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비밀로 남은, 데이비드 린치의 직관을 질투하다
나의 작은 개는 영리하다. 산책이라는 말에 뛸 듯이 기뻐하며, 도어락 누르는 소리만으로 어떤 가족 구성원이 집에 귀가했는지 유추한다. 개는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대체로 눈치채지만, 이종 간 완벽한 의사소통은 불가하며 인지 범위도 같을 수 없는 까닭에 답답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개를 이웃에게 맡기고 여행을 떠날 때, 나는 며칠 후 다시 데리러 올 것이라고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말해주지만, 알아들을 리가 없는 개는 무릎을 박박 긁으며 가지말라 애원한다. 동물병원에 데려가 주사를 맞히거나 검사를 할 때면, 그 사소한 고통이 자신의 건강을 위한 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해 영문을 모르는 눈망울로 매번 소스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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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반려인은 돌아올 것이고, 모든 것은 너를 위한 것이라는 걸, 품에 안아 어르고 달래도 그 순간의 개는 영영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도 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그 순간엔 알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입시나 취업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큰 수술을 앞두고 있을 때, 사소하게는 투자의 명목으로 주식을 매매하는 모든 순간조차. 그리고 무의식이나 꿈자리에 불현듯 예지몽, 데자뷰, 내지는 ‘개꿈’이라 부르는 것들이 틈입할 때, 이미 모든 일은 ‘있고’, 그 사실을 모르는 미물인 인간들만 1시간 후, 내일, 내일 모레를 근심하고 기대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 오직 예술만이 신처럼, 계시를 받은 예언자처럼 인간에게 와서 우리가 모르는 것, 잊었던 것, 미처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조용히 속삭인다. 모든 정합성과 선형성과 합리성을 무너뜨리고 안과 밖과 지금과 과거와 미래를 뒤섞으며, 잠시 다른 차원으로 우릴 데려다 놓는다. 예술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엔, 거기서 실마리를 찾아 쥔 채 미궁 속 아리아드네처럼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 과제로 남는다.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계 너머에 데이비드 린치의 예술이 있다. 가령, 붉은 벨벳 장막과 검고 흰 타일 모자이크 바닥의 ‘붉은 방’. (‘트윈 픽스’) 타오르며 너울대는 불꽃. (‘광란의 사랑’) 꿈과 현실이 혼곤하게 뒤섞인 LA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멀홀랜드 드라이브’) 낡고 허름한 집과 연결된 광막한 우주 공간 속 행성. (‘이레이저 헤드’) 그 밖에도 도넛이 아닌 도넛의 구멍 속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린치의 예술에선 자취를 드러낸다. 린치는 한낮의 꿈처럼, 불길하게 다가오는 그림자처럼, 어둠 속 타오르는 불꽃처럼 무의식 속 공포, 에로티시즘 같은 직관적인 감정들을 건져 올려내 리드미컬하게 엮어낸다.
그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건,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영화 세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것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여성 배우의 감정과 환상을 담은 ‘멀홀랜드 드라이브’다. 무의식과 의식, 현실과 꿈을 이토록 혼곤하게 뒤섞은 여자의 이야기라니, 같은 배우이자 동성 연인을 향한 뜨겁고 차가운 욕망과 선망, 질투와 열등감, 가슴을 치는 실연과 증오에 대해 이토록 깊게 이해할 수 있다니, 나는 여성을 주로 미스터리의 재료이자 에로티시즘의 대상으로 접근했던 린치를 이 영화로 다시 봤다. 어떻게 여성 간의 이 복잡미묘하고도 불 같은 감정을, 질투와 과시와 차가운 모욕감을, 사무치는 고통을 이렇게 깊게 이해하고 그려냈을까.
나는 다이앤(나오미 왓츠)의 마음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녹여 주물에 넣어도 다이앤이라는 캐릭터를 빚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백치처럼 나를 의지하는 무력한 연인, 자기 효능감에 대한 판타지가 노골적으로 그려질 땐, 얼굴까지 새빨개질 정도로 밑바닥을 들킨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많은 여성 관객들이 다이앤과 카밀라 사이의 복잡한 감정에 이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데이비드 린치는 다이앤이라는 여자의 정념을 개연성이라곤 없는 동시에 꿈과 무의식의 ‘로직’을 정확하게 따른 정교하고도 복잡한 회전목마 같은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그건 바로 ‘내’ 이야기였다.
