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자국 AI 모델 개발 안 했을 때 벌어질 일들
빅테크 AI 수입해 개량한다고? 군대도 외국에 외주 줄 건가
요즘 테크 업계에서 인공지능(AI)이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찾기 어렵다. 집에서 상추를 키울 때 쓰는 재배기도 AI로 한다고 선전한다. 과잉 홍보를 감안해도, AI가 산업의 풀뿌리까지 바꾸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AI 신기술 대부분은 오픈AI·메타·구글·바이두(중국)·미스트랄(프랑스) 등 소수의 AI 모델을 차용해 개발한 것이다. 빅테크의 기술 독점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빅테크들의 AI 경쟁은 국가 대리전(戰) 양상을 띠고 있다. 주요국들은 흔히 ‘소버린(sovereign·주권) AI’라 불리는 자국 AI 모델 개발에 진력을 다하고 있다. 인재와 돈이 민간에 몰리는 현대 테크 산업의 특성상 전면에 기업이 나서 있을 뿐이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의 미스트랄, 일본의 사카나 AI, 캐나다의 코히어, 독일의 넥스트클라우드 등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자국 AI 모델을 개발 중이다.
‘소버린 AI’ 개발에 사활을 거는 데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경제적 측면이다. ‘소버린 AI’ 개발을 회의적인 눈으로 보는 이가 많은데, 수백조 원 단위 투자를 하는 미국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논리다. 빅테크의 AI 모델을 가져와 개량하는 것이 실용적이라는 뜻이다. 숫자만 들여다보면 반박하기 어렵다. 20여 년 전 유럽이 그랬다. 야후·구글·페이스북 등 미국의 검색 플랫폼과 소셜미디어가 세계를 휩쓸 때, 유럽은 자본·기술 부족을 이유로 경쟁을 포기했다. 이후 결과는 모두 아는 대로다. 그나마 다음·네이버 같은 플랫폼으로 버텼던 한국은 이커머스·게임·웹툰 등으로 IT 생태계를 확장했다. 그때 유럽 같은 판단을 했다면, 지금의 ‘판교’는 없었을 것이다.
AI 전문가들이 이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다. 군사·안보적 측면이다. 미국이 중국에 최첨단 반도체와 AI 모델 수출을 금지하면서 ‘군사적 전용 가능성’을 언급하는 것은 단순한 명분 쌓기가 아니다. 그게 미국 입장에선 더 절실하다. AI와 국방 분야의 결합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진전돼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장의 무인 AI 드론은 사실 맛보기에 불과하다. 전략·전술에 개입하는 수많은 데이터를 AI가 분석하고, 작전을 제안한다. 바둑판에서도 AI가 인간을 넘어섰는데, 전쟁은 어떨까?
미국은 AI를 실제 핵무기만큼 중요한 군사 전략적 자산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AI를 모든 국방 분야에 적용하겠다며 ‘AI 신속 역량반(AI Rapid Capabilities Cell)’이라는 조직을 창설했다. 그러나 자체 AI 모델이 없는 국가는 AI를 군사적으로 활용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한 테크 업계 관계자는 “미국 군대가 세계 최강이라고 자기 나라 국방을 미군에 오롯이 맡긴다면, 그 결말은 뻔하지 않냐”고 했다. 현재 국제 질서가 핵보유국과 비보유국으로 나뉘듯, 앞으로는 얼마나 강력한 ‘소버린 AI’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국가 간 힘의 균형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국제사회에서 앞으로 ‘소버린 AI’를 가진 국가와 못 가진 국가에 대한 대접도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 소버린 AI라고 불릴 만한 AI 모델을 개발 중인 곳은 네이버와 LG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자원을 생각할 때 개별 기업에 이를 맡기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소버린 AI를 만들고, 정부와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방향도 중요하지만, 지금 더 절실한 것은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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