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죽음'을 하루 앞둔 엄마가 말했다…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딸 남유하 작가 산문집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존엄사법 제정 등 활동… "생명 경시 아닌 존중"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예정된 죽음'을 하루 앞둔 조순복(1944~2023)씨의 얘기다. 완치 판정을 받았던 유방암이 뼈로, 또 위장으로 전이되면서 온몸을 난도질하는 듯한 통증에 시달렸던 그는 매일 삶보다 죽음을 기약했다. 2023년 8월 조씨는 의료조력사로 사망했다.
조씨의 딸이자 작가인 남유하가 엄마를 떠나보낸 과정을 담은 산문집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냈다. 인간 조순복과 그에 대한 애도를 담았다. 책은 애도에 그치지 않는다. 엄마의 죽음을 통해 한국에서 법으로 허용되지 않는 의료조력사를 선택한 과정을 설명한다. 21일 만난 남 작가는 "생전 엄마에게 '책을 써도 되나'라고 물었더니 '써야 한다'고 답했다"며 "책이 읽히고, 기사에서 조순복이라는 이름이 언급될 때마다 엄마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죽음 고민하는 엄마를 지켜본 딸

죽음을 선택하는 엄마를 딸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남 작가에게 엄마는 늘 "가까운 친구이자 연인 같은 존재"였다. 소통이 서툰 딸을 '너는 특별한 아이라서 그래'라고 위로하고 격려하던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견디기 힘든 고통으로 자기 죽음에 관해 '여러 방법을, 아주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딸은 그의 스위스행을 차마 말릴 수 없었다. 남 작가는 “쉽게 엄마의 선택을 지지하지는 못했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하실까 봐 너무 두려웠다”고 당시의 심정을 전했다.
딸의 혼란은 계속됐다. 남 작가는 영어로 모든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스위스 조력사망기관인 디그니타스의 절차를 대신 처리하며 “내가 ‘엄마 죽음의 선봉장이 되어 나팔을 부는 건 아닌가’라는 의문도 들었다”라고 털어놨다.

엄마를 사랑하기에 이른 이별을 감내하려는 딸의 모습은 남 작가의 동화 ‘뇌 엄마’(2021)에 담겨 있다. 동화에서 교통사고로 뇌만 남은 엄마가 자신을 보내달라 부탁하자 딸은 이렇게 결심한다. “쉽기는커녕 죽을 만큼 어려운 일이겠지만 언젠가 엄마를 보내 줄 거야. 엄마가 훨훨 날 수 있도록. 하늘 높이 날아가 바람의 냄새를 맡고 구름의 감촉을 느낄 수 있도록.” 남 작가는 고통에서 벗어나 스위스에서 자유롭게 날고 싶다던 엄마의 소망대로 그의 유해를 현지 오솔길에 뿌렸다.
"불필요한 절차, 다른 이는 겪지 않길"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인 남 작가는 한국존엄사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관련 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죽음의 과정에서 수반되는 불필요한 절차를 다른 분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고 했다. 의료조력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엄마와 가족들이 복잡한 사전 절차뿐 아니라 ‘그린라이트(조력사망 허가)’를 받고서도 스위스까지 8,770㎞의 길을 가야만 했다고 전했다. 남 작가는 “스위스에 갈 체력도 있어야 하고 또 너무 환자처럼 보이면 비행기에 태워주지 않는다”며 “사람이 자기 죽음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무겁게 느껴지는데, 여기에 또 다른 무게를 얹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 작가는 또 “스위스에서 슬퍼하면서도 이런저런 일을 처리하려니 정신이 없어서 막상 제대로 인사할 여유가 없더라”며 “한국에서 의료조력사가 가능했다면 마지막까지 엄마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국에서는 척수염 진단을 받은 이명식씨가 2023년 12월 의료조력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낸 상태다. 조력존엄사법도 2022년 발의됐다. 그러나 비슷한 취지의 헌법소원 청구가 2017년과 2018년에 각하됐고, 법무부는 지난해 헌법재판소에 낸 의견서에서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할 우려가 있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남 작가는 이에 “견딜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는 가족이나 지인을 본다면 생명 경시가 아닌 ‘생명 존중’이라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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