나는 데이비드 린치 특별전을 할 때마다 극장에 죽치고 앉아 환상특급을 탔다. 불에 뛰어드는 부나방을 보듯 그가 만들어낸 환영에 홀린 뒤, 가위에 눌렸다가 풀려난 듯한 기분으로 새끼손가락을 쥐었다 풀며 극장에서 나오곤 했다. 놀이기구를 오래 탄 것처럼 어지러움과 울렁거림을 느끼고, 새파란 질투에 사로잡힌 채 말이다.
린치는 수많은 인터뷰를 했으나, 그의 인터뷰에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가 괴짜이거나 수수께끼 같은 인간이라서가 아니다. (실제 그는 작품과는 달리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호인으로 대인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작품은 작가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지론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빨간 방’에서 ‘해석’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영화는 그 자체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영화감독이 영화가 의미하는 바를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관객이 영화에 개인적이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매우 귀중하고도 중요한 일로, 이런 경험을 망쳐 버릴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작품 외부의 무언가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세상엔 위대한 책이 수없이 많다. 저자가 오래 전에 죽어서 그들에 대해 더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책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예술가들을 인터뷰하는 것을 업으로 해온 기자로서 다소 위험한 발언으로 들릴 수 있겠으나, 나는 린치의 인터뷰 무용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작품은 하나의 완성된 세계다. 작가가 해설가처럼 완성된 세계에 코멘터리를 달고, 그 세계의 가이드를 자처하는 것은 정도를 지나쳐선 안 된다고 믿는다. 관객 입장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작가의 말을 듣는 것은 그저 작품을 즐기는 수많은 여흥 중 한 방법일 뿐, 작가의 말이 작품을 정의할 순 없기 때문이다. 나는 늘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영화가 데이비드 린치라는 개인보다 완벽하다고, ‘소년이 온다’라는 문학이 한강이라는 개인보다 완전하다고, 바흐의 ‘칸타타’가 바흐라는 개인보다 더 신에 가까이 있다고 믿어왔다. 바로 그것이 인간의 위대함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만약 린치가 내가 그토록 사랑한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설계도를 건네 주거나 퍼즐 가이드를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나는 이미 그 작품을 나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내 사랑은 차갑게 식었을 것이다. 나는 데이비드 린치가 만들어내는 수수께끼들을 사랑하는 만큼, 그것을 비밀스럽게 놔두는 그의 태도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는 1월 16일 자신의 가슴에 그 열쇠를 품고 영면에 들었다.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등장하는 파란 열쇠에 대해 수많은 기자들이 물었지만, 어떤 날카롭고 집요한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던 것처럼, 모든 비밀에 영원성을 부여하며.
하지만 나는 린치가 영영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만들어낸 붉은 장막 뒤에, 먼 우주의 행성에, 타오르는 불길 속에, 그 자신이 늘 묘사했던 방식대로 숨쉬고 있으리라. ‘엘리펀트 맨’에서 죽어가는 존 매릭에게 그의 어머니가 속삭였던 마지막 말처럼. “죽는 것은 없단다. 개울은 흐르고 바람은 불고 구름은 떠다니고 심장은 고동치지. 아무 것도 죽는 것은 없어.”
생전 강조했던 ‘아트 라이프’를 살아온 데이비드 린치의 직관을, 그리고 죽음도 완결하지 못한 그의 모든 비밀스러운 작품을 질투한다. 그의 말을 다시 인용하자면 “세상엔 수많은 위대한 책이 있다. 작가가 오래 전에 죽어서 그들에 대해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책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예지의 질투는 나의 힘’은?
이예지 <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에게는 세상 모든 사람을 질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부러운 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 그의 오랜 습관이지요. 이예지 디렉터가 <GQ>, <아레나>, <씨네21> 등 4개 매체를 거치며 지금껏 만난 사람들의 면면 중에 가장 열렬히 질투했던 구석을 파고든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질투는 나의 힘'은 격주 수요일 낮 12시에 만날 수 있습니다.
이예지 <코스모폴리탄>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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