 간 터울을 제시하는 계몽 교육에 나서고 피임 기법을 보급하는데 주력했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식의 강경한 표어가 난무했고 ‘임신 안 하는 해’ ‘남성이 더 피임하는 해’를 정할만큼 국가의 계획은 촘촘했다.
저출산사회로 진입한 그해, 정부는 인구 4천만명 돌파에만 경계심을 높였다. 전국 곳곳에 인구 시계탑을 세울 정도였다. 김 전 위원장이 보사부 장관을 지낸 것은 그로부터도 6년 뒤의 일이다. 저출산사회 진입 뒤로도 출산율은 뚝뚝 떨어져 1989년엔 1.56명이었다. 이 때문에 인구학자들도 인구 정책 역사에서 1980~90년대를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시기로 꼽는다.
가족계획 사업은 1990년대 이후로도 지속됐다. 1995년 신문 독자 투고란에는 ‘3자녀 이상 가정에 대한 차별을 없애라’는 의견이 단골 주제로 등장했다. 3번째 아이부터는 의료보험 분만급여 적용을 받지 못하고 부양가족의 소득공제 범위도 2자녀로 제한되는 등의 불이익 조처가 억울하다는 취지였다.
이듬해인 1996년 6월 정부는 뒤늦게 산아제한 정책을 폐기하는 ‘신인구정책’을 발표하면서도 ‘출산율은 1.7~2.1명에 묶어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소득층에 대한 무료 불임시술 혜택이나 보건소의 무료 인공 임신중절 등 산아제한 정책 일부가 유지됐다. 여당인 신한국당에선 ‘중년의 재미를 위한 늦둥이 출산을 규제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이 흘러 나왔다.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 장관(경기대 교수)은 “90년대 후반에 경제부처에서 주관하는 회의에 연구자로 참여했는데, 참석자 다수가 출산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총인구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만 주목했다”고 당시 상황을 복기했다.
뒤늦은 출산장려 정책, 초저출생 추세 반전 못시켜
정부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산아제한에 열중했던 것은 출산율 하락을 개인의 선택이 아닌 정부 정책의 성과로만 여긴 탓이 크다. 1990년대 후반에도 산아제한을 중단하면 출산율이 반등할 것이란 인식이 대세였다. 인구 추계는 장기간 인구 구조 변동을 전망하는 데 쓰이기 보다 단기적으로 총인구가 언제 정점을 이룰지 파악하는 용도로 활용됐다. 게다가 ‘에코 베이비붐’(베이비부머의 자녀) 효과로 출산율이 하락해도 출생아 수가 반등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1991~95년 사이에 출생아 수가 다소 반등했지만 사후적으로 보면 기우에 불과했다.
정부는 출산장려 정책도 산아제한에 나섰을 때처럼 가시적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로 흘러갔다. 2005년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시키고 5년 단위로 기본계획을 수립했지만 곤두박질친 출산율은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2006~2021년에만 저출생 대책에 280조원의 예산이 쓰였다. 2001년 초저출산사회로 진입한 뒤 25년째 회복되지 않았다는 점도 인구학계에선 매우 이례적 현상으로 거론된다.
초저출생은 초고령사회를 앞당긴 주된 요인이다. 인구 변동을 초래하는 3대 요인은 출생과 사망, 이동(이민)이다. 한국은행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우해봉 연구위원)은 고령화의 원인을 1970년~2070년 장기 시계열로 분해하면, 낮은 출산율이 약 70%, 기대수명 연장이 약 30% 기여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출산율 하락을 주도한 것은 무자녀 부부나 자녀 수 감소도 있지만 저조한 혼인율이 컸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3년 11월 기준 30대 미혼율은 절반을 넘어선 51.3%에 달한다.
한국의 출산율은 ‘정책 담당자는 물론이고 인구학자들도 예측하지 못한 충격적 사건’이며,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어 중세 유럽의 흑사병 창궐에 비견되는 중이다.(‘뉴욕 타임스’ 칼럼)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일할 사람이 사라진다’에서 “불과 수십년 사이에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진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사례에 비해선 약간 느린 감소세이지만 그 이후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운 가파른 인구축소 사례가 될 것”이라며 “지금의 청소년 세대가 노인이 될 무렵까지 인구의 3분의 1이 감소한다는 것은 작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성과 관리에 급급해 온 정부, 출산율이 목표 되어선 안돼
지난해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한 정부는 인구전략기획부를 설치하고 2030년까지 출산율을 1.0명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인구전략기획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이끈 경제기획원처럼 강력한 컨트롤타워로 만들겠다고 했다. 출산율 목표가 수치로 제시된 것은 10년 전인 2015년 이후 처음이다. 개인의 선택인 출산을 국가 성과관리 지표로 내세울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낳고 기를만한 사회의 결과물인 출산율이 성과 목표로 제시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송다영 인천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과거 가족계획 사업이 진행될 때는 도시로 인구가 유입되면서 자녀 수를 이전보다 줄여야겠다는 개인의 선택과 맞물려 효과를 발휘한 것인데, 지금도 국가가 나서면 개인이 따를 것이란 발상은 곤란하다”며 “유독 한국과 일본이 지표에 연연해하는데 국민을 대상화시킨다는 측면에서 역효과가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국가 통제적 패러다임과 자녀 갖기에 대한 캠페인 위주 접근도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가 가임 여성의 현황을 관리하겠다거나 ‘여성의 고스펙이 저출생의 원인’이라던 국책연구기관 보고서가 대표적 사례다. 지난해엔 남녀 교제 성공을 위해 ‘여학생의 1년 조기 입학’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국책연구기관에서 나오기도 했다.
이는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여긴 과거 정부 행태와 닮은 꼴이다. 1979년 경제기획원의 한 고위급 간부는 1980년대 인구 정책의 새로운 과제로 여성의 지위 향상을 강조하는 기고문을 냈는데, 그 의도가 산아제한의 수단으로 삼자는 것이었다. 여성의 지위가 올라가면 피임 실천율을 높이고 출산율 하락에 걸림돌이 되는 남아선호 사상도 약화시킬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인구변동과 지속가능한 발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프랑스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는 인구 변동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내는 ‘신호’라고 했다. 정부가 신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면 정책은 헛돌게 된다. 송 교수는 “국가의 과잉개입에 비해 육아휴직 지원과 같은 포지티브 인센티브는 너무 늦게 시행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결혼과 출산이 패널티가 되는 현실을 외면한 채 여성에게 출산을 강권하는 듯한 분위기는 불신만 키운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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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연의 ‘초고령사회의 질문들’은?
지난 연말 우리는 65살 이상 노인이 인구의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로 들어섰습니다. 한때 폭발적 인구 증가가 걱정거리였던 나라가 지금은 빠르게, 그것도 전속력으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인구 국가비상사태’의 본질은 인구 감소보다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동에 있습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초고령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 사회에 던져진 질문을 격주로 하나씩 톺아봅니다.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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